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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느낌과 심의 있는 산소 카페 청송군 전통 문화

admin 기자 입력 2023.02.02 22:38 수정 2023.02.02 10:38

민족 문화 역사의 산실…송소고택, 군립청송 야송미술관, 객주문학관 찾아
수필가 권춘수 박사 문학기행(4)

↑↑ 권춘수 원장
대구가축병원
ⓒ N군위신문
청송 하면 주왕산이 먼저 떠오른다. 주왕산은 세계 지질 공원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된 우리나라 3대 암산(巖山) 중 하나다.

청송에는 송소고택, 객주 문학관, 주산지 등 볼거리가 많아 사람들의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3대 암산(巖山)은 전라 월출산, 강원 설악산, 경상 주왕산이다.

문학회에서 청송 문학기행 간다는 소식에 즐거운 상상을 하며 날이 새는 줄 몰랐다.
사느라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마음 편히 여행 한 번 제대로 못 한 나에게 여행이란 말은 듣기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천진난만한 동심의 꿈속에서 꿈을 꾼 것이 깨어질까 봐 두 눈을 꼭 감고 숨소리마저 죽여가며 밤을 지새웠다.

들뜬 마음으로 삼국유사 문화예술회관 앞에서 만났다. 만남은 언제 만나도 기쁘고 반가웠다. 코로나19로 삼여 년 동안 긴장과 공포 속에서 우울하고 답답했던 우리에게 오늘의 만남은 어느 때보다 더 반가웠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누가 먼저 할 것 없이 북두갈고리 같은 손으로 덥석 끌어안는다. 진한 그리움에 눈가엔 살포시 이슬이 맺힌다.

부푼 가슴을 안고 버스에 오른다. 버스 안은 벙거지에 검은 뿔테 안경을 쓴 사람, 울긋불긋 등산복 차림 한 사람, 나처럼 여행을 처음 해 보는 복장으로 한 사람들로 꽉 찼다. 일반적으로 단체 여행할 때면 사무국에서 하루의 일정을 소개하는 식순이 있다.

교과서에 없는 식순으로 회장 인사, 간식 나눔, 찬조 등으로 시작한다. 우리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다. 저명 작가들의 단체 여행이기 때문에 관심이 쏠렸다.

별반 다른 것 없었다. 어쩜 앞뒤 콱 막힌 사람들의 모임보다 못한 것 같았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이 있다. 회장이 인사하는 동안 사무국장이 메모지에 무엇을 쓰며 버스 안 중앙 통로를 왔다 갔다 한다. 무엇을 쓰는지 궁금했다.

옆자리에 있는 한 회원이 지나가는 사무장을 사무장! 하며 큰 소리로 부른다. 사무장을 부르는 소리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아 유심히 쳐다보았다. 한 손으로 호주머니를 더듬거린다. 덕지덕지 때 묻은 낡은 악어 지갑을 꺼낸다. 손가락에 침을 퉤퉤 받고선 몇 장 꺼내 들고 사무장한테 건넨다.

회의 발전에 기여하는 공은 컸지만, 사무장 부르는 소리가 내 마음을 너무나 슬프게 했다.
그럼에도 결코 그 사람을 미워하거나 싫어하지 않았다. 문학회의 발전과 번영을 위하여 세심한 관심과 배려를 베풀 줄 아는 꾸김살 없는 착한 마음씨가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다.

폭풍 같은 바람이 지나가고 잔잔한 은빛 물결이 출렁인다. 명상에 잠긴다. 찬조는 넉넉하지 못 할지언정 그날 먹고 쓴 것은 내야 한다는 것은 세상의 이치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이 다시금 새겨진다.

찬조금이란 정해 놓은 것도 강제성도 없지만, 세상은 사람에게 값을 매겨놓고 값대로 살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매겨 놓은 값대로 살아간다. 사람의 구실을 다 하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 때로는 힘들어 값을 다 하지 못할 때도 있다. 삶에는 평지와 같이 편평하지 않고 굴곡이 있기 때문이다.

이 생각 저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시끌시끌하던 버스가 조용해진 것도 몰랐다. 고개를 쳐들고 좌우로 살펴보았다.

회장의 찬조금 폭탄으로 버스 안은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정적감만 흐른다.
구질구질한 내 생각이 회오리치는 태풍에 여지없이 사라져 버렸다.

회장이 일어나 소설 같은 이야기를 꺼내 들고 조용한 분위기를 웃음바다로 반전시킨다. 회장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 우스갯소리 아니었다.

겨울이 시작되는 입동이다.
온갖 만물들이 겨울 준비에 분주하다. 붉게 물 들렸던 늦가을의 풍경이 아쉬움을 남긴 채 홀연히 떠난다.

길바닥을 노란색으로 곱게 물 들렸던 은행나무랑 푸르름을 자랑하던 나무들이 걸쳐 입었던 무거운 옷들을 훌훌 벗어버리고 앙상한 모습으로 화려했던 한 해를 마감한다. 황금빛 들녘도 거무스레한 옷으로 갈아입고 황량한 벌판을 지키며 내년을 기다리고 있다.

황량한 길 따라 버스가 정신없이 달리다가 어디쯤 왔던지 가쁜 숨을 몰아쉬면 바쁜 걸음을 멈춘다.

송소고택이다. 송소(松韶)는 심호택의 호다. 심호택은 심처대의 7대손이다. 고택은 1880년(고종 17년)에 건립한 99칸 전통 한옥이다.

토석 담장 안에는 사랑채, 안채, 중문채, 대문채와 4대 이상의 제사를 모실 수 있는 별묘 등이 있다.

