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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외짝 신 사나이(2)

admin 기자 입력 2023.01.02 21:14 수정 2023.01.02 09:14

↑↑ (故) 이윤기 작가
ⓒ N군위신문
저서로는 중단편 소설집 『하얀 헬리콥터』 『나비넥타이 장편소설 『하늘의 문』 『사랑의 종자』 『햇빛과 달빛』 『뿌리와 날개』 등이 있다.
역서로는 『장미의 이름』 『리스인 조르바』 『변신이야기』 등이 있다.
1991년부터 1996년까지 미국 미시건 주립대학교 국제대학 연구원(종교사)으로 1997년부터 2000년까지 같은 대학교 사회과학대학(문화인류학)을 지냈다.
1998년 중편소설 숨은 그림찾기 1- 직선과 곡선으로 동인문학상, 2000년에는 한국번역가상, 대산문힉상(소설 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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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신화나 전설에는 신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그리스 신화도 예외는 아니다. 신발을 잃어버린 사람 이야기, 잃어버린 신발을 되찾는 사람 이야기, 강가에 신발을 벗어놓고 투신자살하는 사람 이야기, 신발을 단서로 잃어버린 사람을 찾아내는 사람 이야기......

그리스인들에게 신발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신발은 무엇인가? 우리는 우리 신발을 제대로 신고 있는가?

그리스 신화에는 아이손(영어 Janson) 이라는 영웅이 등장한다. 아르고(Argo)라는 이름의 아주 빠른 배를 타고 북쪽 나라로 가서, 아득한 옛날 그리스인들이 잃어버린 황금빛 양의 털가죽을 찾아오는 영웅이 바로 아이손이다. 황금빛 양털 가죽은 그리스인들의 자존심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아손은 그리스인들의 잃어버린 자존심을 되찾은 영웅인 샘이다. 이아손 이야기 첫 대목부터 소개한다.

아득한 옛날 그리스 땅에는 이올코스라는 나라가 있었다. 영웅 이아손은 당시 이 나라를 다스리던 왕의 왕자로 태어났다. 나라가 평화스러웠다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이 될 운명을 타고 태어난 셈이다.

그러나 이안손은, 모든 영웅이 다 그렇듯이 어릴 때부터 모진 고생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올코스 나라의 왕은 여러 가지로 부족한 왕이었다. 지혜롭지도 못했고 용감하지도 못했다. 현명한 신하도 없었고 범 같은 장수도 없었다. 게다가 젊음조차 없었다. 이아손이 태어날 당시 이미 이올코스 나라의 왕은 졸다가도 나귀 잔등에서도 이따금씩 떨어질 정도로 나이를 먹은 노인이었다.

있어야 할 것이 턱없이 부족했던 이 왕에게는 있어서는 안 될 것이 하나 있었다. 있어서는 안 될 것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뱃속이 검은 이복 아우였다. 왕은 당시 이미 노인 측에 들었지만 이복 아우 펠이아스는 30대 한창 나이의 젊은이었다.

펠리아스는 재산을 풀어 신하들의 환심을 사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펠리아스에게서 뇌물을 얻어먹은 신하들은 공공연히 이런 말을 하고 다녔다.

“왕은 연세가 많고 왕자인 이아손은 아직 어리다. 왕자가 자라 왕위를 이을 때까지 이렇게 기다리고만 있을 수만은 없지않는가? 그래야 밖에서 우리 나라를 넘보는 자들을 막고, 안애서 왕자를 넘보는 자들을 막을 수 없지 않겠는가?”

펠리아스는 아론 신하들의 도움을 받아 왕위에 올랐다. 뱃속이 검은 펠리아스도 그냥 왕위에 오르기는 미안 했던지, 자신에게 호감을 갖지 않은 신하들에게 한 가지를 약속했다. 그것은 이아손이 장차 자라 왕 노릇 할 만한 나이가 되면 왕위를 물려주겠다는 약속이었다.

