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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문화 기획/특집

의흥면 이지리 선암산 “수태사”(전통사찰)

admin 기자 입력 2022.11.03 10:37 수정 2022.11.03 10:37

신라 문무왕 원년(681)에 의상대사가 창건
우리 고장 문화기행(2)

↑↑ 수태사 전경
ⓒ N군위신문

↑↑ 권춘수 작가
대구가축병원 원장
ⓒ N군위신문
추분이 지난 지 며칠 되었다. 후덥지근하던 여름이 떠날 채비를 서두른다. 먼 산에는 벌써 푸른 나뭇잎들이 옅은 화장을 하며 가을맞이 준비를 하는 듯 여기저기 단장하는 모습이 어른거린다. 배낭을 걸머메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

막상 나서려니 갈 곳이 마땅찮다.
바다낚시 등산 여행 등 있지만 산에 가는 것이 제일이다. 울창한 숲과 소나무에서 뿜어내는 피톤치드 냄새를 맡으며 조용한 오솔길 따라 걷는 재미보다 더 좋은 거 없다.

이름 모를 새들의 합창 소리에 넋을 잃어 걷다 숲에 걸려 그만 웃지 못할 황당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넓적한 바위에 엉덩이를 들이대고 명상에 잠긴다. 찌든 하루의 피로가 눈 녹듯 녹아내린다.

지겹도록 본다. 날만 새면 보는 것이라곤 산과 들 뿐이다. 그 외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휴일이면 도시 사람들이 산에 올라 야단스럽게 시끌벅적한 것을 보고 의아했다.

산은 산일뿐 무엇이 그리 대단하다고 저 난리야? 구시렁거린다. 질투라기보다 먹고 사느라 생각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언제 해가 떴는지 졌는지도 모르고 살다가 힘에 부치면 쓰러지고 못 일어난다.

그러다가 한세상을 등지고 만다. 산다고 사는 것이지 사는 것이 아닐진대 알아도 모르는 척 웃고 떠들어대며 살아가는 농촌의 풍경에 만감이 교차한다.
들은 든든한 나의 평생직장이다. 이른 아침에 들에 나가서 점심때 들어오고, 점심 먹고 들에 나가서 해 질 녘에 들어온다.

개미 쳇바퀴 돌듯 사느라 한시도 자리를 비울 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도시에 사는 지인이 산에 놀러 가자며 찾아왔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안이 벙벙했다.

일 년을 하루 같이 사는 나에게는 꿈같은 이야기다.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다.
그렇다고 모처럼 찾아온 지인한테 바쁘다는 핑계로 돌려보낼 수 없다. 속이 타들어 가도 같이 가주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아 따라나섰다.

모처럼 산에 오르니 여태 느껴보지 못했던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 “세월 이기는 장수 없다.” 중턱에도 못 올랐는데 나이 탓인지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발걸음이 제자리에 들어가지 않는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풀숲에 털썩 주저앉아 땀을 훔친다. 파란 하늘과 숲과 나무를 바라보면서 여유로움을 만끽해 보기는 생전 처음이다.

빽빽한 소나무 사이로 기와집 용마루 같은 것이 보이다 말다 한다. 내가 잘 못 본 것일까? 손을 가리키며 “저것이 뭐지?” 지인한테 물어보았다.

지인은 “절인 것 같다”며 절에 대한 이야기를 재밌게 한다. 절에 대하여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아 절에 다니느냐고 물어보았다. 다니지 않는다고 하면서 산에 오다가다 절이 있으면 가끔 들리고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관심이 높아졌다고 한다.

그 후, 문화와 역사를 조명하는 불교문화에 조금씩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스님들의 이야기를 즐겨 들으며 불교에 관한 서적도 눈에 띈다.
한국 사찰의 구성은 일주문(一柱門) 천왕문(天王門) 불이문(不二門)으로 되어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불이문을 해탈문(解脫門)이라고 하는 것도 알았다.

일주문은 사찰로 들어가는 첫 번째 문으로, 기둥을 일자로 양쪽에 하나씩 세워 기둥 위에 맞배지붕 양식으로 되어있다.

여기가 바로 부처님이 계신 수미산(須彌山)의 입구다. 절에 들어가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깨끗이 씻고 일자로 선 기둥처럼, 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세계로 나가라는 의미가 담긴 문이다.
천왕문은 사찰로 들어가는 두 번째 문으로, 부처님의 세계를 지키는 사천왕(四天王)을 모신 곳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에 맞배지붕 양식으로 되어있다.

사천왕은 동서남북을 수호하는 왕으로 동쪽을 지키는 지국천왕, 서쪽을 지키는 광목천왕, 남쪽을 지키는 증장천왕,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 등을 말한다.

불이문은 사찰로 들어가는 세 번째 문으로 이 문 앞에 섰다는 것은 곧 부처님 계신 수미산(須彌山) 정상에 올랐다는 의미다. 이문을 통과하면 부처님을 뵐 수 있다는 것이다.

