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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까만 말총갓

admin 기자 입력 2021.12.19 15:10 수정 2021.12.19 03:10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대청마루 한구석에 빛바랜 갓 집 하나가 덩그러니 걸려 있다.
바람이 불면 덜그럭 소리 내며 깊은 잠을 설치게 한다. 그 속에는 말총으로 만든 까만 갓이 들어있다. 아버지는 외출하고 돌아오시면 갓을 깨끗이 손질해서 갓집에 넣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으셨다. 갓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갓은 고종 전까지만 해도 귀천을 구별했다. 양반은 양태가 넓은 흑립黑笠, 서민 천민 보상 등은 패랭이를 쓰고 다녔다.

아버지의 갓은 유난히도 커 보였다.
어린 마음에 우리 집이 양반집 같아 보였다. 지금에야 우스갯소리 같이 들리지만, 그때는 그런 데로 갓을 보고 사람의 신분을 차별했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을 것 같았다.

아버지는 농사일만 하셨다. 그럼에도 외출하실 때는 여름에도 풀 먹인 하얀 모시 바지저고리에 두루마기 입고 양태가 넓은 까만 말총 갓을 쓰고 다녔다.

훤칠한 키에 흑립을 쓰고 두루마기 입은 풍채가 언뜻 보기엔 농사짓는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

설 추석 명절이 다가오면 아버지는 갓집에 있는 까만 갓을 꺼내어 손질하시고 어머니는 아버지 뒷바라지 하시느라 분주하셨다.

차례는 늘 큰집부터 작은집 순서대로 지내는데 의관을 갖추고 차례를 지내시는 제관은 아버지뿐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거추장스러운 의관을 정제하시는 것을 볼 때마다 늘 못마땅했다. 아버지 종형제들은 평상복 입고 차례를 지내고 하는데, 유독 아버지 혼자만 번거롭게 의관을 갖추고 차례를 지내는지 알 수 없었다.

한 번은 차례를 지내고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에게 물어보았다. “아버지요, 차례 지낼 때 아버지 종형제들은 평상복 입고 지내는데 아버지는 왜 번거로운 의관을 정제하고 지내십니까?” “글쎄다, 누구나 어렵게 살고 있지만, 어렵게 살아도 예를 다하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네 할아버지는 청빈하게 사시면서도 예를 다 갖추고 꼿꼿한 선비정신으로 살아셨단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예와 곧은 삶을 지켜보면서 살아왔기에 모름지기 몸에 뱄을 지도 모른다.”라고 하시며 못내 아쉬움을 토로하신다.

아버지의 깊은 뜻도 모르고 아버지를 단순히 평범한 농사꾼으로 폄하했던 것이 나를 너무나 속상하게 했다.

인제 와서 지나온 날 들을 돌이켜 보면 아버지를 내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게 되었다. 비참하고 절망감에 깨알보다 더 작은 온몸이 으스러져 버렸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선비정신을 나에게 물려 주려고 어릴 때부터 소소한 일에도 지나쳐 보지 않으시고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늘 내 곁에서 나를 지켜봐 주셨다.
일곱 살 때였다. 아래채 방에 어린 남매를 가진 가족이 세 들어왔다.

아저씨는 경찰이었고 아주머니는 마음씨 좋아 보였다.
그 집 아들은 나보다 한두 살 어려 보였다. 며칠 지난 뒤 아버지는 나를 그 사람에게 천자문을 배우게 했다.

천자문 배우려 아래채에 내려갈 때 아버지는 옥색 바지에 코가 뾰족한 버선을 신기고 대님까지 매어서 보냈다.

처음에는 그렇게 하기 싫다고 떼를 썼다. 하루 이틀 지나 천자문이 끝날 때쯤 스스로 챙길 줄도 알고 멋도 부릴 줄 알았다.

아버지는 힘들고 어려운 일을 혼자 버텨가면서 이겨낼 줄 아는 인내심과 자립심을 키워주셨다. 아버지는 아저씨가 다른 지방으로 발령받아 갈 때 글을 가르치느라 수고했다며 농사지은 쌀이랑 고추 마늘 등 농산물을 풍성히 드리면서 아쉬운 석별의 정을 나눴다.

예사로 보였던 것이 이젠 그냥 지나쳐 보이지 않았다. 자식을 위해 아버지가 하신 일들이 하나씩 머리에 떠오른다.

나는 같이 놀던 영수한테 잘 가라며 마을 밖까지 따라갔다.
6·25 피란 때 불에 타서 흔적도 없어진 아홉 칸짜리 기역 자 집을 새로 짓고 농사일이 제대로 잡혀갈 무렵이었다.

당시 군위지역 이외 다른 지역에는 중 고등학교가 없었다.
중학 2학년 때 의성 안계면에 사는 한 남학생이 고등 2학년이라고 밝히며 자취방을 구하러 왔다. 아버지는 쾌히 승낙했다.

우리 집 애가 중학 2학년인데 공부 가르쳐 주면 방을 주겠네 하고 조건을 건다. 학생은 열심히 해 보겠다고 대답했다. 나는 기초학력이 모두 미달이었다.

거기에다 머리까지 둔해 그 학생이 나를 가르치는 데 애를 먹었다. 아버지는 학생이 졸업할 때 그동안 자식을 잘 가르쳐 줘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시며 방세를 면제하고 졸업을 축하해주었다.

아버지는 내가 갓쓰고 선비정신으로 청빈하게 살아가기를 바랐건만, 나는 갓을 내동이 쳐 버리고 넓은 바깥세상으로 뛰쳐나와 버렸다. 바깥세상을 한 번도 구경하지 못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눈이 있어도 볼 수 없고 귀가 있어도 들을 수 없었다. 넘실거리던 파도가 숨 죽은 듯 조용해져 버린 내 성격이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버렸다.

천자문을 끝내면 모든 것이 거울 알 같이 훤하게 들여다볼 수 있을 거로 생각했던 것이 꿈이었다. 바깥세상에서 꿈틀대는 스물여섯 알파벳 글자를 뛰어넘지 못하고 허우적거리고 있는 내 모습에 환멸을 느꼈다.

그럼에도 나는 단 한 번이라도 아버지를 원망해본 적이 없다. 아버지는 양태가 넓은 까만 갓을 선비의 상징으로 여겼다. 그래서 아버지는 어떻게 하든 나에게 갓을 씌우고 싶어 하셨던 것 같았다. 갓 쓰고 선비정신으로 청빈하게 살아가도록 온갖 정성을 다해 주셨다.

나는 아버지의 뜻을 받으려 살지는 못했지만, 결코 아버지의 염원을 저버리지 않았다. 느즈막이 사각모 쓰고 기쁨의 영광을 아버지께 바쳐 드렸다. 거실에는 아버지가 애지중지 여기시던 까만 말총 갓과 아버지 혼이 담긴 사각모 사진이 나란히 걸려있다.

대구가축병원 권춘수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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