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more
인물 독자마당

돈(錢)의 이중성(二衆性), 빛과 그림자(상편)

admin 기자 입력 2021.09.05 23:31 수정 2021.09.05 11:31

↑↑ 황성창 시인
ⓒ N군위신문
인간의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고통의 원인이 대개는 돈과 관련된 부분이 많다.
돈 때문에 인간 관계가 뒤틀어져 스트레스가 오고, 스트레스가 쌓이면 홧병 나게 마련이다. 성경에 ‘돈을 사랑하는 것은 모든 악의 뿌리’라는 구절이 있다.

재산 상속권 문제로 내노라하는 재벌가의 자녀들이 피터지게 치고받는 형제의 난을 봐 왔고, 부모 형제도, 우정도 돈 때문에 원수사이로 변해 쩍쩍 금가는 소리를 수 없이 들었다.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이 말은 돈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돈 없는 사람이 그렇게 말하면 개뿔도 없는 놈의 교만이고 건방진 소리라 질타할 것이다.

그럼 우리가 좋아하고 필요한 돈은 어떻게 벌어야 하는지 누구나 고민해 볼 일이다. 돈이 많으면서도 티 내지 않고 인생을 한가하게 즐기는 사람들을 이따금 보게 된다.

이들의 특징은 평소 가깝게 지내던 지인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후하게 처신하고 헤프다 싶을 정도로 돈을 잘 쓴다는 것이다.

돈을 벌 때도 죽을 둥 살 둥 남 눈에 피가 맺히도록 억척 같이 버는 것 같지도 않는데 무심코 베풀었던 인심이 시간이 흐르면서 인과응보로 되돌아와 존경 받는 부자가 되는 것 같다.

돈은 벌기도 어렵지만 그거 못잖게 돈 쓰는 법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쓰기가 더 어렵다고 한다.
돈의 순수한 가치를 존중하여 잘 쓰는 방법 중에 적선(積善)이 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오직 베푸기만 하는 좋은 일이 쌓이고 쌓이면 적선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았음으로 상대방에게 부담 줄 일도, 섭섭할 일도, 허전할 일도 없다.
불가에서 이를 무상보시(無相布施)라고 부른다. 물욕의 집착에서 벗어난 보시는 천심(天心)이다.

서울 성북동 길상사(吉祥寺) 공덕주 길상화 보살(吉祥華菩薩)은 고(故) 김영한 여사의 법명이다.

여사는 20대 시절 진향(眞香)으로 불리던 기생이었고, 중년들어 요정 대원각(大苑閣)을 운영했으며, 노년에 대원각을 법정 스님에게 무상보시해 수행 도량 길상사로 거듭나게 한 여장부(女丈夫)그 주인공이다.

길상화 보살은 생전에 이루지 못한 전설 같은 사랑이 있었다. 보살은 법정 스님에게 대원각 요정 7천평 땅과 40여동 건물 등 전 재산을 시주(施主)한다.

시주 결심을 발표하던 날 “아깝지 않습니까?” 법정 스님이 묻자 “내 평생 모은 돈은 백석(白石)의 시(詩) 한 줄만 못합니다” 끝내 이루지 못한 사랑의 여운만 가득히 남긴 채 시주했다.
이런 길상화 보살의 공덕비에 사랑했던 백석 시인의 절창 시(詩) 전문(全文)을 함께 새겼다.

‘가난한 내가/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오늘밤은 푹푹 눈이 날인다’로 시작하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시구(詩句)의 첫 3행이다. 돈의 가치와 올바른 돈의 쓰임, 이 얼마나 고귀한 적선인가!

우리나라에는 예부터 어려운 사람을 위한 베품의 문화가 꽤나 있었다.
고려시대 ‘고려도경’의 기록에 의하면 여름철 집집마다 물항아리를 묻어두고 행인에게 베푸는 ‘시수보시(施水布施)‘를 했다.

또 한양 북촌에 사는 사대부 마님들이 세모에 ‘성(城)’밖 나들이를 했는데 홍제원이나 퇴계원 등을 찾아가 행려병자(行旅病者)들에게 음식과 약을 베푸는 ‘활인보시(活人布施)’도 했으며, 행인들이 많이 넘나드는 고갯마루에 짚신을 삼아 걸어두면 행인들이 해진 짚신을 갈아 신고 갔다.

지금 노숙자가 많지만, 옛날 남대문이나 동대문 인근에는 팔도에서 올라온 노숙자가 우굴우굴 했다고 한다.

넓게는 겨울 새들을 위해 까치밥을 남겨두었고, 들에서 음식을 먹을 때에는 고수레를 하여 산 짐승과 굶주린 망자까지 배래했던 조상들이다.

소설 ‘베니스의 상인’ 샤이록처럼 돈밖에 모르는 노랭이들은 적선이 뭔지 알기나 하겠나.
노랭이들이 몇푼의 돈다발 흔들거리며 떵떵거리는 걸 보노라면 때론 측은할 때도 있다. 돈을 어떻게 벌고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인성을 알게 되는 바로미터다.

생전에 자신의 재산을 명예롭게 쓰라는 명언으로 ‘수의(壽衣)에는 주머니가 없다’는 말이 있다. 길상화 보살처럼 베풀며 산다면 이 사회가 얼마나 훈훈하겠나. 멀찌감치 떨어져 듣기만 한 적선! 가슴에 새겨 둘 만한 귀감이다.


황성창 시인 / 수필가


저작권자 N군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