절을 찾아가는 데는 여러 가지 목적과 의미를 가지고 가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절 구경만 하러 가는 경우, 당대의 역사와 건축미 등 다양한 면을 보러 가는 경우, 부처님의 세계와 현존의 세계를 만나 뵈려 가는 경우, 그 외 다른 경우도 있겠지만 예를 들어 보았다.
절의 문화와 역사 신묘하다. 알면 알 수록 점입가경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흥미와 재미를 북돋아 준다.

날이 갈수록 절에 관심이 깊어진다. 군위에는 이름난 삼국유사, 인각사, 압곡사, 제2석굴암 등 천년 고찰들이 많다.

그중에 의흥면 지호2길 202에 있는 선암산(船巖山) 수태사(水泰寺)는 빼놓을 수 없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0 교구단 은해사(銀海寺)의 말사로 신라 31 신문왕 1(681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 당시 대사찰이었으나 조선시대 화재로 소실되고 작은 암자로 명맥을 이어왔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원통전(圓通殿)과 심검당(尋劍堂), 산령각(山靈閣) 등이 있다.

절을 찾아가 보려고 스님이 계시는지 알아보았다. 전화를 여러 번 해도 받지 않아 어느 날 아침 일찍 전화를 걸었다. 스님께서 오전에는 바쁘다고 하시면서 오후에 오면 좋겠다고 하신다.
미지의 선암산 수태사를 본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 마음을 가다듬고 길을 나선다. 자동차가 다니는 넓은 길 양편에 흐드러지게 핀 코스모스가 반갑게 맞아준다. 울긋불긋한 사과며 대추 등 온갖 과일들이 가을 잔치에 초대받고 분주히 움직인다.

지호2동을 지나 수태사로 들어가는 입구에 방향 표시가 있다. 표시판에 몇 km라고 거리 표시가 쓰여 있으면 좋을 것 같은 데 없어서 아쉬웠다.

산길 따라 한참 더 올라간다. 나락 익는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티 없이 맑은 하늘이 산에 닿을 듯 아슬아슬하다.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어느덧 선암산 기슭에 다 달았다.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화살표 따라 들어갔다.

보잘것없는 한 낱 지식에 불과하지만, 그것도 지식이라고 일주문이 어디 있는지 찾아본다. 보이지 않아 의아했다. 일주문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작은 전각이 있다.
전각 가운데 수태사(水泰寺)라고 적은 편액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일주문인 것으로 생각했다. 일주문이 높아 불자들이 올라가기 힘들어 보인다.

스님이 반가이 마중해 주신다. 스님의 안내로 일주문 옆길 따라 절 안으로 들어간다. 역시나 천왕문과 불이문도 보이지 않는다. 절에는 3문이 있다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3문이 없는 절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경내로 들어서니 넓은 마당이 답답한 숨통을 트게 해 준다.

스님이 나보고 법당에 들렀다 요사채로 오라고 하기에 법당으로 간다. 처음엔 왜 법당으로 가라고 했는지 몰랐다.

절에는 부처님이 계시기에 부처님 보고 예를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요사채에서 원통전으로 올라가는 데는 가파른 16개의 돌계단이 있다. 돌계단은 지형 상도 있겠지만, 고행(苦行)을 의미하는 것이다.

원통전에 오르려면 16개 돌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데 체력의 한계에 자신이 없다. 그럼에도 부처님을 뵈러 가려면 고행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생각에 힘들어 올랐다.

3칸의 팔작지붕으로 된 원통전(圓通殿)이 있다. 조선시대에 화재로 소실되고 19세기 중엽 신축 당시에는 대웅전이라는 편액이 달려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대웅전 편액이 없고 원통전 편액이 달려 대웅전 역할을 하는 걸로 보인다.
원통전 안에는 대세지보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등이 있고 어느 시대 것인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탱화가 벽에 걸려있다.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나왔다. 원통전 옆에 고려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4층 석탑이 있다.

지붕이 있는 하대석(下臺石)을 보면 5층 석탑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층의 탑신과 2층의 탑신의 크기가 현저히 차이가 있어 한층 더 있음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암산을 관장하는 산령각(山靈閣)을 둘러보고 스님이 계신 전각으로 돌아왔다.

스님과 차를 마시면서 절에 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스님 혼자 이 큰 절을 관리하시기에는 너무 벅차 보였다. 여러 번 전화했어도 받을 수 없었던 것을 오늘 알았다. 천년 고찰이면서도 문화재 한 점 없다는 걸로 문화재청으로부터 관리비를 전연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에 가슴 아팠다.

천년의 역사를 고이 간직한 선암산 수태사를 그냥 방치해서는 안 된다. 우리 고유한 자산으로 보호하고 가꾸고 해서 빛나는 우리 유산으로 만들어야 하겠다.

스님과 이야기하며 밤을 새워도 부족할 것 같았다. 어느새 석양이 서쪽 산봉우리에 곱게 물들인다. 선암산 수태사에 부처님의 자비가 가득하길 빌면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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