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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28년 군위축협 정든 둥지를 떠나면서…박인자 씨

admin 기자 입력 2022.03.04 10:43 수정 2022.03.04 10:43

동료간 사랑 행복한 순간들 기쁨과 보람 가득

↑↑ 박인자 씨
ⓒ N군위신문
여느 날과 다름없는 출근길인데, 늘 보던 산천과 들이 앞 다투어 달리는 차량들이 다르게 보임은 오늘이 군위축협에 마지막 출근길이라 제 마음에 감정이 요동치고 있었음을 뒤늦게 알았네요.

눈만 뜨면, 출근하는 것을 생각지도 않고 지나왔는데, 그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 것을.
오늘 아침은 다르네요.

어제 같은 오늘이고, 내일도 어제와 똑같을 것이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던 시간,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삶 같았지만, 매일 주어진 나날은 새 날이었으며, 그 날이 모여 이렇게 떠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무심히 지나다닌 출근길의 도로가 변경되었고, 그 자리 그 산의 초목인 줄 알았는데, 무성한 숲으로 산이 뒤덮였으며, 봄, 가을 농부들의 터전인 들판은 언제 이렇게 공장들로 들어섰는지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 사이 저도 이렇게 또 다른 변화를 꿈꾸며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답니다.
먼저 매일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저에게 건강과 안전을 허락하시고, 직장과 좋은 동료를 붙여주시고, 재능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또 오늘 이렇게, 퇴임 인사를 드릴 수 있게 되어, 조합장님을 비롯하여 임직원 여러분들게 감사드립니다.

군위축협과 인연은 85년부터이나, 중간에 자녀양육으로 퇴사하고, 10년이 지난 2005년 재입사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28여년간 근무한 직장으로, 군위하면 저도 모르게 눈이 번쩍 뜨이고, 당나귀 귀가 됨은 당연한 것이지요.

군위축협과 함께한 이 시간은 앞으로 제 삶의 이력에서 결코 누락될 수 없는 소중한 역사로 남게 될 것입니다.

퇴임이라 생각하니, 지나온 시간 속에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이 새롭게 생각납니다. 대구 지역에 응시하면 떨어질까봐, 군위에 원서를 낸 것이 오늘까지 이렇게 만남이 되었습니다.
-구 우체국에서 군위병원 앞 건물로 이사, 다시 시장으로 자가 건물을 지어 가던 감격

-176905의 환코드가 부여되고 수신업무 환 업무 인가 받던 날
-소값 안정대책으로 장날마다 수매상황을 보고 하던 일

-경주 도투락 월드에 가서 초유떼기, 분유떼기 사러 가던 때
-야유회 버스 안에서 김진열 지도사의 애창곡 ‘나는야 흙에 살리라’를 불렀지요.

-그 중에 잊을 수 없는 것은, 지금은 무자격 조합원 정리하느라 고충이 많지만, 그때는 기초조합에서 자립조합으로(자립조합이 되면 상여금도 2번 주고, 중식비도 준다고 했습니다.) 자립조합이 되려니 조합원 수가 모자라, 전 직원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양축과 상관없이 1구좌 3천원으로 가입시키던 일.

-또 마음 한 켠에 아픔으로 남은 한 가지는 효령 내리리 계시는 할아버지께 백쇄미 1포를 시원하게 드리지 못한 것이 너무너무 죄송하고 마음 아픈 일로 남았습니다.
소 몇두 키우시며, 10구좌 3만원으로 조합원 가입을 하셨지요.
사료 6포 현찰구매에 백싸래기 1포 달라고 그 불편하신 몸으로 장날마다 오셔서 조르셨습니다.

당시 정부양곡 부산물은 군 양정계서 취급하고 배정권이 있어서 타인에게는 1kg도 줄 수 없었답니다.

그 일을 생각하면 20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요즘 같으면 쌀이라도 찧어 드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세월이 흘러 자녀 양육차 퇴사하여 가정에 충실 그 후 10년 뒤 2005년 재입사한 센터는 93년 300~700포를 생산하면, 조기 퇴근 목표를 걸던 때와 달리 4∼5천 포를 생산하고, 월 180차 정도의 돈분을 수거하여 연간 4∼5억 원의 벙커C유 화력을 이용하여 수분을 날리며 주, 야간을 하고 있었습니다.

