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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미륵불

admin 기자 입력 2021.09.05 23:34 수정 2021.09.05 11:34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물은 깊어도 잴 수 있지만, 사람의 마음속은 알 수 없다.
종교를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며, 안 가진 사람도 있다.

대부분 사람은 자기가 믿고 싶어 하는 종교를 가지고 거기에 위안을 받고 의지하며 살아가려고 한다. 다양하고 많은 종교가 있지만, 그중에 예수 석가모니 등 4대 성인이 기억난다.

우리 집은 불심이 대단하다. 어머니는 사월 초파일 등 절에서 행사가 있으면 빠지지 않는다. 절에 가실 때는 쌀 한 되가량 보자기에 싸서 머리에 이고 동네 사람들과 같이 가신다.

어머니 주위에는 절에 다니시는 분들이 많다. 절에 가는 날이면 우리 집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집에서 약 1㎞ 떨어진 산기슭에 천여 평 남짓한 밭이 있다. 아버지가 일찍 할아버지를 여의시고 어린 나이에 가정을 꾸려가면서 힘들게 버신 돈으로 산 밭이란다,라고 어머니가 짬짬이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밭에 가는 길가에는 손바닥만 한 논들이 옹기종기 모여 아름다운 들녘을 수놓고 있다.
노을이 짙을 때면 산과 들이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쉴 사이 없이 흐르는 도랑물이 가뭄에 목을 축여준다.

도랑 건너 조금 올라가면 우거진 숲속에 넓적한 바위가 있다. 바위 밑에는 중생을 구한다는 작은 미륵불 하나가 천연스럽게 앉아 있다.

미륵불은 관세음보살 아미타불 비로자나불 마애불 등 다섯 선정불 중 하나이다.
미륵불에 대한 신앙은 삼국의 불교 전례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널리 신봉되었다고 전한다.
고구려에서는 죽은 어머니가 미륵 삼회에 참석할 수 있기를 발원하면서 미륵 불상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백제에서는 미륵 삼존불이 출현한 용화산 밑 못을 메우고 미륵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신라에서는 진자라는 승려가 홍륜사의 미륵불 앞에서 미륵불이 화랑으로 현신하여 세상에 출현한 것을 발원하면서 미시(未尸)라는 화랑이 나타났다고 전한다.

밭을 오가며 미륵불을 매일 같이 본다. 미륵불 주위에는 수십여 년 넘는 울창한 소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햇볕이 뜨거운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준다. 동네 사람들은 아침부터 오후 소 먹이러 갈 때까지 그늘 밑에 소를 매어 둔다.

어느 문중의 산인데 사람들은 동네 산인 것처럼 마음대로 사용한다.
문중에서는 이를 알면서도 동민들의 마음을 헤아려준다.

소나무에 이름표가 없어도 사람들은 누구의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자기가 늘 매어둔 나무에 소를 매기 때문이다. 한 번은 다른 사람이 내 나무에 소를 매어 두었다. 따질 수는 없지만, 내가 이 나무에 소를 주~욱 매어 왔다는 것을 말할 수 있다.

그 사람은 “바빠서 잠시 맨다는 것을 깜빡했다.” 하며 얼른 소를 몰고 나간다. 미안해하며 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씁쓸하고, 찡했다. 무언의 약속이라 하지만 너무 심했던 것 같았다.

오후가 되면 소를 매어둔 자리에는 소똥과 오줌이 뒤범벅된다.
소는 그 위에 앉았다 일어섰다 하며 온 엉덩이에 똥칠을 다 한다.
미륵불 주위에는 쇠파리 모기떼들이 득실거리며 악취가 하늘을 찌른다.

아버지 성격은 조용하고 정갈하신 편이다. 지저분하고 더러운 것을 보고 못 참는 성격이시다. 깨끗해야 적성이 풀리신다. 바지게를 지고 와서 호미로 소똥을 끌어 담아지고 밭 귀퉁이에 있는 거름 터에 들어붓는다.

지저분하던 자리가 깨끗한 것을 보시고 만족해하신다.
여름내 한두 바지게씩 들어부은 소통 거름이 집채만 하다. 겨우내 숙성 시켜 이듬해 봄이 시작되면 밭에 넉넉히 뿌린다.

땅심이 좋아 이웃집 농사보다 항상 더 잘 되고 한다. 알뜰히 농사지으며 살아가는 아버지의 근면 성실성 보면서 모름지기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 간다.
불심이 가득한 어머니 따라 우리는 불심을 키워 왔다. 어머니는 밭에 오르내리시면서 아무리 바빠도 미륵불 앞을 지날 때는 그냥 지나지 않는다.

두 손을 합장하고 기도하신다. 어느 여름, 어머니랑 같이 지심을 매려 밭에 갔다. 나는 앞서고 어머니는 뒤따라오신다.

아버지가 일하시는 모습을 한시라도 잊은지 없다. 빨리 가서 한 골이라도 더 매려고 달려가다시피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숨을 헐떡이며 구불구불한 산길 따라 미륵불이 있는 곳을 지나 밭에 갔다.

밭에 올라와서 뒤를 돌아본다. 저만치 뒤에서 따라오시던 어머니가 보이지 않는다. 사방은 쥐 죽은 듯 조용하고 바람 소리마저도 들리지 않는다.

유령이 곧 뛰어나올 것 같다. 소름이 끼치고 머리가 쭈뼛거리고 무서움이 든다. 걸음아 나 살리라 하면서 올라왔던 길을 정신없이 뛰어 내려간다.

미륵불 앞을 지나가는데 어머니가 그 앞에서 기도드리고 있었다.
금세 무서움이 가라앉고 온 사방이 눈에 들어온다. 어머니 곁에 앉아 기도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던지 어머니와 나는 미륵불에서 나와 밭으로 간다. 어머니! “미륵불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깨끗합니까?”하고 물어본다.

어머니는 정월 보름이면 미륵불한테 지난해 입은 창호지를 벗기도 올해 깨끗한 창호지로 갈아입히고 한다.

그러면서 모르는 척 시침을 떼신다. 머쓱해 하면서 “어머니! 미륵불한테 무슨 기도를 드리십니까?”라고 물어본다.

어머니는 “우리 가족이 건강하고 잘 살게 해 달라고 빈다”라고 한다. 미륵불은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를 저버리지 않으시고 언제나 우리 가족을 지켜주셨다.

어머니가 떠나시던 날 상여가 미륵불 앞을 지날 때 미륵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불심이 가득한 어머니 따라 우리 가족은 미륵불에게 감사와 정성을 다한다.


대구가축병원 권춘수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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