건축양식은 솟을대문에 홍살을 설치하였으며 대청마루에는 세 살문, 위에는 빗살무늬의 교창(交窓)을 달았다. ‘ㅁ’ 자형 집으로 조선 후기 영남 지방 상류층 가옥 형태이다. 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가 보인다.

사랑채 앞에 나지막한 담이 하나 있다. 일명 ‘헛담’이라고 하는데, 이는 여인들이 기거하는 안채가 보이지 않도록 가로막아 여인들의 생활을 자유롭게 하려는 배려이다.

헛담 외에 하나 더 있다. ‘구멍담’이다. 사랑채와 안채를 가로막는 담장에 구멍이 있다.
이것을 구멍담이라 한다. 안채에서 사랑채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해 놓고, 사랑채에서는 안채를 들여다볼 수 없도록 해 놓은 것이다.

또 하나 더 있다. 양반 체면에 사랑채에서 안채로 가려면 가로질러 들어갈 수 없다. 사랑채에서 나와 안채로 들어가야 한다.

이러한 번거로움을 피하려고 사랑채에서 안채로 바로 질러가는 좁은 마루가 있다. 양반들의 지혜로움과 여인들에 대한 배려심을 한 눈으로 읽어 볼 수 있다.

설화에 따르면, 심처대는 본향인 덕천마을 떠나 지경리에 있는 호박골에 터를 잡았다. 거기에서 우연히 승려의 목숨을 구해준 대가로 승려가 잡아준 명당자리에 부인을 모시게 되었다.
이후 가산이 점점 불어나 심호택에 이르러 만석꾼으로 명성을 떨쳤다. 당시 만석꾼으로 이름난 집안들이 많다. 경주 최부자, 구례 운조루, 강릉 선교장 등이 있다.

경주 최부자는 등은 이웃 사랑과 근검절약에 온 정성을 다했다. 청송 심 씨는 이웃 사랑과 항일정신에 투철했음을 엿 볼 수 있다. 청송 항일 의병 기념공원이 있다. 시간에 쫓겨 다음 찾아보기로 했다.

청송에는 주왕산을 비롯하여 볼거리가 많지만, 사과, 약수, 닭백숙 등 먹을거리도많다. 넓적한 도로 한 곳에 청송 약수 닭백숙이라고 쓴 간판이 누구를 기다리는지 말없이 우두커니 서 있다.

한입 가득한 침을 삼키며 식당 문을 연다. 점심때가 늦었던지 텅 빈 배 속에서 연신 꼬르륵 소리가 난다. 주인이 찹쌀에 닭 다리 4개를 넣어 맛있게 끓인 큼직한 냄비를 식탁에 올린다.

닭 다리가 네 개인 걸 보니 한 사람 앞에 하나씩인 것 같다. 맛 바람 게 눈 감추듯 닭 다리, 네 개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식곤증에 눈꺼풀이 밝은 대낮에 부둥켜안고 떨어질 줄 모른다.

오는 잠을 쫓아내며 비틀걸음으로 군립청송야송미술관(郡立靑松野松美術館)을 찾아간다.
미술관이 학교 건물인 것 같은데 증개축한 것이다.

전시관, 관람실 등 부대시설을 갖춰 미술관 면모를 여실히 드러낸다. 운 좋은 날이다.
청송 야송 미술대전이 열리는 날이다. 서양화, 수채화 등 100여 작품이 전시관을 꽉 매웠다.
서성호 전 회장 부인 신은주 화백의 《여름의 산사 풍경》 작품이 입선 작품 대열에 끼어 있다. 한 땀 한 땀 수놓듯 만나는 사물을 작품화하는 능력이 탁월해 보였다.

마음속으로 축하 박수를 보냈다. 우리 지역에 이토록 유명한 화가가 있음에도 그림 한 점 걸 곳 없어 아쉬운 마음이 든다.

통시 같은 집 하나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말이 빈말 아닌 것 같았다. 청량대운도(淸凉大雲圖)를 전시해놓은 야송미술관에 들렀다.

청량대운도는 야송 이원좌 화백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청량산을 배경으로 한 실경산수화다.
화백의 주요 소장품으로 주왕산을 배경으로 한 주왕운수도, 주왕산 제3폭포(용연폭포), 야송산수관 등 다수 점이 있다. 군립청송야송미술관(郡立靑松野松美術館)을 보면서 우리 군에도 이러한 미술관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늦가을 햇살이 여름 햇살보다 짧은가 보다. 머리 꼭대기에 있던 해가 어느새 헐떡이며 빠른 걸음으로 서산으로 달린다.

덩달아 볼거리 많은 내 마음이 급해진다. 어둡기 전에 객주 문학관으로 가야 한다.
문학관 해설사가 반갑게 맞아준다. 전시장에는 〈작가의 고백〉, 〈작가는 누군가〉, 〈소설가가 되기까지〉, 〈작가의 꿈〉 등 깨알 같은 글씨로 쓴 글을 부착해 놓은 것이 눈에 들어온다.

다른 전시장에는 소등에 길마를 얹고 길마 위에 장에 내다 팔 물건을 싣고 섶다리 위를 건너가는 소들의 행렬, 엿을 팔려고 엿판을 매고 서 있는 어린아이들의 모습, 젖가슴을 드러내놓고 행상하는 여인들의 모습, 형틀을 목에 걸고 앉아있는 죄인들의 모습과 태형을 받는 모습, 선술집 표시 등 옛 모습을 고스란히 사진에 담아 올려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청송에는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있는 항일 의병기념관, 주산지, 얼음골 등이 있음에도 못 다 보고 온 것이 아쉽다. 청송문학기행을 통해서 청송 과거사를 면면히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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