또, 노무인력을 구하지 못해, 본소 직원들이 조를 짜서 퇴근 후 생산지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후 2동의 생축장을 헐고 공동자원화 시설이 들어서고, 생산시설의 자동화에, 일 생산 1만포, 품질평가 최우수상에 이어 대상수상까지 전국에서 자랑스런 센터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평균 6개월을 넘기지 못하는 퇴사이력의 센터가 이제는 인재 등용문 센터로 변하였으며, 한솥밥 먹으며 그 어디에도 부럽지않는, 아니 누구나 지원하고픈 화목한 근무지가 되었답니다.

이 모든 성장 과정에 부분적으로나마,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이 제게는 얼마나 큰 기쁨이고, 보람인지요.

27년 5개월의 시간이 정말로 빨리 지나가네요. 저만의 자잘한 이야기가 너무 많았습니다.
저보다 축협을 아끼고 사랑하는 임직원님들은, 지금의 축협이 있기까지 그 모든 과정을 더 세세하게 잘 아시지요.

오늘 우리 조합은 오래된 것을 뒤로하고, 시장에서 청정센터로 군위 입구에 우뚝 서, 직원과 조합원들께 다양한 방법으로, 풍성하게 지원하고 있으니, 너무너무 자랑스럽습니다.

기초조합에서 자립조합으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조합장님과 함께 이 자리에 계신 임직원들은 물론, 오고 간 많은 임직원들의 헌신과 수고 덕분임을 믿습니다.

떠나는 사람으로서 근무하면서 저의 모난 성품으로, 많은 분들게 유순하게 대하지 못하여 조합에 누를 끼치고, 여러 가지로 마음 아프게 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합니다.

그간 힘든 시기도 있었고 보람된 일도 많았지만, 그 모든 순간을 버티고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저 혼자만의 결심으로 된 것이 아니라, 시시때대로 이 부족한 사람에게 조합장님을 비롯하여, 임직원 여러분들의 칭찬과 격려해주신 덕분임을 감사드립니다.

재입사 한 후 센터를 다녀간 66명의 동료들,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다 아이가” 하시며 늘 밝게 웃으며 다독여준 기사님, “괜찮아 우리가 있잖아” 하시며 손잡아 주신 분, 이루 다 말씀드릴 수 없지만 49명의 퇴직자와 현역에서 근무 중인 17명의 직원 동료 여러분들이, 한 식구로서 모든 허물을 감싸고, 서로 어깨동무하며 함께 하였기에 오늘의 제가 이 자리에 대표로 있음에 저는 더없이 기쁘고 참으로 행복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부탁드림은 우리의 만남이 유한한 이 세상에서 끝이 아니라, 100년 안쪽의 이 생을 산후에는 영생과 영벌의 세계로 갈 것입니다. 사후 선택의 결정시한은 이 육신이 살아있을 때입니다. 사시는 동안 소원하는 모든 것을 다 이루시고, 행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엔 꼭 예수를 구주로 믿어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의 축복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시간이 되어 몸은 비록 떠나지만, 30여년 가까이 근무한 직장에 마음은 늘 머물 것 같습니다.
내일부터 당장 일상이 서툴러지겠지요. 각자 주어진 역할이 있으니, 우리 모두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최선을 다하여 순간순간 기쁨의 열매를 거두십시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바람개비를 돌리는 사람, 바로 내가 달리면 될 것입니다.
이날이 지나면 새해가 밝아옵니다. 매년 오는 새해가 아님에 좋은 계획들 세우시고, 이루시길 바랍니다.

이제, 저는 군위축협에서 모든 업무를 마무리하고, 기쁨으로 퇴직할 수 있는 것은, 함께 동고동락한 임직원 여러분들의 덕택임을 가슴 깊이 새기고, 지난 날들을 추억하며 정든 둥지를 떠납니다.
앞날에 늘 건강하시며,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21년 12월 31일
박인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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