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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본 트로트

admin 기자 입력 2021.08.18 17:23 수정 2021.08.18 05:23

↑↑ 황성창 시인
ⓒ N군위신문
대중가요란 대중 사이에서 널리 불리는 대중음악의 대표적 분야로서 모국어 가사에 의한 노래이다.

어느 한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어떤 특정한 곡을 널리 부른다는 의미에서 유행가라고도 한다. 한국에 최초로 소개된 대중가요는 1925년 도월색(都月色)이 부른 ‘시들은 방초’와 김산월(金山月)의 ‘장한몽’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 두 노래는 당시 일본에서 대히트를 기록한 유행가를 각각 우리말로 고쳐서 부른 노래다.

1929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선 보인 이정숙의 ’낙하유수‘가 지금 트로트라고 불리는 바로 그것의 뿌리지 않을까 싶다. 한국의 대중가요는 1920년대 이후 창가라는 새로운 형태의 노래가 등장하면서 싹트기 시작했다.

일본 문화의 급격한 침투와 한국어 말살정책에도 불구하고 민족정서가 담긴 유행가가 꾸준히 명맥을 이어오다가 8·15광복절을 맞아 대중가요도 꽃피게 되었다.

당시의 가사는 주로 눈물, 이별, 짝사랑, 방랑, 향수 등의 단어가 자주 쓰이고 또 그러한 내용을 주제로 한 감상적이고 절망적인 노래가 많았다. 이는 당시 일제 강점하의 암울하고 답답했던 심정을 노래로 울분을 삭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 기억 속의 트로트는 고복수가 불렀던 ‘타향살이’다. 고향을 떠난 누군가의 마음을 대변하고 위로해주는 노래다. 이난영이 부른 ‘목포의 눈물’을 비롯해서 ‘짝사랑’, ‘애수의 소야곡’, ‘나그네 설음’, ‘눈물 젖은 두만강’, ‘홍도야 울지마라’, ‘꿈꾸는 백마강’, ‘고향설’, ‘선창’ 등 한결 같이 구슬프고 애절함이 절절한 트로트곡들은 거의 대부분 히트를 쳤다. 그 시절에 대중들을 위로했던 트로트는 명백히 우리 민족의 애상(哀想)과 깊은 정한(情恨)이 담긴 대중가요다.

대중가요는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성장과 소멸을 겪는다. 한 시기를 휩쓸었던 노래도 아침 이슬처럼 사라지기도 하지만, 요즘처럼 트로트가 어느 순간 화려하게 부활하여 대중문화의 중심에서 옛 노래를 소환하여 함께 브르고 있다.

노래를 듣고 있으려면 리듬을 풀었다 조였다 끊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휘여 돌아가는 가락이 삶의 굽이를 헤쳐온 자의 고단한 숨 소리 같이 들린다. 마치 한 편의 서정시(抒情詩)처럼 드라마 대사처럼 소절마다 추억 속을 헤매이게 하는 트로트, 가슴 저려오는 감동의 순간들은 사금파리처럼 오랫동안 반짝인다. 요즘 부쩍 트로트 듣기를 좋아하게 된 것이 나이 든 탓일까, 아니면 덧없이 가버린 세월의 아쉬움 때문인가?

일제 식민지에서 벗어나자 곧 이어 발발한 6·25전쟁의 전화(戰禍)로 살길을 잃은 우리들은 고난으로 점철된 격동의 세월을 보냈다. 지금의 한국을 만든 그 뒤안길에는 실의에 빠진 국민들의 마음을 위로하며 삶의 용기를 북돋우어 준 대중가요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트로트가 쌓은 공덕(功德)은 가요 100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빛나는 금자탑이다.

트로트 가수들은 한국인의 가슴 속에 참으로 많은 걸 새겨 났다. 문화예술을 통한 호소력은 슬픔과 고독에 빠진 삶을 긍정에 이르도록 견인한 것도 트로트 가수들의 역할이었다고 생각한다.

트로트 노랫말에는 어머니와 고향, 이별과 사랑, 한많은 세월 속에서 피눈물을 흘린 인생살이가 담겨 있다. 레바논의 시인이자 철학자 칼릴 지브란은 “인간이 입술에 올릴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단어가 어머니”라고 했다. ‘엄마, 어머니’라는 말을 듣거나 부르면 이성보다 감성이 먼저 울컷해지는 것이 비단 나만이 느끼는 감정은 아닐 것이다.

유대인 속담처럼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대신 어머니를 만들었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코로나로 우울에 빠진 지금에 어머니와 함께 있을 수 없어 ‘어머니 대신 트로트를 만들어 위로를 줬다’라고 덧붙이고 싶다.

그래서인지 예부터 우리 대중음악엔 ‘어머니’가 자주 등장한다. 트로트도 마찬가지다. 진방남의 ‘불효자는 웁니다’, 이화자의 ‘어머님 전상서’, 현인의 ‘비 내리는 고모령’, 조용필의 ‘고추잠자리’ 나훈아의 ‘홍시’, 금잔디의 ‘엄마의 노래’, 송가인의 ‘엄마 아리랑’, 진성의 ‘울엄마’, 이미자의 ‘친정 어머니’ 등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노래들이 ‘어머니’를 애타게 그리워하며 부른 사모곡(思母曲)은 듣는 이의 마음을 아리게한다. 대중음악의 가사에는 시대적 질곡에 대한 메시지가 문학적 은유와 스토리가 함축되어 있다.

즉 노동운동, 민주화, 반전사상, 저항과 분노, 환경운동, 풍자 등을 통해 상징적, 심미적 시대극 노래를 곧장 불렀다.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탄 미국의 반전(反戰)가수 ‘밥 딜런’처럼 말이다.
노랫말은 시대의 풍경화와 다름없다. 일제 강점기인 식민지배의 울분, 한국전쟁이 빚은 이산의 아픔과 분단의 상처 등 시대적 변화상을 다채로운 노랫말로 표출한다. 유행가는 시공간(視空間)을 뛰어넘는 시대적 절창이다. 삶이란 누구에게든 녹록하지가 않다.

사람 사는 게 거기서 거기고, 우쭐대는 너의 삶이나 초라해 보이는 나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구에게나 인생살이는 고단하지만, 그때마다 심금을 달래주는 트로트 한 곡으로 눈물도 삼키게 하고 웃음도 지어 온몸에서 희열을 느끼게 한다.

세계보건기구 통계에 따르면 코로나 감염 쓰나미에 휩쓸려 전 세계의 코로나 누적 사망자 430만명이 사라졌다. 2년째를 버티고는 있지만 터널의 끝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도 TV만 틀면 트로트 노래가 있어 위로를 받고 산다.

대중음악은 오락적 여흥거리가 아니라 용기와 인내를 심어 줘 부평초 같은 우리네 인생의 영원한 동반자 이기도 하다. 모든 노랫말이 시어(詩語)로 잘 짜여진 트로트! 이게 숭고한 문학의 힘 예술의 세계가 아니겠냐.


황성창 시인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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