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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며

admin 기자 입력 2022.04.04 09:51 수정 2022.04.04 09:51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창 너머로 보이는 바깥세상을 들여다 본다. 아직 이른 봄인지라 사람들은 마스크 쓰고 두꺼운 옷 걸쳐 입고 어디로 가는지 종종걸음으로 걸어간다.

봄나물 가득 실은 리어카를 끌고 가는 사람들도 있다.
좁은 도로에는 크고 작은 차들이 오가도 못하고 줄 서 있다. 서로가 달리하며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보면서 세상이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실감한다.

하루가 여삼추 같다. 고리타분한 세상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난다. 그러면서도 쉬 뛰쳐나가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초라하고 비참해 보인다. 자괴감마저 든다.

창살 없는 세상에 갇혀 온갖 시련과 고통에 시달리며 사는 것보다 한 마리 새가 되어 더 넓은 창공을 마음껏 날아다니고 싶은 생각이 용솟음친다.

경칩이 며칠 전 지났지만 얼어붙은 땅은 아직 여전하다. 경칩 하면 개구리 생각이 언뜻 떠오른다. 일상에서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견문이 좁다는 말을 빗대어 한 말이다.
개구리는 더 넓은 바깥세상이 있다는 거를 모르고 우물이란 좁은 세상만 알고 있다.

그래서 세상 바깥에서 일어난 어떠한 일도 모른다. 그뿐만 아니라 남의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하고 알아들으려고도 하지 않아 모든 것이 부족하다. 보이는 것만큼 안다.

이를 두고 견문이 좁다는 말이 나온 것 같다. 사람들은 견문이 좁다는 말을 우회적으로 우물 안 개구리에 빗대어 표현한다.

지나간 시간을 되짚어 본다. 기억건대 초등 4학년,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기는 볼 수 있어도 자동차는 볼 수 없는 깊은 산골에 살았다. 우리 집은 풍요롭지 못해도 이웃의 아픔을 같이하며 보듬어줄 줄 알 정도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아쉬운 점도 없지 않았다. 도시에 사는 친구가 한 번씩 다녀가면 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고 초라해 보였다. 얼굴이며 옷차림이며 생김새며 나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열등감에 자연스레 기가 죽었다.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지 못한 나는 이 생각 저 생각에 밤잠 설치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밤이면 여럿이 앞에서 잘난 체하면서 도시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를 꺼내어 신나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아무거도 모르고 자란 나는 모든 것이 부족했다.

내 마음에 입은 상처는 아무도 몰라 주었다. 아버지는 오직 식구들이 배고파할까 농사일에만 신경 쓰셨다. 혼자 해결하기엔 너무나 벅차고 힘겨웠다.

현실 앞에 놓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스스로 자책하며 마음을 추슬렀다.
그런데도 잊을 만하면 친구가 또 나타나서 내 속을 뒤집어 놓고 떠나곤 했다. 만나기도 싫어졌다. 텅 빈 방구석에 처박혀 오만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나도 친구와 같이 북적대는 도시에서 살고 싶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구경도 하고 재밌는 이야기 하며 신나게 뛰놀고 싶었다.

세상 밖을 뛰쳐나가고 싶은 생각이 하루에 꼴 백번 더 났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애간장만 태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뜻하지 않은 6.25 전쟁이 일어났다. 부풀었던 꿈이 한순간에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저승의 시계는 멈추었는데 이승의 시계는 멈추지 않고 덧없이 흘렸다.

그사이 나는 가정을 꾸리고, 사회의 일원이 되었다. 누구의 이야기와 같이 내가 고생했으니 자식들은 고생시키지 않겠다.라는 말 있듯 나 역시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것이 어느새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베개만 한 책가방을 둘러메고 뛰어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나 어릴 때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깊은 고뇌에 빠져 들었다. 나는 산골에 살았지만, 자식들은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을 듣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넓은 세상에서 키우고 싶었다. 1981년 대구와 경북이 분리했다. 도농 간 선생과 학생들이 자유롭게 이동, 전학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어릴 때 기가 죽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도시로 전학시키고 싶었다. 어떻게 하더라도 자식들을 도시로 전학시킬 것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잊지 않았다.

힘들어하며 참고 견디며 지나 온 날들은 낱낱이 되새겨 보았다. 이번 학기를 마치고 도시로 전학할 것이라고 했다. 뜻하지 않은 문제가 발생했다. 전학하려면 부모와 함께 이사해야만 전학이 허용된다는 것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전학을 한다. 어릴 적부터 꿈 많은 나는 좁은 세상에서 뛰쳐나와 넓은 세상에서 내 꿈을 활짝 펼쳐 보고 싶은 것이 소원이다.

뜻대로 꿈을 다 이루지 못했지만 자식들을 시내로 전학시킨 것만 해도 소원을 이룬 거 같다.
지금에 와서 지난 일들을 되짚어 본다. 만감이 교차한다. 아직 완숙된 단계는 아니지만,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창 너머로 보이는 바깥세상은 여전히 녹록하지 않다. 그 속에서 꽃 피고 지고 열매 맺으며 원대한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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