하지만 이런 약속은 지켜지기 어려운 것이 보통이다. 왕위에 오른 펠리아스는 권력을 휘둘러 장차 왕 위에 오를 조카를 얼마든지 해코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보라. 왕위 계승자라는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에 목숨을 잃은 왕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것을 잘 아는 이아손의 가까운 친척들은 어느 날, 다섯 살밖에 안 된 이아손을 몰래 펠리온 산으로 보냈다.

펠리온 산에는 ‘현자(賢者)’라고 불리는 반인반마(半人半馬), 즉 허리 위로는 사람의 모습, 허리 아래로는 말의 모습을 한 캔타우로스(馬人) 케이론이 있었다. 이 케이론은 여러 영웅들을 배출해 낸 켄타우로스다. 헤라클레스, 의신 아스클레피오스, 그리고 트로이아 전쟁의 영웅 아킬레우스도 바로 이 케이론의 제자들이다.

우리가 만화나 무협지 같은 것을 통해서 잘 알고 있거니와, 이아손은 이 산에서 숨어 지내면서 케이론에게서 칼 쓰는 법, 활 쏘는 법, 악기 다루는 법, 배 젓는 법, 뱃길 짐작하는 법 따위를 배웠다.

이아손이 펠리온 산으로 떠난지 15년째 되는 해, 키 높이로 자란 펠리온 산 자락의 갈대숲을 헤치고 나오는 한 젊은이가 있었다.

그가 바로 다섯 살 때 펠리온 산으로 숨어들어간 왕자 이아손이다. 15년 동안이나 무술을 연마하고 웅변술을 익힌 이아손이 나라를 찾기 위해 드디어 산을 내려 온 것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깎지 않았던지 이아손의 머리카락은 엉덩이까지 치렁치렁 자라 있었다.

한편 펠리아스 왕은 조카 이아손이 펠리온 산에서 무술을 연마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다섯 살 어린 나이에 흔적도 없이 종적을 감춘 이래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펠리아스는 자기에게 이아손이라는 조카가 있다는 사실도 잊은 지 오래였다. 비록 형에게서 왕위를 뻬앗기는 했지만 펠리아스는 이올코스 나라를 괜찮게 다스리는 꽤 쓸 만한 왕이었던 것 같다. 이올코스는 늙은 왕이 다스리고 있을 때보다 훨씬 강성해져 있었다. 그런데 이아손이 종적을 감추고 15년 세월이 흐른 당시, 나라 안에는 이상한 소문이 나들기 시작했다. 그 이상한 소문을 동요로 지어 부르는 아이들도 있었다.

모노산달로스가 내려와
이올코스의 왕이 된다네......

펠리온 산에서 내려와 이올코스 나라로 들어가려면 아나우로스 강을 건너야 했다. 이아손도 그 강을 건너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아손이 아나우로스 강을 건너려고 하는데, 강변에는 먼저 온 듯한 할머니 한 분이 앉아 있었다.

할머니는 여울목을 찾기는 찾았지만 물살이 너무 새어 혼자는 건너지 못하고 도와 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임에 분명했다.

이아손이 다가가자 할머니가 퉁명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나를 업어서 건네 주려느냐? 아니면 내가 너의 그 긴 머리카락을 잡고 건너랴?”
이아손은 할머니의 퉁명스러운 말투에 화가 치밀었지만 상대가 할머니라 마음을 고쳐먹고 공손하게 대답했다.

“마땅히 업어서 건네드려야지요.”
이아손은 할머니를 업고 강물로 다가섰다. 여울목인데도 하도 깊어서 한 발 들여놓자 무릎이 잠기고 두 발 들여놓자 엉덩이가 잠겼다.

“이 아둔한 것아, 내 옷이 젖지 않으냐?
할머니가 이렇게 소리를 지르면서 있는 힘을 다해 이아손의 목을 끌어안고 목쪽으로 기어올랐다.

