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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소금

admin 기자 입력 2022.05.02 23:14 수정 2022.05.02 11:14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내 고향은 푸른 바다이다.
처음 나의 모습은 바닷물이었는데 사람들이 나를 꾀어 5백여 평 남짓한 염전에 불러 들어 가두었다. 오가도 못한 나는 낯선 땅에서 오랜 세월 동안 햇볕에 말려 윤슬 모습을 잃어버리고 하얀 결정체로 변해 버렸다. 사람은 나를 소금이라 부른다.

수억만 년 전부터 존재해 온 나는 방부, 살균, 갈변 작용 등을 할 뿐만 아니라 식품의 맛을 돋우는 조미료 역할을 해왔다.

이것이 바로 나의 자존심이다. 세계 어디에서도 ‘같은 맛’을 낸다는 것이다. 때로는 보기 싫은 사람이 자기 집에 왔다 가면 재수 없다고 나를 바가지에 담아 대문 앞에 하얗게 뿌린다.

나의 마력(魔力)이 아직도 신통한 효험이 있다는 거를 인정하고 있다. 이 또한 내 자존심이다.
여기에 비해 내 삶이 너무나 비참하다. 물을 만나면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릴 운명에 놓인 존재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유일한 친구가 하나 있어 든든하게 지낸다.

그는 소금 장수이다. 우리 둘은 같은 성질을 가지고 먼 옛날부터 같이 지내 온 터이다. 좋아하는 거도 싫어하는 거도 똑같다.

둘은 햇볕은 좋아하지만 물은 싫어한다. 나는 엊그제만 해도 바닷물에서 살았지만, 이젠 물을 싫어한다. 비가 오는 날이면 바다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땅 위로 올라오려면 아득한 천년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

소금 장수도 나와 같이 얼굴이 일그러지고 울상이 되어 꼼짝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 둘은 가뭄이 계속되면 농민들이 농사 망친다고 아우성쳐도 그냥 싱글벙글 신이 난다.

이런 거를 예사로 보지 않은 사람들은 나에 대하여 궁금해하는 것도 많다. 소금 속에는 염화나트륨과 칼슘, 칼륨 등 다양한 미네랄이 들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 후 사람들은 나를 단순히 혈압을 올리는 물질이라며 주의를 환기시켰다.

세계 보건기구에서 권장하는 1일 소금량은 5g이다. 그러면 1일 나트륨 함량은 2g이 되는 셈이다. 다시 말하면 1일에 소금 5g 먹으면 나트륨 2g 먹는다는 것이다. 적게 먹으면 피가 썩어 들어가는 패혈증을 일으킨다고 한다.

에스키모인들은 물고기의 염분 이외는 소금을 전혀 먹지 않는다.
그래서 평균 연령이 40세로 전 세계에서 수명이 제일 짧다고 한다. 소금에는 천일염, 암염, 정제염이 있다. 천일염은 정제염보다 나트륨 함량이 적은 거로 알고 있다.
그래서 천일염을 사용하느냐, 정제염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사람에 미치는 영향도 크게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태어나서 좋은 일도 많이 했다. 배추를 절임 할 때, 고추장을 만들 때, 젓갈 등을 만들 때는 내가 필요했다. 냉장고 역할도 했다.

아득한 옛날 고기를 오래도록 간수하려고 나에게 맡겨 두었다. 우리 집에는 햇볕이 들지 않은 어두 컴컴한 곳에 도장이 있다. 거기에 커다란 소금 단지가 있다. 장에서 사서 가자고 온 고등어랑 반찬거리들을 소금 단지에 두고 밥상 위에 올리는 것을 보았다.

어릴 때 엄마 따라 장에 가면 제일 먼저 고기 전에 들린다. 똥파리가 왱왱거리며 들끓는다. 고등어, 조기 등이 소금에 절여 쿰쿰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그럼에도 그 냄새가 싫지 않았다. 밥하고 먹고 싶은 생각에 침이 목구멍을 넘어간다.

상인은 고기가 썩을까 봐 연신 소금을 뿌린다. 고등어가 소금에 쪼들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어 솜처럼 푹신푹신했다. 고기가 너무 짜서 한입에 많이 먹을 수 없었다. 조금씩 떼어먹어도 밥을 먹고 나면 입술이 벌겋게 퉁퉁 부었다.

보리가 누렇게 익어갈 때면 농촌에는 일손이 바빠 사람들이 특별한 일이 아니면 장에 가지 않는다. 지금도 반찬거리를 트럭에 가득 싣고 동네마다 다니며 물건을 파는 행상인도 있다. 그때도 있었다.

아침마다 새우젓을 지게에 걸머지고 이 동네 저 동네 다니며 새우젓 사려 외치며 다니는 장수가 있었다. 엄마는 커다란 대접을 들고 새우젓 사려 쫓아 나간다. 맛 한번 보자며 손가락으로 새우젓 몇 개 집어 맛보시며 나도 한 마리 준다.

엄마는 새우젓을 사면서 새우젓 물을 더 달라고 한다. 그래도 행상인은 고맙다며 고개를 끄덕이며 한 국자 떠 준다. 집에 와서 침을 삼키면서 소금에 절인 새우젓이 담긴 하얀 물을 맛본다. 입에 들어가자마자 목구멍으로 넘어가 버린다. 그때 그 맛은 지금 이 나이가 되어도 잊을 수 없다.

때론 사람들이 나를 너무 사랑하는 탓으로 불행을 자초하는 경우도 있다. 세계에서 우리나라 사람처럼 식사 차림에 나를 많이 사용하는 나라는 별로 없을 것이다. 된장 고추장 등 각종 조미료에 안 들어간 곳이 없다.

특히나 식사할 때 배추, 상추 등에 쌈을 싸 먹을 때 된장은 말할 수 없다. 지나친 소금 섭취로 고혈압 환자가 세계에서 자랑할 정도라 한다.

그럼에도 적게 먹으면 피가 썩어 들어가는 패혈증을 일으킨다는 것은 새삼 논의할 필요가 없는 줄 안다. 군에서도 여름에 행군할 때는 소금을 지급한다.

땀 흘릴 때는 소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고혈압 패혈증의 원인은 소금이다. 그렇다고 생명을 지켜주는 소금은 외면할 수 없다.

현세 암이 불치병으로 자리 잡은 지가 오래다. 그 많은 암 중에 심장암(心臟癌)은 들어 본 적이 없다. 심장은 소금으로 꽉 차 있다. 그래서 고어로 심장을 염통(鹽桶)이라 부른다.

사람이 물 없이 살 수 없듯이 나 또한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물과 나는 한 동체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 옛 선인들은 나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면서 인간들에게 ‘나와 같은 사람이 되어라.’라고 한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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