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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달라진 세상

admin 기자 입력 2021.11.03 10:38 수정 2021.11.03 10:38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인간과 친숙하게 지내온 동물을 꼽으라면 개(犬)라 할 것이다.
옛날에도 사람들은 먹을거리가 없어도 개는 한 마리씩 길렀다고 한다. 밤이면 허전하고 적적해 개가 있으면 마음이 든든했다. 때로는 다정한 친구처럼 말 벗도 되어 주었다.

돌이켜보면 지난날 개들의 일상은 너무나 비참했다. 삼시 세끼는 고사하고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기껏 먹는 것이라곤 설거지하고 난 개숫물 찌꺼기가 전부였다. 어쩌다 고기 한 점 먹을 때도 있지만, 살 한 점 없는 뼈뿐이었다. 이마저도 잘 사는 집이라야 일 년에 한두 번 얻어먹을까 했다.

찌는 듯한 무더운 여름, 배가 홀쭉한 개 한 마리가 먹을거리 찾으려 종일 헤매었다. 대문간 한쪽에서 뼈다귀를 핥고 있는 개를 보았다. 몸을 까짓것 낮추고 꼬리를 늘어뜨리고 엉금엉금 기어간다.

정신없이 뼈를 핥아먹고 있던 녀석이 응~ 거리며 눈을 부릅뜨고 쏜살같이 달려든다. 한 못 타리도 얻어먹지 못하고 똥 줄기 빠지게 달아난다. 가다 말다 아쉬운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가던 걸음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주인이 돌 팔매질하며 뒤따라온다.
세상천지 오갈 때 없는 개는 눈물을 삼키며 온갖 괄시와 서러움을 받아가면서 질곡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러면서도 주인한테는 충성심이 대단했다. 집에서 빈둥빈둥 놀면서 저지레질만 하는 것 같아 보여도 주인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 준다. 주인이 깊은 잠에 누가 왔어도 모를 때면 컹컹 짖어댄다.

잠시 집을 비울 때도 집 구석 구석을 돌아다니며 집을 지킨다. 밤낮 대문간 앞에서 어슬렁어슬렁 거리며 집에 들어오고 가고 하는 사람들을 일일이 살피며 온갖 간섭 다 한다.

낯설고 이상한 사람이 들어오면 인상을 찌푸리고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한 마리 개가 열 사람 몫을 한다는 말이 있다.

조선 후기 주인을 구하고 목숨을 바친 의로운 개의 무덤 의구총(義狗塚)이 있는 거를 보면 사람과 개는 오래전부터 깊은 인연이 있었던 것 같다. 예부터 사람과 더불어 살아오는 동안 한 식구처럼 되었다.

어느 겨울, 초저녁에 나간 주인이 밤이 이슥도록 돌아오지 않는다. 식구들은 걱정하며 밤을 새워가며 목이 빠지게 기다린다. 개도 사립문을 내다보면서 귀를 쫑긋 세우고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주인이 투전판에 가서 밤새도록 투전하다 가지고 간 돈을 다 잃어버리고 삼경이 지날 무렵 허탈한 모습으로 터벅터벅 걸어온다. 멀리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 듣고 개는 주인 발걸음 소리라는 것을 알고 불이 켜져 있는 방을 보고 반가운 음성으로 짖어대며 주인이 돌아온다는 거를 알린다. 밖을 내다보면서 꼬리를 흔들면서 낑낑거린다.

주인이 힘없이 사립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온다. 개는 반가워 오줌을 찔끔찔끔 싸면서 좋아 어쩔 줄 모른다. 꼬리를 흔들어 대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한다. 앞발로 주인 다리를 꼭 껴안는다.

세상 모두가 비웃고 손가락질해도 개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주인은 이 세상 자기를 반겨줄 사람 하나 없는데 반겨주는 개를 보고 너무 반가웠다. 그 자리에 덥석 주저앉아 개를 얼싸안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눈물짓는다.

얼마 전, 뇌졸중에 걸린 한 할머니가 길을 잃어버리고 논두렁에 쓰러져 있는 것을 개가 구했다는 소식을 티브이에서 보았다. 자식들과 같이 지내고 있던 할머니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어디로 나가셨는지 아무도 모른다.
온 식구가 찾으려 다녀도 찾을 길 없어 발만 동동거렸다.
집에서 기르고 있던 개가 쓰러져 있는 할머니 곁에 있는 것을 드론이 발견했다. 할머니는 집으로 무사히 돌아오게 되었다.

뒷이야기에 할머니가 죽어가는 개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살렸다는 것이다.
개는 자기를 살려준 할머니에게 은혜를 갚았다. 은혜를 모르고 사는 세상, 낯부끄러워 개 보고 얼굴 들 수 없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괄시와 서러움, 쓰라린 고통을 딛고 살아온 개들한테 신이 보호하여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어 주었다. 똥개가 반려견으로 호칭이 바뀌었다.

불편하던 잠자리가 대궐집으로 바뀌었다. 종일 찾아다녀도 먹을거리가 없어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집으로 돌아왔던 것이 한두 번 아니었을 텐데…. 이젠 먹을거리가 지천을 이룬다. 여태까지 얼굴 한 번 씻어 본 적이 없었다.

남들이 흉볼까 봐 목욕하고 이발도 하고 발톱도 깨끗하게 했다. 봄·가을에 펫 페스티벌을 벌려 우아한 멋을 한껏 뽐내며 자랑한다.

세상이 천지개벽한다. 엊그제만 해도 얘기가 싼 똥을 보아도 냄새가 난다며 얼굴을 찌푸리고 했다. 이제 와서 개가 싼 똥을 보고 아무렇지 않은 듯 예사로 치우는 것을 본다.

일상에 아침 한 끼라도 먹지 않으면 온 식구가 매달려 난리법석을 떤다. 병원에 입원시켜놓고 개는 침대 위에 주인은 마룻바닥에서 잠을 자며 지극정성 다한다. 죽어도 장례식장에서 엄숙한 장례를 치러 준다.

여태까지 개한테 못해 주었던 걸 할 수 있는 거라면 다 해준다. 이보다 더 좋은 세상 어디에 있으랴?

세상 일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
개와 함께 같이 지내면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말에 도시·농촌에는 개가 넘친다. 어린애들도 창의력과 인성교육에 좋다며 소문이 날개를 단다.
뼈다귀 냄새도 맡아보지 못하고 쫓겨났던 개가 달라진 세상을 보면서 어깨를 으쓱한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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