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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대를 잇는 사람들

admin 기자 입력 2022.08.18 09:51 수정 2022.08.18 09:51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별빛이 쏟아지는 밤, 유난히도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할아버지는 형제가 네 분이시다. 첫째 둘째 할아버지는 동부리에 셋째 할아버지는 대구에 넷째 할아버지는 사직리에 자리를 잡으셨다. 4형제 중 저희 할아버지는 둘째이시다.

저희 할아버지를 제외한 3형제는 모두 자식이 네댓이고 저희 할아버지는 아들 하나에 딸이 둘이라서 대(代)가 끊어질까 봐 불안해하셨다.

여름이면 동네 사람들이 동구 나무 아래서 더위를 식히면서 일상 이야기와 자식 자랑 이야기에 꽃을 피운다.

그때마다 할아버지는 기가 죽어 아무 말 못 하고 뒷전에서 남들이 하는 이야기만 듣고 계신다. 자랑거리가 없는 할아버지에게는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 더 쭈글시럽고 민망한 것은 없었다.

어느 때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힘없는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날도 일쑤였다.
할아버지 머릿속에는 아들뿐이다. 콩알만 한 남자아이가 지나가도 그냥 지나쳐 보지 않는다. 그 녀석 그림자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고개를 빼서 바라본다. 그것도 그냥 쳐다보지 않는다. 침을 삼키며 애달파하며 쳐다본다.

당시에는 아들은 족보에 올리고 딸은 올리지 않았기 때문에 남의 아들이라도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가문의 대(代)를 이을 수 있는 것은 아들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아들이 많은 집은 사람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성격을 아시고 신경이 쓰인다. 신줏단지 앞에 정화수 떠 놓고 아침저녁으로 빌고 했다.

그럼에도 신줏단지는 할머니의 정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들어주지 않았다.
할아버지 성격은 내성적이고 소심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시선을 쓸데없이 의식한다. 아들 하나를 가진 것이 무슨 큰 죄를 지은 사람처럼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도 자식 이야기할까 봐 지레 겁을 먹고 어울리기를 싫어한다.

아들 하나도 없는 사람이 있는데 혼자 고민하면서 괴로움을 참지 못하고 말을 타고 사냥하러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냥 갔다 해거름쯤 땀이 흠뻑 젖은 옷을 입고 우울했던 얼굴을 펴고 환한 웃음 지으며 돌아오신다.

할머니는 마음을 놓으시고 할아버지 얼굴을 뚫어지라 바라본다. 할아버지 행동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 얼마나 답답했으며 사냥까지 하면서 괴로움을 잊으려 했을까? 속 시원히 말하면 좋을 거를 왜 못하는지 사람들은 안타까워한다.

할아버지의 심성을 동네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말을 타고 나서니 그까짓 아들이 뭔데! 하며 동네 사람들이 삐쭉거린다. 할아버지는 보석보다 귀한 아들 보고 함부로 말하는 소리를 듣고 화가 치밀어 오른다.

어느 날 사냥 갔다 돌아오는 길에 말 타고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면서 한바탕 소동을 피웠다.
그 후부터 겁에 질린 사람들은 자식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제야 할아버지는 동네 사람들과 마주하며 그동안 켜켜이 쌓였던 사연들을 이야기하며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할아버지는 그토록 아들을 원하셨지만, 없는데 비하면 넘치고, 있는데 비하면 부족할 1남 2녀를 두셨다. 임종이 가까워지면서 할아버지는 할머니 손을 붙들고 어떻게 하더라도 대를 꼭 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돌아가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장가 들어서 할머니 모시고 집안 살림살이를 하기 시작한다.

어느 날 아버지에게 뜻밖의 기쁜 소식이 날아온다. 할아버지께서 바라고 바라시던 아들을 얻은 것이다.

할아버지가 그토록 원하시던 아들였다. 아버지는 대를 이을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할머니는 할아버지 영정 앞에 앉아서 할 범! 그토록 바라던 아들이 태어났소. 기쁘지요! 아무 탈 없이 무럭무럭 자라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해 주소 하며 눈물을 훔치신다.

아들은 사이좋게 지내는 친구도 생겼다. 아버지는 병아리 같은 녀석들이 모여 노는 것을 보고 재롱스럽고 귀여워하셨다.

어느 날 우리 집 아이와 이웃집 아이가 같이 놀다가 언쟁이 벌어졌다. 이웃집 녀석은 덩치도 크고 힘도 세 보였다. 눈을 부릅뜨고 자기가 잘했다고 우긴다. 우리 집 아들 녀석은 덩치에 눌려 기가 죽어 대들지 못하고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다.

아버지가 달려가서 이웃집 아이에게 같이 놀아라 하며 타일렀다. 이 녀석이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며 집으로 가더니 자기 형 네댓을 데리고 온다. 여태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광경을 보고 아버지는 놀라셨다. 외동은 말 그대로 외로웠다. 형제가 있어야 외롭지 않고 서로 의지하며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고 하신 할아버지 말씀을 새겨 본다.

저희 가문은 손이 귀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래서인지 할아버지께서 이것을 아시고 그렇게도 걱정하셨던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할아버지께서도 아들 하나밖에 없었으니 얼마나 애간장 탓을 까? 까닥 잘못했으면 대를 잇지 못할 뻔하셨다.

다행히 아버지는 아들 딸 손주 스물셋을 키웠으니 할아버지 생각에는 못 미치지만 절반의 성공을 한 셈입니다.

할아버지! 이제 안심하십시오.
할아버지께서 염려하시던 대(代)는 끊어지지 않고 영원무궁토록 번성하고 이어질 것입니다. 모든 거 잊으시고 하늘나라에서 편안히 계시옵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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