이아손은 치밀어오르는 화를 억누른 채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어디로 가는 놈이냐”

할머니가 쥐어박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
모노산달로스가 ‘모노(Mono)’가 무엇인가? ‘하나’라는 뜻이다. ‘산달로스’는 가죽신이다.
가죽끈으로 장단지에다 얼기설기 엮어 묶는 가죽신이다. 오늘날 우리가 ‘샌들(Sandle)’이라고 부르는 슬리퍼 비슷한 신발 이름은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그렇다면 ‘모노산달로스’는 무엇인가? 신발을 한쪽만 신은 사나이, 즉 외짝 신 사나이 라는 뜻이다.

자, 모노산달로스가 어떻게 왕이 될 수 있는가? 우리는 혹시 신발 한짝을 잃어버린 사랑들은 아닌가? 잃어버리고도 잃어버린 줄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잃어버렸다는 인식하는 순간, 사람은 신발 한 짝 이상의 어떤 것을 획득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지켜볼 수밖에 없다.

이아손은 우선 머리나 손질해야겠다고 생각하고눈 일발소를 찾아들어 갔다. 이발사가 이아손의 아래위를 번갈아 훑어보다가 물었다.

“가죽신 한 짝은 어떻게 하셨어요?”
“아나우로스 강을 건너다가......물살이 어찌나 센지 그만 가죽신 한 짝을 떠냐려보냈소.....”
“참, 이상하다.”
“무엇이 이상해요”
“요즈 우리나라에는 모노산달로스(외짝 신 사나이)가 내려와 왕이 된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요.”
“해괴한 소문이군요..... 나도 하나 물어봅시다. 혹시 이 나라 왕이 어느 여신의 신전을 욕보인 일이 있습니까?”

아이손이 묻자 이발사가 대답했다.
“있겠지요. 펠리아스 왕은 본처가 있는데도 첩을 여럿 두었어요. 첩들은 차례로 자식을 낳았고요. 젊은이는 헤라여신이 어떤 여신인지 아시지요.”

“알고 말고요. 신성한 결혼을 지키시는 여신 아닌가요? 신성한 결혼을 더럽히면 벌을 주시는 여신 아닌가요?”

“맞습니다. 펠리아스 왕이 신성한 결혼의 맹세를 어기고 이 여자 저 여자를 건드리니까 헤라 여신의 신전을 지키고 있던 여사제가 펠리아스 왕에게 충고했지요.”

“뭐라고요?”
“그런 못된 짓 그만두지 않으면 모노산달로스가 와서 왕위를 빼앗을 거라고요. 하지만 펠이아스 왕은 못된 짓을 그만두기는 커녕 사람을 보내어 신전 기둥뿌리까지 뽑게 했답니다. 말하자면 헤라 여신을 단단히 욕보인 것이지요.”

이발사의 말을 들은 이아손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중얼거렸다.
“……아, 그렇다면 아까 그 할머니가 바로 헤라 여신이었구나, 헤라 여신의 할머니로 둔갑하고 내 앞에 나타셨던 개로구나……”

여기까지가 그리스 신화 『아르고 원정대 이야기(Argonautica)』에 나오는 모나산탈로스, 즉 외짝신 사나이위 내력이다. 아르고는 영웅 이아손이 타고 먼 남쪽 나랋 갔던 배 이름이다. 모노산달로스 이아손이 북쪽 나라 콜키스에서 그 나라 공주 메데이아의 도움을 받아 황금빛 왕의 털가죽을 찾아가지고 돌아와 펠리아스 왕을 몰아내고 왕위를 되찾게 되는 것은 그러부터 세월이 한참 흐른 뒤의 일이다.

왜 하필이면 신발인가? 신발은 과연 무엇인가?
이런 의문을 한번 풀어봅시다.
테세우스 신화에는 이 신발이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는지 어디 한번 살펴보자.

<자료제공 : 김성규 전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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