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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운전을 내려놓으려니 허전하다

admin 기자 입력 2023.03.20 00:35 수정 2023.03.20 12:35

↑↑ 황성창 시인
ⓒ N군위신문
여든넷, 지금도 운전을 하고 있으니 주위 눈치를 보게 된다.
스물아홉에 운전면허를 따고 방방곡곡 다녔으니 무려 반세기를 운전한 셈이다.
오랜 세월 아슬아슬하게 잘 비켜 나왔다.

요즘 고령 운전자들의 늘어난 교통사고 소식에 동년배라 동병상련을 금치 못한다. 나이는 들었지만, 육체적으로 운전하는 데 특별히 장애를 느껴보진 않았다. 간간이 고령 운전자의 사고 소식을 들을 때마다 분별없이 운전하는 노인네 취급을 받지는 않을까 하는 주변을 의식하고 살펴보는 버릇이 생긴 것 같다.

여든 살 들면서부터 야간 운전이나 고속도로상의 운전은 되도록 자제하고 있다.
수십 년을 반복한 생활 습관을 쉽게 바꾸지 못해 운전을 계속했다. 당분간은 차를 계속해서 몰고 다닐 생각이다. 머잖아 운전을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접 든지 양단간에 결단을 내릴 생각이다. 지금으론 3만여Km의 거리를 달려온 나의 분신 같은 차와 헤어지기가 그리 쉽지 않을 성싶다.

30대에 자영업을 시작하면서 잡은 운전대가 초심처럼 조심 또 조심 운전하고 있다.
나루터의 길손을 기다리는 뱃사공처럼 고객을 기다리는 게 자영업자들의 삶이다. 고객의 부름에 빠르게 대응해나가는 방법 중 그 하나가 기동성이다. 업무의 역동성을 위해 차는 필수품이다.

내 생애 처음으로 택한 차종은 지프차였다. 요즘같이 쉽게 구할 차종이 없을 때다.
부득불 지프차 모델을 가상해놓고 부품을 비밀스러운 루트를 통해 모아 한 달여 만에 차를 완성했다.

면허증 없는 자칭 자동차 기술자들이 만든 단 한 대뿐인 특수 6인승 지프차다. 여차하면 쇠고랑을 찰 무모한 짓을 어찌 겁 없이 했나 싶다.

1970년대만 해도 부산의 이면도로는 거의 비포장도로다. 업무용으로는 갈기를 세운 야생마처럼 험한 도로를 달려도 엔진이 센 지프차가 안성맞춤이었다. 국산 차 나오기 전 아득한 30대 시절에 만용을 부린 추억에 얽힌 이야기다.

그때는 부산에 아파트가 흔치 않았고 자가용도 뜨문뜨문 보일 정도로 드물었다. 차를 아무 골목에 세워둬도 별말이 없었다.

밤에는 차에 커버를 씌우기도 했다. 극성이 대단했다. 그땐 주차단속이나 음주운전 단속 같은 개념 자체를 아예 몰랐다.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이었으니까. 1970년대 초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250달러 내외였다.

그땐 차를 세워두면 씻고 닦고 왁스까지 발라 번쩍번쩍할 때까지 문질렀다. 심지어 타이어에도 구두약으로 까맣게 빛을 내었다. 당시는 누구라 할 것 없이 자가용이나 백색 전화기를 명실상부 재산목록 1~2호로 꼽았다. 요즘 젊은이들은 무슨 말인가 의아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지금은 세계 경제 10위권의 부자나라답게 집집이 고급 외제 차에서부터 국산 차 한두 대꼴은 보유하고 있다.

도로에 나가면 수많은 차가 물결처럼 밀려가고 있다. 차가 많은 만큼 교통사고도 빈번하다.
특히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노화가 진행되면서 순발력이나 신체기능이 점차 떨어지면서 생기는 사고다. 운전은 감각·인지·신체기능이 총동원돼 곡예 하듯이 이뤄진다.

도로 상황을 분석하는데 필요한 인지기능은 돌발 상황 대처에 필수적이다. 안타깝지만 나이 들면 기능 저하 현상은 불가피한 것을 어찌하겠나.

지난 8일 전국 동시조합장 선거 날 전북 순창군 어느 농협 주차장에서 큰 인명사고가 났다. 74세 운전자가 투표를 기다리던 인파를 덮쳐 4명이 숨지고 16명이 중경상을 입은 끔찍한 대형 사고다.

운전자가 브레이크와 가속 페달을 착각해 밟아 일어난 사고라 했다. 충격적인 소식이다. 지난해 연말쯤에도 서울 강서구 등촌동 한 대로에서 80대 여성 운전자가 도로변 아파트 담장을 들이받은 사고가 났다.

그때도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브레이크 페달로 착각한 것이 사고 원인이라고 발표했다. 조심스럽게 핸들을 잡았으면 불행한 참사는 피했을 것이다.

최근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 뉴스를 들으면 공연히 좌불안석 신세다. 사고가 남의 일 같지가 않아서다.

혼자만 운전을 조심한다고 교통사고가 안 나는 게 아니니 이게 문제다. 운전은 역동적이면서도 위험은 항상 따른다. 그 때문에 한국에서 운전은 전쟁에 비유할 정도로 난폭하다. 교통법규 준수 이전에 우선 운전 예의가 너무 없어 여론의 질책이 따가울 정도다.

어쩌다 보면 내가 한해 두세 번은 고향엘 가는 편이다. 고속도로를 달린 땐 철저히 안전거리 유지와 제한속도를 지킨다.

개죽음 같은 참사 사고에서 벗어나려는 내 나름의 주행 신조다. 혼자 장거리 운전하느니 말동무 겸 동승자가 있으면 좋으련만, 굳이 홀로 떠난다.

고속도로에서 발생하는 다중충돌 사고를 보면 너무 끔찍해 가족은 물론 다른 사람들도 태우지 않는다. 그 일로 마나님의 오해도 받았다. 사고의 위험 부담은 혼자로 족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운전이란 게 사람에 따라 다른 건데 나이 많다고 교통사고를 내는 건 아니다. 젊은이라도 어이없게 들이받는 운전자도 있고 80에서도 침착하게 운전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함에도 고령자들의 운전사고 소식을 들으면 마치 내가 사고라도 낸 듯 씁쓸한 기분이다. 그럴 땐 남들이 내 얼굴의 주름이라도 엿볼까 두려워 운전을 접을까 하는 생각이 요즘에 와서 부쩍 든다.

하기야 대중교통을 이용해보면 그렇게 편할 수 없더라.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운전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니 잠시나마 호사를 부린다. 그뿐이겠나 운전을 접으면 차량에 들 돈도 없지 않은가.

연간 들어갈 자동차 보험료가 백8십만 원, 자동차세 4십2만 원, 연간 주유비 약 6~7십만 원 든다. 대강 처도 3백만 원에 소소한 돈 합하면 4백만 원 정도 절약되는 셈이다.

그럼 운전대부터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세상 편하게 살 궁리를 이참에 다듬어 봐야겠다. 벗들과 주거니 받거니 술 한잔 나누면서 얼마 남지 않을 세월 희희낙락 즐겨 볼까나.

황성창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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