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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글 쓰는 이유

admin 기자 입력 2021.10.05 10:19 수정 2021.10.05 10:19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세상 밖으로 나를 드러 내보이고 싶어서 아니다. 그렇다고 유명한 작가가 되고 싶어서 쓴다는 것은 더구나 아니다.

글의 완성도는 떨어질지라도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이제까지의 삶의 흔적을 한 줄의 글로 엮어 남겨 놓고 싶어서이다.

일기장처럼 쓸 수 없다. 붓 가는 대로 쓰면 된다고 하지만, 글 다운 글을 쓰려면 쉽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모여 사는 공동체에는 법과 규정과 형식이 있듯 글에도 기승전결이라는 법과 형식이 있다. 여기에 맞춰 글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남이 써 놓은 글을 보면 언뜻 보기엔 쉬울 것 같아 보여도 막상 붓을 잡아보면 그렇지 않다. 한 줄도 써 내려가기가 힘들 것이다.

붓은 잡으면 잡히고 놓아버리면 바람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냥 불쑥 내키는 감정으로 글을 쓸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면 착각일 것이다. 보기는 쉬운 것 같아 써 놓고 보면 허점투성이다. 부단한 노력 없이는 결코 쓸 수 없을 것이다.

매일 같이 쏟아지는 신문 잡지 광고 등을 쓰는 작가도 밤을 새워가며 혼신을 다 할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어느덧 붓을 놓은 지 반세기 훌쩍 지났다. 글쓰기를 해 보려고 생각했으나 마음뿐이다. 정신적 육체적 모두 소진되고 남은 건 빈 껍데기뿐이다.

손가락은 갈고리 같고 머리는 백발이고 눈은 초점을 잃은 지 오래다. 그러면서도 글 쓰고 싶은 욕심이 있어 남들이 흔히 말하는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만 믿고 부질없는 용기를 내어 붓을 잡아 보려고 한다.

문학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은 어느 정도 있어야 하거늘 취미와 소질 하나도 없다. 새로운 학문에 도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느지막이 붓을 잡는다는 것이 남들의 눈에 이상하게 비칠까 봐 저절로 몸이 움츠러진다.

글을 배우기 시작한 지 몇 주 지났다. 아직도 모르는 것이 아는 것보다 더 많아 고민이 깊어진다. 집을 하루아침에 지을 수 없다는 거를 뻔히 알면서도 마음만 바빠 허둥댄다.

남들 보기에 민망해서 열공하는 척해도 학습 진도는 제자리걸음이다. 처음에는 잘 써 보려고 마음먹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자신감이 떨어진다 하는 수 없어 내 길이 아닌가 싶어 포기할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도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며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느다란 희망을 가지고 불씨를 댕겼다.

글로써 모르는 것을 알게 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없다. 친구들과 같이 외국에 다녀온 적 있다. 친구들은 내가 영어를 잘하는 줄 알고 사고 싶은 물건을 가리키며 가격이 얼마냐고 주인한테 물어보라고 한다.

내 속 사정도 모르고 무턱대고 말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어찌할 줄 몰랐다. 하는 수 없어 자존감도 있고 해서 주인에게 더듬거리며 말을 건넨다.

손짓·발짓으로 볼펜과 메모지를 건네받았다. 주인은 알아차리고 물건을 들고 나온다. 그제야 마음이 놓이고 내 체면도 서게 되었다.

글은 주술 관계가 뚜렷해야 하지만 말은 단어만 알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때 내가 글을 쓸 줄 몰랐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별의별 생각이 다 난다.

글의 힘은 바람처럼 보이지 않지만, 그 위력은 대단한 것이다.
판사의 판결문에 누구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핸드폰, 컴퓨터에서 지워진 글을 포렌식으로 다시 찾아내듯 한 번 쓴 글은 지워도 흔적은 그대로다.

아버지는 어렵게 사시면서 글을 쓸 줄도 읽을 줄도 아셨다 하시면서 자랑삼아 이야기하신다. 아버지 세대 때 글을 알고 계시는 어른들이 몇 분 안 된다고 하신다.

그래서 자식들의 이름을 면사무소에 올릴 때면 동장이 대리해 주었다고 말씀하신다. 아버지는 손수 이름을 지어 주시고 사무소에 올렸다고 하시면서 목에 힘을 주신다. 그러시면서 어떠한 일 있어도 글은 꼭 배워야 한다는 말씀을 잊지 않으셨다.

세상은 사람들의 겉모양 보고 평가하기 일쑤다. 한 번은 볼일이 있어 면사무소에 들렸다.
허름한 복장 차림을 한 중년 부인이 고개를 숙인 채 앞만 보고 들어온다. 민원실에서 담당 직원이 서류를 건네주면서 필요한 곳을 연필로 표시해서 글을 작성하고 그 란에 서명해 달라고 한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부인이 글을 쓸 줄 알까 하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글을 쓸 줄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글 쓰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글이 없었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평가하는 요즘 세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글은 자기의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과 방법이다. 일상에서 상대방에게 이야기하지 못할 피치 못 할 사정이 있을 때 우리는 글로서 의사전달을 한다.
뜻하지 않은 코로나-19로 부모가 돌아가셔도 연락도 할 수 없었다. 연락을 받아도 갈 수도 만날 수도 없었다.

친인척들은 부득이 글로 조의와 위로를 전한다. 상주는 세월은 좋으나 시절을 못 만났다며 애끓는 울음을 터뜨린다. 글은 일상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을 하며 한 시대의 생활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까지 내 삶의 흔적을 한 줄의 글로 엮어 서툰 글일 망정 써두려고 한다. 이것이 이유 중 하나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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