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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한 소방관의 죽음을 애도하며

admin 기자 입력 2022.07.19 09:57 수정 2022.07.19 09:57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하루를 시작하면서 일기예보에 채널을 고정한다. 날씨가 매우 건조하여 산불이 일어날 위험이 많다며 주의를 당부하는 기상 캐스터의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전국으로 퍼져나간다.

지나온 여러 해를 뒤돌아보면 봄이면 산불이 연례행사처럼 일어난 것 같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올해는 무사히 넘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봄이 만개한다. 텔레비전에서 산불 예방과 소방 교육, 대피하는 요령 등을 실시간으로 방영한다. 지자체에서는 산불 감시원들을 동원하여 자동차에 스피커를 달아 마을 길, 산길, 좁은 논두렁 길 다니며 논밭에 쓰레기를 태우지 맙시다. 담뱃불을 조심합시다. 산을 오를 때는 라이터 등을 가지고 가지 맙시다 하면서 볼륨을 끝까지 높인다.

세상 사람들은 이 소리를 듣고 따르면 덧나는지 봄이며 으레 하는 것이라며 듣는 둥 만 둥 한다. 아무리 유명한 명장이라도 옆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혼자의 힘으로는 적을 이겨 낼 수 없다. 이른 새벽부터 해 넘어갈 때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온 힘 다하여 홍보했건만 돌아온 건 허탈감뿐이었다.

지난 3월 울진·삼척, 강릉·동해 등지에서 산불이 발생했다는 긴급 뉴스가 전국을 꽁꽁 얼어붙게 한다. 텔레비전을 정신없이 멍하니 쳐다본다.

울창하든 아름드리 금강소나무가 금세 다 타 버릴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리며 안절부절못한다. 거기다 산세가 험악하고 길이 없어 사람이 올라갈 수 없다고 하여 더욱더 마음이 졸렸다. 불길은 일렬횡대로 캄캄한 밤하늘을 불 밝히고 있다.

텔레비전 앞에 쪼그리고 앉아 가슴을 움켜잡고 불길이 어디로 번질까 궁금해하며 눈이 빠지라 쳐다본다. 순간순간 현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산세가 험하고 산림이 우거져 진화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방송에 숨이 차오른다.

소방 헬리콥터가 4, 5십 대가 동원하고 소방대원과 군관민이 합동하여 진화에 나섰다고 하지만, 건조한 날씨에 강한 바람까지 불어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간다. 울창한 숲은 시뻘건 화염에 싸여 활활 타오르는 용광로 같이 불꽃을 쉼 없이 뿜어댄다.

불길은 순식간에 거대한 산을 집어삼키고, 옆에 있는 높고 낮은 산들도 닥치는 대로 마구 집어삼킨다. 헬리콥터가 줄지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물을 퍼 나른다. 소낙비처럼 물을 쏟아부어도 불길은 잡히지 않고 사뿐사뿐 날아다니는 나비처럼 거센 바람 타고 캄캄한 밤하늘을 마구 휘저으며 날아다닌다.

한 주일이 지났다. 불길은 신이 난 듯 바람 타고 날아다니며 사람의 혼을 빼앗아 버린다. 사람들은 힘의 한계를 느끼며 피로에 지쳐 쓰러진다. 그럼에도 녹초가 된 헬리콥터 조종사, 소방대원, 군관민들은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구슬땀 흘리며 사력을 다한다. 기가 죽은 불길은 이 산 저 산을 다 잡아먹고 새카만 숯덩이로 만들어 놓고 능청을 부린다. 누가 이 산을 시커멓게 만들었냐? 하며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검푸르던 숲과 나무들은 시뻘건 화염에 견디지 못하고 저승사자의 부름을 받고 그 길 따라갔다.

전쟁터를 방불케 했던 그 자리에는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지저귀던 산새들 소리마저 들리지 않은 적막강산에 쓸쓸한 바람 소리만 쌩쌩거린다.

푸념 섞인 말이 마구 쏟아져 나온다. 세상이 어찌 이럴 수가? 온 국민이 무엇을 잘못하였기에 이토록 사람들을 불안케 하고 밤을 지새우며 마음을 졸이게 한단 말인가? 아니면 정녕 사람들이 현실주의, 이기주의, 물질만능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울창한 산림을 내동이라도 쳤단 말인가? 산불 감시원들의 그토록 간절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불길은 끄떡도 하지 않고 멀쩡한 산을 집어삼키고 있다. 이를 바라만 보고 있으니 억장이 무너진다.

기어이 불길을 잡고 사람들은 기쁨에 얼싸안고 쏟아지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불길을 잡았다는 소식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진다. 열흘 넘게 불길과 싸웠던 산등성이를 뒤돌아본다.

울창하던 숲은 온데간데없고 뼈대만 앙상히 남은 나무들이 시커먼 옷을 입고 멍하니 서 있다.

주민들은 걱정이 늘어졌다. 비가 오면 토사가 흘러내려 금방이라도 집들을 덮칠 기세를 하고 있다. 자연은 가장 자랑스러울 때 가장 자연스럽게 보인다고 했다. 우리는 무엇을 하며 지나왔던가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산불을 진화했다는 기쁨도 잠시 가슴 아픈 슬픔이 세상을 울먹인다. 엊그제 합격한 신임 소방대원이 산불 진화하다 젊은 나이에 꽃도 피어보지 못하고 순직한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우리들의 기억에서 영원히 남을 것이다. 그때 소방도로가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떨쳐 버릴 수 없다. 우리는 생생히 지켜보았다. 시뻘건 불꽃이 활활 타오를 때 속수무책이었다.

네덜란드 한 소년이 둑에서 새어 나오는 물을 주먹으로 막아 대형 참사를 면했다는 전설같이 조그마한 산불이라도 진작 막을 수 있었더라면 엄청난 산불 피해를 사전에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산업화가 발달하면서 산불에 대한 관심이 무뎌져 가고 있는 것일까. 인간과 자연은 불가분의 관계라 하는데 자연이 죽으면 인간도 죽는 것이다.

한 소방대원이 위험을 무릅쓰고 산불을 진화하다 죽임을 당했다는 한 젊은이의 소식을 듣고 슬픈 마음 금할 수 없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며 하늘나라에서 편안히 쉬시길 기원한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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