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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오월, 참으로 아름다운 봄이다

admin 기자 입력 2022.05.18 16:24 수정 2022.05.18 04:24

↑↑ 황성창 시인
ⓒ N군위신문
장미의 계절, 오월이다. 올해도 봄은 꽃이 되어 찾아왔다.
봄이 오면 겨우내 입었던 두꺼운 옷을 벗어 버리는 것만 해도 몸과 마음이 한결 가볍다.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먼 산을 바라보면, 세상은 어린애의 웃음 같이 깨끗하다. 나날이 짙어가는 신록의 아름다움이야말로 참으로 비할 데가 없다. 문과 창을 다 열어젖혀도 좋은 계절, 꽃 피고 새 우는 봄날의 천지는 이 얼마나 기쁘며 아름다운가.

내가 사는 양산 덕계동 주택가에 수령 400년 묵은 팽나무 한 그루가 고고하게 서 있다. 굵다란 가지마다 총총하게 틔운 신록의 잎사귀들이 한낮의 봄볕에 잔잔한 물결처럼 찰랑거린다.
수고 25m에 우툴두툴한 나무 둘레가 무려 5m를 넘는 장대한 수목이 우람차게 우뚝 솟아 먼 곳에서도 볼 수 있다.

올봄에도 젊은 수목 못잖게 무성한 잎을 달고 허공에 솟은 채 인심 후한 동네 어른처럼 무상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러다 명주바람이 살짝이 와서 밀치기만 해도 싱긋이 웃으며 바람 뜻대로 일렁거려 주고, 뭇 새가 떼로 앉아 재잘거려도 다 들어 주는 것 같다.

질펀한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서 있는 팽나무를 성스러움의 상징처럼 당산나무를 떠받들어 관리하고 있다. 나도 가끔씩 찾아가 꺼칠한 내 손등처럼 갈라진 나무껍질을 어루만지며 신령스러운 거목의 무심을 배우고자 정중하게 목례를 건넨다.

수 백년의 풍상을 안고 버틴 고목이 예년과 다름없이 빽빽하게 새잎을 싹틔우고, 야생화들이 소녀처럼 하르르 웃는 아름다운 오월을 맞이하면서 하이네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란 시가 생각난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 모든 꽃봉오리 벌어질 때
나의 마음 속에서도 / 사랑의 꽃이 피었어라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 모든 새들 노래할 때
나의 불타는 마음을 / 사랑하는 이에게 고백했어라’

하이네가 예찬한 5월에 줄지어 피고 지는 아름다운 봄꽃을 보노라면 문득 젊었을 때 그리움이 아득하게 피어오른다.

5월에는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챙길 일이 많기도 한 달이다.
언제부턴가 대가족이 함께 살던 예전 인습은 사라지고 점점 더 잘게 쪼개진 핵가족이란 외로움에 갇혀 살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가 소중한 가족들의 만남을 기뻐하는 이유는 헤어짐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생자필멸(生者必滅)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이치를 당연시했는데 살아보니 그게 아니다.

그래서 만남은 기쁜 것이고 긴 이별을 속 타게 슬퍼한다. 만남과 헤어짐의 사이에 오도카니 남아 있는 감정은 그리움뿐이다. 그리움은 헤어짐이 길고 멀수록 깊어질 수밖에 없다.

진달래꽃 복숭아꽃이 연달아 피는 봄, 노년에 든 나에게 젊음이 다시 온 듯하다. 이렇게 눈부시게 아름다운 봄날을 여든 번을 넘도록 누린다는 것은 여간한 축복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인생을 두 번 살 수는 없겠지만, 한 번 살더라도 이모작에 해당하는 삶을 시작할 수는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인생을 끊임없이 고뇌하고, 살아온 경험의 묶음들을 풀어서 글을 쓰고 있는 나의 기쁨 중 하나는 글을 통하여 지나간 발자취와 젊은 날의 초상을 찾을 수 있다는 것, 이 또한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세월 따라 어딘가로 가버린 젊음을 설혹 찾을 수 없다 하더라도 아쉬워하지 않을 것이다. 아름다운 추억은 돌아올 수 없기에 더욱 애타게 기다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기분 좋은 봄날에는 남진의 ‘나야 나’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듣다 보면 객기든 허세든 인간의 욕구와 낭만, 자신감을 숨김없이 잘 표현한 노래가 아닌가 싶다. ‘나 한 잔 자네 한 잔 권커니/한 번은 내 세상도 오겠지/아자, 내가 뭐 어째서/나 건들지 마/운명아 비켜라/ 이몸께서 행차하신다/때로는 깃털처럼 휘날리며/때로는 먼지처럼 밟히며/아자, 하루를 살았네’

마음 들썩거리게 하는 노랫말 일부이지만 어쩐지 가슴 속을 관통하듯 시원한 노래다. 만용으로 들릴지라도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자신감을 느끼는 것은 그지없이 좋은 일이다.

비록 아무도 인정하지 않더라도 나 자신만은 인정하고 다독이며 위로해줘도 좋지 않은가 말이다. 살다 보면 때로 위축되고 스스로 초라하게 느껴질 때는 거울을 향해 크게 외쳐줘도 좋지 않을까. ‘아자! 괜찮아, 나 정도면’이라고. 기대가 샘솟는 봄날, 스스로 행복한 삶이라고 느끼면 되지 않을까 싶다.

인생의 행복이란 별것이 아니다. 봄이 오는 들판에 두 발로 우뚝 서 있는 당당함,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것이다.

내 마음이 편안하면 세상만사가 편안해 보인다. 그러면 인생은 행복한 것이다. 천상병 시인의 말처럼 세상은 소풍을 온 듯 아름답다.


황성창 시인
수필가(재부군위군향우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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