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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작은 소망

admin 기자 입력 2021.08.03 23:34 수정 2021.08.03 11:34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신앙을 가진 사람이면서 신앙인이라는 말이 언뜻 나오지 않는다. 겉은 멀쩡하면서 속은 텅 빈 고목과 같아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뻔뻔스럽게 고개를 쳐들고 다니는 꼬락서니에 환멸을 느낀다.

기억이 더 흐리기 전에 “나는 누구인가?”를 되짚어 본다.
처음, 일용할 양식을 먹으며 살려고 굳게 닫힌 문을 두드린다. 누가 이 한밤중에 찾아왔느냐며 늙수그레한 노인이 묵직한 문을 열어준다. 나를 따뜻이 반겨 주면서 자리를 권한다. 사연을 듣고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 준다.

그 길은 양탄자 깔린 화려한 꽃길이 아니다. 멀고 험난한 가시밭길과 같다.
가는 길목마다 사람을 집어삼킬 듯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황량한 사막이 끝없이 펼쳐 저 있다. 힘들고 어려운 이 고난의 길을 끝까지 참고 견디며 걸어가야 양식을 구할 수 있을 거다.라고 하신다. 그러고는 아무 말씀도 없이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다.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며 무서움이 들이닥친다.

몸을 움츠리고 묵직한 문을 비시시 열고 밖으로 나온다. 역시나 보이지 않는다. 조금 전만 해도 나에게 길을 가르쳐 주셨는데, 눈 깜짝할 사이 없어졌다. 귀신에 홀 깃 것 같다. 집으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그분은 누구일까? 나의 길을 이끌어주실 좋은 분일까? 오만가지 생각이 다 떠오른다.

옛날 우리 집 종교는 불교였다. 학교 생활기록부에 종교는 불교로 쓰여있다.
사월 초파일, 동짓날이면 어머니는 보자기에 쌀 한 되가량 싸서 머리에 이고 절에 가신다. 예닐곱 되었을 때, 사월 초파일 어머니 따라 절에 간 일이 있다. 절은 우리 집에서 약 12km여 정도 떨어져 있다.

절 입구에 들어선다. 사람 키 한 질 반 정도 되는 큰 비석이 두 개 나란히 서 있다. 한쪽 비석에는 무슨 내용인지 한문으로 쓴 글이 빽빽하다. 다른 한쪽 비석에는 절을 준공할 때 기부했던 사람들의 이름이 일목요연하게 적혀 있다. 아버지 이름 석 자가 보인다.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진다. 절에는 부처님 앞에서 합장하여 공손히 절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스님이 절하고 염불하신 거를 보고 너무 어려워 절에 다니고 싶은 생각이 저절로 없어진다.

피난 후, 우리 마을에 성당이 들어온다는 소문이 들린다. 농촌에는 불심이 강하다. 사람들은 수군거리며 못 마땅히 여긴다. 성당에 다니고 싶은 생각이 든다. 스님이 하신 염불은 어려워 알아들을 수 없다. 신부님이 하신 말씀은 알아들을 수 있을 거 같기 때문이다. 따뜻한 어느 봄날. 형님뻘 되는 형들과 같이 10여 명이 교리를 배우기 시작한다.

시간이 점차 흘러갈수록 한두 명씩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나 혼자 교리를 배우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교리를 가르쳐 주시던 신부님이 다른 본당으로 가시고 새 신부님이 오신다. 새 신부님도 며칠 안 되어 교육받으러 로마에 가신다. 겉은 멀쩡하면서 속은 텅 빈 채 시간표대로 세례를 받는다. 프란치스코 사베리오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세례를 받던 날, 세상천지가 눈같이 깨끗하고 행복해 보인다. 덕지덕지 붙어 따라다니던 자만심과 욕심, 허영심이 한순간에 사라진다. 혜안으로 세상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

이 넓은 세상 이보다 더 기쁘고 행복할 수 없다. 날이 갈수록 성당 생활도 차츰차츰 익숙해진다. 한 주일이 금방 지나간다. 성당 내 작은 모임인 신우회가 있다. 여기에도 가입한다. 일 년에 한 번씩 교외에서 단합 대회를 하며 친목을 다진다. 신앙생활도 정성을 다해 꽃 가꾸듯 한다.

그러면서도 교리를 끝까지 배우지 못해 늘 마음에 켕긴다. 하는 수 없어 시청각 통신 성서 교육부에 입학한다. 고등과정까지 배웠다. 조금이나마 마음에 위로가 되고 안정이 됐다.

옆을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제의를 입고 하느님 말씀도 봉독 할 수 있다. 성당 살림살이도 맡아볼 수 있다. 주일 미사를 마치고 사무실에서 재정에 대하여 회원들과 토론한다. 모르는 부분을 묻고 들으며 이해를 높인다. 성당 생활에 많은 시간을 보내며 영육 간에 튼튼한 신자가 되고자 부단히 노력한다.

주일이면 항상 기쁘고 즐겁다. 한 주 동안 만나지 못했던 교우들과 만나 재밌는 이야기할 수 있다. 강론 시간에 신부님이 하신 말씀을 놓치지 않고 받아쓰기도 한다.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신부님은 하느님의 말씀을 바깥세상 이야기로 비유하시면서, 저희가 알아듣기 쉽게 하신다.
그를 때마다 정치에 관한 이야기 같은 거를 하실까 봐 가슴이 조여든다. 듣기가 거북스럽다고 거두어 주십시오. 라고 할 수 없다. 그렇게 하시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어느새 미시 시간이 끝난다.

총선거, 지방 선거가 있다. 이맘때가 되면 전국이 북새통이다.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기를 희망하며 최선을 다한다. 감정싸움으로 이 사람은 내 편이고 저 사람은 아니라는 식으로 편을 갈라놓는다. 후보자들은 학연, 지연, 혈연, 종교 등을 앞세워 세를 과시한다. 농촌에는 한시가 바쁜데도 불구하고 자기가 없으면 안 되는 줄 알고 하던 일을 멈추고 유세장에 모여든다.

마치 자기가 입후보한 사람처럼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며 일일이 악수한다. 안쓰럽고 안타깝다.

나는 누구인가? 신앙을 가진 사람이면서 신앙인이라는 말이 언뜻 나오지 않는다. 한낱 좀비에 불과하지만, 험담과 비방이 난무한 혼탁한 세상 속에서 혹여 목자가 오염될까, 양 떼를 잃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바라본다. 한 시라도 잊지 마시고 길 잃은 어린양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이끌어주시길 간절히 소망한다.

대구가축병원 권춘수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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