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more
인물 독자마당

<칼럼> 진짜 친구가 필요하다

admin 기자 입력 2023.02.02 22:33 수정 2023.02.02 10:33

↑↑ 이수만 부총재
ⓒ N군위신문
또 새로운 한 해가 M.T.키케로는 “친구는 또 하나의 나다.”라고 했으며, 구약성서엔 “성실한 친구는 안전한 피난처요, 그런 친구를 가진 것은 보화를 지닌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관중과 포숙의 사귐과 같은 허물없는 친구사이를 관포지교(管鮑之交), 마치 고기와 물의 관계처럼 뗄래야 뗄 수 없는 특별한 친구 사이를 수어지교(水魚之交), 서로 거역하지 않는 친구를 막역지우(莫逆之友), 어릴 때부터 대나무 말을 타고 놀며 같이 자란 친구를 죽마고우(竹馬故友), 금이나 난초와 같이 귀하고 향기로움을 풍기는 친구를 금란지교(金蘭之交)라 한다.

설 연휴에 친구가 보내온 작자 미상의 카톡 내용을 요약하면, 정 진사네 사랑방엔 선비와 문사들이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부인과 혼기에 찬 딸 둘은 허구한 날 밥상, 술상을 차려 사랑방에 들락날락 하는 것이 일과였다.

어느날 허법 스님이 찾아와서 “정 진사는 친구가 도대체 몇이나 되오?” 스님이 묻자 정 진사는 천장을 보고 한참 생각하더니 “얼추 일흔은 넘을 것 같습니다.” 스님은 혀를 끌끌 찼다. “진사는 참으로 불쌍한 사람이요.” 정 진사가 눈을 크게 뜨고 문을 활짝 열더니 “스님, 펼쳐진 저 들판을 모두 남의 손으로 넘기고 친구 일흔을 샀습니다.” 스님은 껄껄 웃으며 “친구란 하나 아니면 둘, 많아야 셋, 그이상은 친구가 아닐세.”

보름 후 정 진사가 죽었다는 소문이 났다. 진사 생전에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던 친구들은 낯짝도 안 보였고, 몇 명은 미망인한테 차용증을 보여주며 정 진사가 돈백 냥을 빌려갔다고 하고, 또 한사람은 왕희지 족자 값 삼백 냥을 못 받았다며 지불각서를 내밀었다.

구일장을 치르는데, 여드레째가 되니 이런 저런 채권자들이 빈소를 가득 채웠다. “내 돈을 떼먹고선 출상(出喪)도 못해”, “이 사람이 빚도 안 갚고 저승으로 줄행랑을 치면 어떻게 해.” 빈소에 앉아 다그치는 글 친구들 면면은 모두 낯익었다.

그때 허법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빈소에 들어섰다. 미망인이 한 뭉치 쥐고 있는 빚 문서를 낚아챈 스님은 병풍을 향해 고함쳤다. “정 진사! 일어나서 문전옥답을 던지고 산 잘난 당신 글 친구들에게 빚이나 갚으시오!” 빚쟁이 친구들은 혼비백산해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도망갔다.

정 진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허법스님은 빚 문서 뭉치를 들고 사또에게 찾아갔다.
사또가 “민 초시는 정 진사에게 삼백 냥을 빌려줬다지?” 민 초시는 울다시피 “나으리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하자 사또는 “곤장 삼백 대를 맞을 텐가 삼백 냥을 부의금으로 정 진사 빈소에 낼 건가?” 이렇게 하여 정 진사는 글 친구들을 사느라 다 날린 재산을 그 친구들을 다 버리고나서 다시 찾았다는 그럴듯한 이야기다.

공자가 말하기를 술 마실 때 형 동생 하는 친구는 많아도 급하고 어려울 때 도움을 주는 친구는 한 명도 없다고 했다.

내가 죽었을 때 술 한 잔 따라주며 눈물을 흘려줄 그런 친구가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살면서 외롭고 힘들 때 따뜻한 우정과 마음을 담아주는 친구가 내 곁에 몇 명이나 있을까?

잠시 쉬었다가는 인생 어쩜 사랑하는 연인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 노년의 친구가 아닐까? 진짜 친구란 온 세상 사람이 다 내 곁을 떠나갈 때 나를 찾아오는 바로 그 사람이다.

그런 친구가 과연 몇이나 될까. 한 평생 살면서 옳은 친구가 한 명만 있어도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고향친구가 배로 많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한 해 놀고 중학교에 들어갔기 때문에 초등 한 해 후배들도 동기생이 되고 친구가 되었다.

매월 모이는 친구 모임은 둘째 목요일 낮 만반회(만원씩 내고 초과 식대는 유사가 부담), 초등동기생 번개만반회, 고교동기생 모임은 셋째 금요일 저녁 대일회(6명)와 마지막 금요일 낮에 모이는 기고만장회(16명)가 있다.

마지막 월요일 낮에 모이는 대학 동기모임 정우회(6명), 일신회(매일신문 편집국 출신)와 향우회도 매월 만난다. 매일신문사우회와 여주이씨장년회(총무), 사회인 모임인 대구엘더스클럽은 격월로, 대구경북언론인회(사무총장)와 춘추회(상임부회장)는 내가 직접 실무를 맡고 있는 단체이다.

내가 초대 회장으로 만든 45년 된 고향친구들 30여명 모임인 거북산구락부도 죽고 탈퇴하여 현재는 20여명이 남아 부부가 함께 1년에 두 번씩 만난다.

둘 다 1920년생인 김형석 교수(103세)와 10년 전 작고한 고(故)안병욱 교수(향년 93세)는 20세기 후반 대한민국 철학계를 이끌었던 분인데, 강원도 양구에 ‘김형석 안병욱 철학의집’이란 기념관이 있고 인근에 안 교수님의 묘가 있으며, 그 옆에 김 교수님의 가묘가 있다. 두 분은 진짜 친구로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할 ‘롤 모델’이라 생각한다.


한국컴퓨터속기학원 이수만 원장


저작권자 N군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