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more
인물 독자마당

기타 배우러 가는 길

admin 기자 입력 2022.01.03 21:44 수정 2022.01.03 09:44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사람들이 나이가 많아지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살라 했는데, 배움에 굶주린 난 아직도 밤거리를 헤맨다.

여태 무엇을 하며 살았던지 인제 와서 허둥댄다. 시간이 한가롭게 기다려 주지 않고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해가 뜨고 질 때면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나를 더욱 옥죈다.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지푸라기 하나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다. 이마저 어영부영하다 바람에 날려 흔적 없이 사라질까 봐 두렵고 무섭다.

장터에는 있는 건 다 있고 없는 건 없다. 쓸 데 있는 말(言)도 있고 없는 말도 있다. 북적대는 이야기 속에 내가 애타게 배우고 싶어 하던 기타 이야기도 있다.

기타 이야기 들으면서 귀를 쫑긋하고 귀담아듣는다. 진흙 속에서 진주 찾은 것보다 더 소중했다. 백방 수소문 끝에 삼국유사 군위 도서관에서 기타를 가르친다는 것을 알았다. 흥얼거리며 한걸음에 달렸다.

담당 직원이 등록일을 알려 주면서 오전 10시까지 등록해야 한다고 소상히 설명해 준다. 행복한 마음으로 손꼽아 기다렸다.

오후 1시경에 등록하려고 갔더니 접수가 마감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두 번째 후보군에 들어가 있다고 한다. 청천벽력같은 소리에 희망 포부 모두 한순간에 물거품 되어버렸다.

좌절감 허전함 등 억누를 수 없는 감정이 쏟아져 나온다. 내 잘못도 있지만 한 두시간 늦었는데 등록을 마감했다니 말이 되느냐며 마구 대들었다.

청강생으로 넣어 달라고 해도 안 된다고 한다. 서서 들을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이유다. 그럼 복도에서 듣겠다고 고집부리다 설렌 마음을 접고 돌아왔다.

기타 배우고 싶은 생각에 잠 못 이른 적이 한두 번 아니었다. 평생에 한 번밖에 오지 않는다는 절호의 기회를 잃어버리고 일 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견딜 수 없는 고통과 괴로움이 아닐 수 없었다.

폭풍이 지나가고 고요가 찾아든다. 어느 날 아침 도서관에서 2021년 9월 8일 오전 10시에 참석하라는 문자 메시지가 왔다. 긴가민가하며 읽고 또 읽었다. 이번에는 놓칠 수 없다며 정신을 단단히 했다.

마음이 급해 마스크를 쓰지 않고 도서관에 들어가니 직원이 마스크를 쓰세요. 한다. 밖으로 나와 차에 둔 마스크를 쓰고 들어간다.

강의실에 들어가는데 기타를 가지고 가는 거를 깜박하고 또다시 밖으로 나와 기타 들고 강의실에 들어갔다. 교실에는 수강생들이 자리 잡고 기타 연습을 하고 있다.

수강생들은 눈도 주지 않는다. 모두는 오래전부터 강의를 들어왔던 것 같다.
간간이 웃기도 하고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주고받고 한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나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같이 서먹서먹했다. 분위기도 그렇고 모든 것이 다 낯설었다.

나는 의자가 없어 서성이다 주인이 없어 보이는 빈 의자에 아무렇게나 엉거주춤 앉았다. 10시 정각에 강사님이 들어오신다. 기타 둘러메고 들어오는 단아한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음악 세계에서 묻어나는 맛과 멋 그리고 해맑게 웃는 모습에 따뜻한 정이 간다.

수강생들 앞을 지나며 일일이 인사한다. 예의도 바르다. 음악을 통해 좋은 인연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음악이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감이 난다. 음표 박자 어느 거 하나 제대로 아는 거 없이 무작정 기타 치고 싶다는 단순한 욕망으로 찾아 헤맸던 것이 가관이었다.

한 달이 지나도 음악 용어와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허둥댔다.
강사님은 내 모습을 지켜보면서 빠짐없이 열심히 들으면 잘 칠 수 있다고 용기를 준다. 거짓말 같지만 그렇게 되도록 믿고 싶었다.

그러나 내 처지가 이러고 보니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 슬며시 걱정이 밀려든다. 한 달이 지나며 조금씩 나아져야 하는데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연말이면 발표회가 있다고 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마음이 조급해진다. 느지막이 기타 치며 노래 부르며 즐거운 여생을 보내려고 했는데 오히려 충격을 받아 마음의 치유가 더 힘들어질까 봐 걱정된다.

허우적거리며 겨우겨우 따라가느라 세월 간 줄 모른다.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고 들녘도 황금 물결을 이룬다.

후덥지근한 공기가 아침저녁으로 제법 상큼해진다. 하늘도 푸르고 마음도 푸르다. 세상 모두가 풍성하고 활기차 보이는데 나 혼자만 근심 걱정으로 우울하다.

연말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소리가 내 마음을 불안하게 한다. 연말이면 발표회가 있다는 게 신경이 쓰인다.

처음으로 배운 곡이 『클레멘타인』 이다. 이 곡은 미국 서부 민요로서 미국 서부에 금을 캐려 이주해 온 광부가 딸이 오리를 물로 돌려보내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아 딸을 그리워하는 내용이다. 처음부터 이 곡 하나면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강사님한테 이 곡을 발표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강사님은 한 곡이라도 완벽하게 하면 그보다 더 큰 수확은 없다며 권하신다.
내 스마트 폰에 노래하며 연주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주시며 자상하게 해 주신다. 2021년 12월 22일 발표회 날이다. 차례대로 한 곡씩 한다.

가슴이 쿵덕 방아 찧는다. 집에서 혼자 할 때는 잘했는데 사람들 앞에 주눅이 든다. 무대에 올라가는데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수강생들의 눈이 일제히 나를 보고 쏜다.

겁에 질려 어떻게 했던 줄 모르고 끝났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소리가 들린다.
이번 학기는 못 했지만, 다음 학기는 잘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새 기타 배우러 가는 길이 뻔질뻔질해졌다. 다가오는 2022년 임인년 새해에는 더 잘할 수 있도록 간절히 소망해 본다.

대구가축병원 권춘수 원장


저작권자 N군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