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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통곡의 벽

admin 기자 입력 2022.05.18 16:26 수정 2022.05.18 04:26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지금 세계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형국이다.
코로나19로 휘청거리던 세계 경제가 한고비를 넘기려나 했는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로 얼어붙은 경제가 다시 휘청거린다. 밀, 콩, 옥수수 등 농산물의 선물가격(先物價格)이 하루 사이에 천정부지다. 선물가격이란 금융 자산을 거래하기 위하여 현재의 시점에서 합의한 가격이다.

무방비 상태로 있던 우크라이나는 한밤중 러시아의 침공으로 지리멸렬이다.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들이 부모 잃고 길을 헤맨다. 집이 무너지고 학교 등 공공건물이 무너지고 사람들은 피난길을 떠난다.

끝없이 이어진 난민 행렬을 지켜보면서 어릴 때 6·25 전쟁으로 돗자리를 걸머지고 피난길을 떠났던 생각이 생생하다.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나? 생각할수록 가슴이 저민다. 엄마 잃고 고아가 된 어린 6세 소년이 울며불며 피난민들 속에 끼어 수백 km 걸어가는 영상은 세계를 울렸다.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맨몸으로 나라를 위해 죽음을 다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국민들 앞에 보여주었다. 국민들은 대통령의 구국정신을 보면서 연예인, 체육인, 예술인, 심지어 학생들까지 앞장서서 나라를 지키겠다는 굳은 각오로 총 쏘는 방법을 배운다.

피난길을 떠난 사람들도 한 사람 두 사람씩 고국으로 돌아간다.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각국에서 자진하여 참전한 의용병들이 모여든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가지고 있으면 가진 만큼 만족할 줄 모른다. 더 가지고 싶어 한다. 권력을 가지면 명예를 가지고 싶어 하고, 명예를 가지면 금력을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일 지도 모른다. 세상은 이를 두고 탐욕이라 한다. 그럼에도 세상에는 이 세 가지를 모두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차고 넘친다.

지금 우리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목도(目睹)하고 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

탐욕과 이기주의가 만연한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속 시원히 터놓고 이야기나 좀 해봤으면….

세계의 눈은 우크라이나로 집중한다. 밀, 콩, 옥수수밭이 탱크에 쑥대밭이 된다. 피땀 흘려 농사지은 밭에서 검은 연기가 하늘로 치솟는다.

훨훨 타오르는 시뻘건 불길을 바라보면서 농부는 땅을 치고 망연자실한다.
세계의 눈은 불길 속으로 타들어 간다.

분노와 적개심이 끓어오른다. 넋을 잃고 멀거니 바라보고 있는 농부의 애틋한 심정을 누가 다독여 줄까? 세상은 걱정과 불안으로 밤을 지새운다.

전쟁은 한순간 개인의 행복과 평화를 송두리째 빼앗아 가버렸다. 슬픔과 괴로움은 영원히 아픔의 기억으로 남을 거다.

세계는 좌절과 공포 속에서 떨고 있다. 전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은 힘겹고 어려운 고비를 수없이 넘긴다. 그럼에도 잔인하고 흉악한 세상은 사람들을 부추겨 전쟁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고서 사람들에게 껄끄러운 욕심과 야망으로 사람을 죽이고 재산을 약탈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이런 세상 속에서 산다는 것이 무섭고 떨린다.

그렇다고 삶의 의미도 없이 그냥 세월 따라 산다는 것이 초라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비천한 내 인생 같아 수치심과 자괴감을 억누를 수 없었다.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일제 침략, 6·25 전쟁 등으로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었다. 반세기 훌쩍 넘어 지금도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북녘땅에 가족을 남겨두고 온 실향민들은 눈물 속에 세월을 보내고 있다.
오늘이면 내일이면 만날 수 있을까 가슴을 졸이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끝내 만나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빌어 드린다. 어느 때는 금강산에 호텔 짓고 그리워하든 가족을 만났든, 일도 있었다.

꿈이 아니기를 바라던 국민의 희망은 몇 해 만에 끝나 버렸다. 울며불며 헤어지던 그 순간은 죽어도 잊을 수 없다.

버스에 오른 북한 가족의 손을 붙들고 놓지 않으려고 버스가 떠나는 것을 따라가다 땅바닥에 쓰러진 한 노인은 처절한 모습이 온 국민을 눈물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그 후 끊임없는 화해의 노력으로 봄은 다시 찾아오기 시작했다. 개성에 연락사무소를 짓고 정상 회담도 했다.

국민들은 평화가 한 발짝 다가서는 것 같아 흥분하기 시작했다. 전쟁 없이 살고 싶어 하는 것은 우리뿐만 아닐 것이다. 세계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수천만 년 전부터 전쟁에 지쳐온 우리는 이보다 더 기쁠 수 없었다. 친하면 친할수록 조심하고 기본적인 예의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구이경지(久而敬之)가 있다.
심술도 부릴 때 부려야 한다.

그럼에도 이를 망각하고 어깃장 놓으며 몽니를 부린다. 흥분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사람의 마음을 얼음장처럼 꽁꽁 얼어붙게 하였다. 실망과 허탈로 희망에 목마른 사람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불시에 침공당한 우크라이나 사태를 지켜보면서 세상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진다. 우리는 반세기 넘도록 전쟁에 시달려왔다.

남의 일 보듯 불구경할 겨를이 없다. 이러한 불행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와 관심이 필요하다.

지금 세계는 전쟁을 반대하고 자유와 평화를 원한다. 하루빨리 통곡의 벽을 허물고 살기 좋은 세상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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