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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글쓰기의 두려움

admin 기자 입력 2022.06.03 11:15 수정 2022.06.03 11:15

↑↑ 황성창 작가
ⓒ N군위신문
가끔 내가 쓴 작품이 실린 책을 가까운 사람에게 선물한다.
그럴 때마다 반복적으로 듣는 말이 있다. ‘당신 글은 쉬워서 읽기가 편하다’며 인사치레로 던지는 그 말 속에서 가시로 찔리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어쩌랴. 내 감성이 둔해서인지 작가 명패를 단지 십 수년 지나서도 아직 그 정도밖에 쓰지 못하는 것을.

글은 당연히 묵직한 철학적 언어가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 한 적이 있다. 글을 다 써놓고 더 멋진 언어, 평범한 것을 대신할 신선하고 독창적인 단어 찾기를 자주 한다.

어떤 장르의 글을 쓰더라도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그게 뜻대로 되지 않은 걸 보면 아직 많이 부족하다. 쉽고 매끄럽게 읽히는 글을 쓰기 위해 첨삭과 퇴고에도 신경을 쓰는데 아직은 가장 취약한 부분이기도 하다.

소설가 헤밍웨이는 본인이 쓴 ‘노인과 바다’를 두고 독자들은 쉽고 편안하게 읽히는 짧은 글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능력으로 쓸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글이며 평생을 바쳐 쓴 글이라고 했다.

편안하게 읽히는 소설로 보이지만 무려 200번이나 오랜 시간 퇴고를 거듭 했다고 한다. 헤밍웨이는 자만하지 않으려고 소설에 쓰인 단어의 반복을 피하기 위하여 단어의 수를 기록했다.
프랑스의 천재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쓴 소설 ‘개미’는 12년에 걸처 120번에 가까운 첨삭과 퇴고를 거듭한 끝에 탈고했다고 했다. 작가들은 글을 쓸 때 얼마나 많이 생각하고 뼈를 깎는 노력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내 느낌으로는 창작 활동에 관해 가장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말을 한 작가 중에 소설가‘ 헨리 밀러’를 꼽고 싶다. 그는 “새 비료를 뿌리기보다 매일 조금씩 땅을 다져라!” 결국 창작의 비결은 매일의 반복에 있는 것이다.

책을 조금씩 매일 읽어두는 건, 마치 시장에 가서 신선한 야채를 매일 사는 일과 같다. 책을 읽으며 문장을 읽히고 메모하는 습관은 사온 야채를 틈나는 대로 요리에 필요한 형태로 조리하는 작업에 비유할 수 있다.

누구나 글을 잘 쓰고 싶다면 느낌이 찾아올 때 놓치지 않게 붙들어 당장 펜을 잡고 글을 써야 한다. 글을 쓸 때의 순간 생각이 가장 활발히 작동하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예기치 않는 힘든 일을 무수히 겪게 된다. 힘들 때 글을 쓰면 그동안 억눌렸던 감정이 풀어지면서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 즉 감정의 정화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마음 한구석에서 불편함으로 남아 있는 기억을 글로 정리해보는 과정에서 좋았던 기억이나 감사했던 일들을 떠 올릴 수도 있다. 평소 쌓였던 스트레스도 관리할 수 있어 마음의 안전감을 찾게 된다.

글쓰기가 연인 관계를 유지하는데도 도움이 돤다는 연구 발표도 있다. 연인과 사귀면서 느끼는 어려움을 솔직하게 글로 표현했을 때 연인 사이의 감정 교류도 더 원활해졌다는 뜻이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20년간 글쓰기 프로그램을 운영한 낸시 소머스 교수는 “어느 분야에서든 진정한 프로가 되려면 글쓰기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했다.

하버드대를 최우수 졸업하고 ‘7막7장 멈추지 않는 삶을 위하여’를 쓴 홍정욱 작가나, 미스코리아 진 출신으로 하버드대를 나온 금나나가 쓴 ‘나나의 네버엔딩 스토리’ 등 두 분의 자전적 에세이를 읽다보면 전공 학과보다.

‘에세이’쓰기로 학점 따기가 훨씬 어려웠다는 느낌이 든다. 그만큼 하버드대에서는 글쓰기를 아주 중요한 인문학으로 분류한 것 같았다.

무릇 글을 쓰는 동기는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고 전달하려는데 있다. 따라서 좋은 글은 진실한 내용을 정성 드려 쓰는 글이다.

글은 마음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글쓴이의 마음이 표현된 글이라야 좋은 글이라 할 수 있다. 진지하게 제재를 수집하고 적절한 표현을 찾는데 고심하며 몇 번이고 되고치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모든 글은 독자를 전제로 하여 쓰는 것이므로 전달하려는 내용이 분명해야 한다. 명료한 글이 되려면 쉽고 간결하게 쓰는 일이 중요한데 글쓰기가 생각 만큼 논리에 맞도록 정리되지 않아 스스로 안타깝게 생각할 때가 많다.

글쓰기가 일상화 되었음에도 글쓰기의 두서가 혼란해질 땐 오래 전에 보았던 명나라 때 원황(袁黃)이 글쓰기에 꺼리는 열 가지를 꼽아서 엮은 ‘문유십기(文有十忌)를 다시 꺼내 읽어본다.

나는 이 문유십기를 보면서 여기에서 과연 자유로울 작가들이 얼마나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 나 역시 이런 도덕적 룰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이 글을 쓰면서 흔한 노변담이나 신변잡기체의 글에서 벗어나 읽는이를 두려워하는 작가가 되길 다시 한 번 다짐해 본다.

황성창 수필가 / 재부군위군향우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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