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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문화는 인물 중심으로 뻔어나간다

admin 기자 입력 2023.06.01 22:30 수정 2023.06.01 10:30

하동-박경리 문학관, 최참판댁, 삼성궁
거제-외도와 해금강 등 지역관광자원

↑↑ 권춘수 수필가
ⓒ N군위신문
봄, 봄, 봄의 계절. 팬데믹으로 좌절, 포기, 우울했던 마음을 훌훌 털어버리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

사람들은 시커먼 안경과 알록달록 모자에 배낭을 걸머메고 시끌벅적 버스에 오른다.
버스는 힘찬 엔진소리 내며 내달린다. 버스 꼬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멀거니 바라본다. 허전한 가슴에 외로움이 스멀스멀 찾아든다.

어느 날 문화원(원장 박승근)에서 2023년 4월 20~21일 1박 2일 거제 외도, 하동 최참판댁, 삼성궁 등으로 문화탐방 한다는 연락이 왔다.

뜻밖의 소식에 마음을 고정할 수 없다. 손가락 꼽으면 세아린다. 밤에 잠이 오질 않아 이 생각 저 생각에 잠을 뒤척인다.

살찜이라곤 하나도 없는 앙상한 광대뼈만 툭 튀어나온 얼굴에 찍고 바르고 거울 앞에 서서 있는 폼 없는 폼 다 잡아보고 집을 나선다.

8시 정각에 버스는 약속한 장소로 힘차게 달린다. 여행 중 사무국의 회의 진행은 국회에서 정해 놓은 법처럼 전국적으로 똑같다. 회장의 짤막한 인사 후 입씨름할 먹을거리 한 봉지씩 나눠준다.
↑↑ 군위문화원은 박승근 원장을 비롯한 임원, 향토사위원 등 40여명이 1박 2일동안 경남 거제시와 하동군 일원 선진문화를 둘러보고 지역문화 접목을 위한 문화탐방을 실시했다.
ⓒ N군위신문

이 이야기 저 이야기에 버스 안은 후끈거린다. 12시 정각에 버스는 경남 충무에 도착한다. ‘시장이 반찬’ 눈 깜짝할 사이 풍성한 식탁이 깨끗했다. 시간 놓칠라 허겁지겁 외도外島 가는 선착장으로 간다.

사람들이 북적이며 이국풍이 물씬 풍긴다. 매표소 입구에 외도 입장료 11,000원 유람선 왕복료 22,000원 큼직하게 써 붙여 놓았다. 코로나, 물가, 인건비 탓 등으로 돌리기에는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 돌아가는 대로 살면 될 터 세세하게 들여다보는 것도 탈, 쩨쩨해 보이기 안성맞춤이다.

유람선은 해금강을 한 바퀴 돌면서 긴 세월 동안 모진 비바람에 뼈만 남은 선녀바위, 촛대바위 등 기암괴석들을 보여준다.

저도猪島가 보일락 말락 희미하다. 섬의 형상이 돼지猪가 누워있는 모양과 같다고 하여 저도라 부른다.

박정희 대통령 해상 별장이 있었다는데 보이지 않아 무심한 세월 속에 인생의 허무함을 느낀다.

유람선은 기암괴석 바로 앞에서 사진 찍는 시간을 준다. 셔터 눌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찰칵찰칵 거린다.

그러고는 순풍에 날개 달아 신나게 외도 보타니아 섬으로 달린다.
외도外島는 『외도 보타니아 섬, 또는 조라섬』이라 부르기도 한다. 보타니아란 ‘식물의 낙원’을 뜻한다.

보타닉이라는 식물 이름에 낙원이라는 유토피아 합성어다.
그래서 『외도 보타니아』라 부른다. 한려 해상 국립공원에 속하며 면적이 14만 4,998㎡로 개인 소유이다. 개인이 가꾼 식물원이라는 데 관심이 끌린다.

외도를 들여다본다. 처음 8 가구 살고 있었는데 통신, 정박시설 등 아무것도 없는 무인도와 같았다.

