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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절. 지보사

admin 기자 입력 2022.03.04 10:37 수정 2022.03.04 10:37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입춘이 지났지만, 새초롬한 날씨에 찬 바람까지 불어 한결 더 춥게 느껴진다.
어느 날 겨울 차림을 한 보살 한 분이 진돗개 약 처방을 받으러 왔다.

어머니께서 생전에 절에 열심히 다녔기에 관심이 있어 물어보았다. 어느 절에 계십니까? 지보사(持寶寺)에 있다고 한다. 어릴 때 어머니 따라 가본 적이 있다며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어머니는 항상 그랬다. 절에 가는 날이면 이것저것 챙겨 가시느라 아침부터 분주했다. 지금도 어머니의 분주히 하던 모습이 아련하다. 어릴 때 가 보았지만 한 번 더 가보고 싶었다.

보살한테 언제쯤 가면 만날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았다. 주중은 어렵고 주말에 오시면 좋겠다는 말을 남겨 두고 떠나셨다.

군위읍 선방산 자락에 있는 지보사(持寶寺)는 천년 고찰로 은해사의 말사이다. 673년(신라 문무왕 13) 신라의 고승 의상이 창건하였다.

당시 이곳에 청동 향로와 가마솥, 맷돌 세 개의 보물이 있다고 하여 지보사라 칭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유실되어 지보사의 뚜렷한 사적(史跡:국가가 법으로 지정한 문화재)이 없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는 삼층석탑(보물 제682호), 석조삼존불좌상(17세기 후반) 지장시왕도(은혜사 성보박물관 소장), 무염당수계명수언비와 무염당탑(1700년) 뿐이지만, 천년 고찰로 지금까지 꿋꿋이 지켜온 신라 당대에 유일한 절이다.

우리 문화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지보사에 관한 이야기를 소상히 담을 수 없어 아쉬움이 든다.

초등 4학년 때 어머니 따라 지보사에 가보았던 기억을 떠올려 본다. 불교 5대 명절은 석가모니가 탄생한 것을 기리는 석가탄신일, 석가가 출가하는 출가일, 석가가 깨달음을 얻어 도를 이룬 것을 기리는 성도일, 석가가 80세에 이 세상을 떠난 날을 기념하는 열반일, 조상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올리는 재(백중일) 등 5대 명절이 있다.

기억이 뚜렷하지는 않지만 4월 초파일, 7월 백중, 동짓날 어머니 따라 다녀왔던 기억은 있다. 그날이 4월 초파일이다.

우리 집은 동네 사람들로 북적댄다.
모두 밥그릇 한 사발 될까 말까 한 쌀을 보자기에 싸서 머리에 이고 한 줄로 서서 걸어간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한 줄로 서서 왜 그렇게 걸어갈까? 초등생들이 자연 학습할 때 한 줄로 서서 걸어가는 거와 똑같았다. 우습고 이상했다.

들판에 빽빽이 서 있는 보리가 꽃향기를 가득 먹은 4월의 바람에 몸을 흔들며 신이 난다.
사람들은 걸어가면서 일상 이야기에 잠시도 입을 놀리지 않는다. 어디쯤 갔을까 다리가 아프고 피곤기가 찾아든다.

내 또래는 아무도 없는데 힘들어 가며 왜 어머니 따라 절에 가는지 알 수 없다.
아침에 동네 어른들이 웅성거리는 바람에 멋 모르고 따라나섰던 거 같다.

아픈 다리를 양손으로 주물리며 걸어간다. 들판을 지나 한 참 더 올라간다.
선방산 끝자락 양지쪽에 빽빽이 서 있는 소나무 사이로 동네가 희미하게 보인다. 상곡동이다. 상곡동이 나오면 절이 곧 나온다는 거를 알고 조금만 더 걸으면 되겠구나, 힘 내어 열심히 걸었다.

구불구불 한 산길 따라 계속 올라간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울창한 소나무가 따가운 햇볕을 막아 그늘을 만들어 준다. 시원한 산들바람이 더위를 식혀준다. 길 위에 솔 갈비가 소복 쌓여 올라가기가 한결 수월했다.

산모퉁이 돌아 올라가는데 숲 사이로 절 지붕이 보일락 말락 한다.
제일 먼저 절에 도착할 생각으로 부지런히 걸었다.

호흡이 가빠지고 다리가 풀려 한 발 짝도 더 걸어갈 수 없었다. 땀이 얼굴을 타고 길바닥에 뚝뚝 떨어진다. 천신만고 끝에 절 입구에 도착했다.

절 입구에 작은 구름다리가 놓여 있다. 절 주위를 살피면서 다리 위를 걸어간다. 절에 들어가면 첫 번째 만나는 것이 일주문인데 보이지 않는다.

그 자리에 절을 중수할 때 기부금은 낸 사람들의 명단이 적힌 커다란 비가 서 있었다. 어머니한테 절에 가면 아버지 이름이 적힌 비가 있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은 적 있다.

비 앞에 서서 명단을 훑어보았다. 한자를 해독할 수 없었지만, 아버지 함자(函子) 權周燮이라고 쓴 한자는 읽을 수 있었다.

시린 삶을 살던 시대였다. 어린 마음에 기부한 금액은 적혀있지 않아 알 수 없지만 기부하셨다는 것에 아버지의 신앙심이 높다는 거를 알았다.

그래서 어머니도 절에 열심히 다니시는구나 생각했다. 나도 아버지 유전인자를 받아서 그런지 절에 관심이 있는 걸 보면 그런 거 같기도 하다.

대웅전으로 뛰어 올라갔다. 대웅전 안에는 석가탄신을 축하하는 사람들로 빽빽하다.
어머니가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어머니들 틈에 끼어 합장하여 절을 꾸벅꾸벅 몇 번 하고 밖으로 나왔다.

절도 사람도 구경거리지만 대웅전 마당에 걸려있는 수많은 연등은 더욱더 구경거리였다.
연등은 세상 사람 모두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단다고 한다. 어머니도 달았는지 찾아본다. 그 많은 연등 중에 아버지 이름 석 자가 보인다.

아버지는 소리 없이 절에 다니셨던 거 같다. 석가탄신 날 어머니 따라온 것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올라올 때 고생했지만 내려갈 때 한결 수월했다.

내려오면서 생각한다. 아버지 어머니의 불심에 존경심이 우러난다.
선방산(船放山)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아담한 절. 지보사는 문화재는 많지 않지만, 천년 고찰로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있어 관광객, 고고학자 등 많은 사람에게 관심의 대상이다.

그뿐만 아니라 군위읍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있기 때문에 꽃 피는 봄이 오면 절 구경, 꽃구경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우리의 고장을 빛내고 지켜준 지보사(持寶寺), 부처님의 자비로 모두 편안한 날만 이어지기를 기원한다.

대구가축병원 권춘수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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