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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찔레꽃 가뭄

admin 기자 입력 2022.08.04 11:41 수정 2022.08.04 11:41

ⓒ N군위신문
찔레꽃 필 무렵인 6, 7월에 드는 가뭄이다.
올해는 어느해 보다 가뭄이 길어지는 것 같다.

전국이 불볕더위에 몸살을 앓고 있다. 시원한 소나기 한줄기라도 내리면 살 것 같다.
불 덩어리 같은 하늘에서 따가운 햇볕이 연일 쏟아진다. 뜨거운 열기로 땅은 거북이 등처럼 갈라지고 바다와 계곡은 피서객들로 북새통이다.

일기예보에 올 장마는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다고 한다. 사람들은 저지난해 장마에 피해를 보았던 것을 생각하며 바짝 긴장한다.

한 달 가까이 지났는데도 하늘은 비 올 생각을 꿈도 꾸지 않는다. 사람들은 애달파하며 하늘만 쳐다본다.

간간이 불어오는 후덥지근한 바람에 숨이 턱턱 막힌다. 갑자기 하늘에 시커먼 구름 떼가 날개를 달고 서서히 몰려든다.

빗방울이 하얀 먼지를 일으키며 뚝뚝 떨어진다. 사람들은 반기며 찌든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핀다. 기쁜 순간도 잠시 천둥·번개를 동반한 국지성 소나기가 요란스럽게 소란을 피우며 전국을 누빈다. 그러고는 사람들의 마음을 들쑤셔놓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사람들은 속상해하며 입에 담지 못할 욕을 마구 해댄다.
사람 사는 세상 걱정 없이 살 수 없겠지만, 여름이면 누구나 걱정을 안고 산다. 비가 오면 장마 질까 안 오면 가뭄 들까? 장마가 지면 논밭이 떠내려갈까, 가뭄이 들면 밭작물들이 말라죽을까 봐 이 걱정 저 걱정하며 평생을 살았다.

그래서 어른들이 “죽지 못해 산다”는 말씀을 노래처럼 하실까 생각한다.
아득한 옛날. 찔레꽃 필 무렵 농촌은 가난에 찌들어 힘든 삶을 살았다.
가을에 수확한 양식은 겨우 내내 바닥이 나고, 햇보리는 미쳐 여물지 않아 식량이 모자라 허리띠 졸라매고 괴로운 춘궁기를 보내야 했다.

다행스럽게 우리 고장에는 크고 작은 자두밭이 있어 봄을 견뎌내는 데 커다란 힘이 되어주었다. 지금은 자두 농사짓는 농가 수가 많아지면서 유명한 자두의 고장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6, 7월이면 자두 싣고 공판장으로 달리는 차가 줄을 잇는다.

이를 지켜보면서 동심이 발동한다.
자두밭을 사서 남들에게 보란 듯 자두를 차에 가득 싣고 신나게 공판장으로 달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생각을 해 왔다.

어느 늦겨울 자두 농사를 한 번도 지어본 경험도 없으면서 자두나무 수십 그루 있는 오백여 평 남짓한 밭을 샀다. 이른 봄까지 거름을 넣고 가지치기하고 병충해 방제 등을 하며 부지런히 나무를 가꾸었다.

수확기가 되어 사람들은 열매를 차에 실어 공판장에 가지고 간다. 내 것은 다른 사람에 비하면 턱도 아니지만 내 손으로 농사지어 번 돈을 만져보기는 처음이다. 돈이 사랑스러워 세어보고 또 세어 보았다. 앞으로 열심히 하면 이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기대가 한껏 부풀었다.

평소에는 6, 7월 이맘때가 되면 비가 자주 오는데 올해는 지난해보다 비가 적게 온 것 같다.
이른 봄부터 대서가 지날 때까지 내린 비의 양은 병아리 눈물보다 적게 내렸다. 밭에 가뭄이 들이 들기 시작한다.

걱정되어 나무 밑에 수북이 자란 풀을 예초기로 베어 깔았다. 여전히 불안한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며칠이 지나자 억센 풀이 바싹 말라 햇볕을 막을 힘이 없어 보인다.
열을 뿜어대는 가뭄은 나무랑 땅을 보고 마구 헤집고 파고든다. 다른 사람들은 벌써 나뭇가지에 몇 개씩 빨갛게 익은 자두를 따서 공판장으로 가지고 간다.

내 것은 무엇이 잘 못된 건지 아직도 색깔도 나지 않고 굵지도 않아 애가 타들어 간다. 성격이 급한 나는 실의에 빠져 고개를 떨구고, 깊은 시름에 빠졌다. 이웃 밭 주인이 찾아와 위로하며 자기도 지난날 당했던 이야기 한다.

매번 찾아드는 가뭄은 참고 견뎌낼 수 있었지만, 6, 7월에 찾아든 “찔레꽃 가뭄”은 가뭄 중 최고의 가뭄이기 때문에 막아 낼 수 없다. 이때는 밭에 양수기로 물을 퍼 주고 관리를 잘하는 수밖에 없다며 나직한 목소리를 진심 어린 충언을 해준다.

나는 허겁지겁 양수기랑 호스 등을 설치했다. 밤낮으로 물을 퍼 올렸으나 뜻대로 되지 않는다.

누런색으로 변해 버린 나뭇잎이 초록색으로 돌아올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며칠이 지나자 누렇든 색이 희미한 푸른 색깔로 변한다. 죽을 고비를 한고비 넘기는 같아 마음이 약간 놓인다.

이웃 밭 주인은 자두를 차에 가득 싣고 연일 공판장으로 간다. 하던 일을 멈추고 부러운 마음으로 멍하니 바라본다. 죽을힘 다해 농사를 지었건만, 애만 실컷 먹고 가지고 갈 것은 하나도 없다.

그동안 뭐 했던가? 거대한 꿈이 한순간에 무너진다. 공허함과 허탈함에 망연자실했다.
슬픔을 머금고 애써 지은 자두 모두를 땅에 묻으려고 구덩이를 판다. 이웃 밭 주인이 이를 보고 만류한다.

당신은 처음이라 잘 모르지만, 상품 가치가 없는 상품을 사는 상인도 있다고 하며 한번 가보라고 한다.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마음이 선뜻 내키지 않는다. 내 것이 상품 가치가 없어서다.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마음을 추스르고 가보았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보았다. 내 것이 훨씬 더 좋아 보였다. 꺼져가는 희망의 불씨가 되살아난 듯 마음이 편했다.

제값대로 다 받을 수 없겠지만, 반값이라도 받을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긴다. 경매를 마치고 돈을 찾으러 사무실에 간다. 깜짝 놀랐다.

혹시 직원이 깜박하고 잘못 내어 준 것이 아닐까 물어본다. “이 돈이 내 것 맞습니까?” “맞다”라고 한다. 양팔을 벌려 하늘로 뻗쳐 들고 “하늘이 날 도우셨다”라고 울먹이며 소리쳤다. 가뭄에 시달려 온 나는 가뭄 중 “찔레꽃 가뭄”이 제일이라는 말이 허풍이 아닌 것을 알았다. 이름 그대로였다.

대구가축병원 권춘수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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