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more
인물 독자마당

추임새

admin 기자 입력 2022.02.20 23:40 수정 2022.02.20 11:40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얼쑤! 먼 데서 들려오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무슨 소리인가 창밖을 내다본다.
대보름 지신밟기 풍물패 꾼들이 풍물을 치며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방바닥에 아무렇게 벗어 놓은 옷을 정신없이 챙겨 입고 황급히 뛰어나간다.

정월 대보름날 지신밟기· 귀밝이 술· 피마자 잎(아주까리 잎)· 부럼 깨기· 연줄 끊어 먹기· 쥐불놀이 · 달맞이 등 즐거웠던 추억들이 아련하다. 하루에 세 집 이상 오곡밥을 얻어먹으면 그해 건강과 운이 좋아진다면서 바가지 들고 아침 일찍 밥 얻으려 셋집을 다녔던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 마을에는 마을 사람들로 구성된 풍물패가 있다. 정월 대보름이면 빨강 노랑 파란색으로 물들인 띠를 두른 뻣 상모를 쓴 상쇠와 징 쟁이, 채상모를 쓴 북 쟁이, 장구 쟁이, 법구 쟁이, 열두 발 상모 쟁이 들이 지신밟기 하며 분위기를 한 것 자아낸다. 산 토끼 껍질을 등에 걸머 매고 목 총을 든 포수와 탈을 쓴 각시 등 춤꾼들도 빠지지 않는다.

이 행사는 오래전부터 마을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다.
구경거리가 없던 시절 우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구경거리가 없었다. 또래들은 하나같이 허름한 옷차림에 새카만 고무신 신고 구름 떼처럼 모여 패 꾼들의 꽁무니에 따라다녔다.

점심나절 다 되어 갈 무렵 패 꾼들은 우리 집 대문 입구에 와서 대문 굿을 한다. 굿이 끝나기도 전에 어머니가 합장하며 사립문을 열어 준다. 패 꾼들은 연신 고개를 끄떡이며 들어와서 마당 한 바퀴를 휭~ 돌면서 지신을 밟는다.

또래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구경꾼들 앞에 앉아 정신없이 쳐다본다.
포수가 나무로 만든 총으로 찌를 시늉을 할 때마다 또래들은 기겁했다. 뒤로 넘어지면서도 신이 났다.

상쇠가 손바닥에 침을 퉤퉤~ 뱉으면서 채를 다잡고 꽹과리를 힘차게 친다.
패 꾼들은 박자에 맞춰 풍장을 치면서 흥겹게 지신을 밟는다.

쌀쌀한 날씨에도 패 꾼들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는다. 등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상쇠는 꽹과리를 치면서 패 꾼들의 동작 하나하나를 살핀다.

패 꾼들이 지친 것을 눈치챈 상쇠는 꽹과리로 박자를 빠르게 느리게 하다가 갑자기 멈춘다. 풍물 소리에 시끌시끌했던 마당이 갑자기 숨 죽은 듯 조용해진다. 패 꾼들은 마당에 차려 놓은 술과 안주와 떡국을 드시며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친다.

패 꾼들의 얼굴이 보름달처럼 불그스레 달아오른다. 비나리는 상쇠에게 찾아갈 집, 한 집 한 집 소개하며 세심한 주의를 신신당부한다.

상쇠는 알아들은 지 못 알아들은 지 일어서면서 “신명 나게 한 판 놀아 보세.” 하며 꽹과리를 신나게 치면서 마당 한 바퀴를 숨도 쉬지 않고 휭~ 하니 돈다.

패 꾼들도 따라 마당 한 바퀴를 돌고선 전열을 정비하고 장기를 자랑할 준비 한다. 구경꾼들은 보고만 있어도 그냥 신이 난다.

패 꾼들의 현란한 끼와 장기에 구경꾼들은 열광한다. 어려운 가락을 한고비 넘길 때마다 상쇠가 얼쑤! 하며 힘을 실어준다. 구경꾼들도 어깨를 들썩이며 상쇠 소리에 맞춰 얼쑤! 하며 따라 한다.

지신밟기 분위기는 하늘을 찌르며 사람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상쇠는 채상모를 쓴 북 쟁이, 장구 쟁이, 법구 쟁이 등 예닐곱 쟁이 앞에 가서 꽹과리로 하나씩 불러낸다.

쟁이들은 꽹과리 박자에 맞춰 나풀나풀 춤추며 걸어 나온다. 쟁이들은 빙 둘러서서 커다란 원을 그린다. 장구 쟁이가 너풀너풀 춤추며 한가운데 나와 신들린 사람처럼 정신없이 친다.
사람들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한 자리에 가만히 서 있지 못한다.

풍물패의 꽃인 열 두발 상모 쟁이가 사뿐사뿐 걸어 나와 구경꾼들에게 인사한다. 사람들은 박수로 응답한다.

열 두발 상모가 허공을 가로지르며 둥근 원을 그린다. 열 두발 상모가 빙글빙글 돌아가는데 쟁이가 가로질러 뛰어넘을 때 구경꾼들은 가슴 조이며 숨죽인다.

엎드려 팔에 턱을 괴고서 상모를 돌릴 때는 우레 같은 박수가 쏟아진다. 찌든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핀다. 패 꾼들은 사람들의 혼을 빼놓고 부드럽고 느린 가락으로 작별의 지신을 밟으면서 마당을 한 바퀴 휭~ 돌고선 구경꾼들의 열열한 박수를 받으며 떠난다.

패 꾼들이 남기고 간 여운이 잔잔히 흐른다. 어머니는 마당에 멍석을 펴고 푸짐하게 차린 음식상을 들고나온다.

메마른 대지에 시원한 한줄기 소낙비와 같다. 한 사람이 곱사춤을 추면서 분위기를 만든다.
흥이 서서히 달아오르자 시샘이 많은 노을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 밉상스럽게 찾아와 땅거미를 내리고 어둡살을 짙게 하면서 심술부린다. 사람 하나 없는 마당에 고요와 적막감이 흐른다.

정월 대보름이면 꽹과리 치면서 얼쑤! 하며 추임새를 넣어 주시던 그때 그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대구가축병원 권춘수 원장


저작권자 N군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