1969년 7월 이창호 씨가 이곳에 낚시로 왔다가 태풍을 만나 하룻밤을 여기서 민박하게 된 것이 인연이 되었다.

이창호 씨의 고향은 평안남도 순천이다. 3년에 걸쳐 섬 전체를 사들여 1970년대부터 이 섬을 개발하기 시작하였다.

고구마밭에 감귤나무 3천 그루와 방풍림 편백 나무 8천 그루 심고 농장을 조성하였는데 실패하고 식물원을 구상하여 30년 넘게 가꾸면서 다듬었다.

1990년 문화시설로 지정되었고 2022년 KBS 드라마 『겨울 연가』의 마지막 회가 제작된 곳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기억을 더듬으며 외도에 첫발을 디딘다. 머리가 닿을 듯 가파른 산이 나를 억압한다. 길 따라 오르는데 몇 발짝 떼지 않았는데 다리가 흐느적거리고 숨이 차오른다. 발걸음 멈추고 잠시 숨을 고른다.

‘아름다운 남국의 파라다이스 『외도보타니아』’라고 휘황찬란한 색상으로 쓴 부조물이 눈에 성큼 들어온다. 그 앞에서 빙 둘러앉아 한 컷했다.

구불구불한 꽃길 따라 올라간다. 수많은 꽃과 나무들이 향기와 한껏 멋 부리며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당긴다.

산허리에 오른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쉼터가 보이고 아이스크림 가게도 보인다.
빙 둘러서서 코와 입가에 흰 크림 처발라 이마에 흐르는 땀 훔치며 누가 사 주는 것인지 모르고 주는 대로 받아 정신없이 먹는다. 원생들의 인심이 넘쳐흐른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외도. 섬 전체가 해송 나무, 동백나무, 사철나무 등 3,000여 종의 꽃과 나무로 둘러싸여 있는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의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창호 씨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맑고 화창한 날이면 대마도까지 내다볼 수 있어 꽉 막혀있던 가슴이 확 뚫린 것 같다. 정상에도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다. 약간의 휴식을 취하며 사진도 찍고 재밌는 이야기에 흠뻑 빠진다.

양지바른 아늑한 곳에 외도 해상농원 설립자 이 창 호(1934-2003) 씨의 부인 최호숙가 쓴 비가 있다.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그리워하는 우리를 여기에 남겨두시고/ 그리움의 저편으로 가신 당신이지만/ 우리는 당신을 임이라 부르렵니다./ 우리모두가 가야할 길이지만/ 나와 함께 가자는 말씀도 없이 왜 그리 급히 떠나셨습니까/ 임께서는 가파른 외도에 땀을 쏟아 거름이 되게 하시였고/ 애정을 심어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지게 하시었으며/ 거칠은 숨결을 바람에 섞으시어 풀잎에도 꽃잎에도 기도 하셨습니다./ 더 하고픈 말씀은 잡목속에 남겨두시고 주님의 품으로 가시었으니/ 임은 울지 않는데도 우리는 울고 있다./ 임은 아파하지 않는데도 우리는 아파하며/ 임의 뒷자리에 남아 있습니다.

“임이시여 이 창 호 씨여” 임께서 못 다하신 일들은 우리들이 할 것으로 믿으시고/ 주님의 품에 고이 잠드소서/ 이제 모든 걱정을 뒤로 하신 임이시여/ 임은 내 곁에 오실 수 없어도/ 내가 그대 곁으로 가는 일이 남아 있으니/ 나와 함께 쉬게 될 그날까지/ 다시 만날 그날까지/ 주 안에서 편히 쉬세요. /2003년 3월 1일 하늘 나라에 가시다. / 부인 최호숙 드림

보타니아 섬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하고 빡빡한 하루의 일정을 마친다. 저 멀리 대마도가 희끗희끗 보이는 바닷가에서 보는 빨간 저녁노을이 하루가 아쉬웠던지 가든 길을 잠시 멈춘다. 이내 어둠이 찾아든다. 저녁을 맛있게 먹으면서 재밌는 이야기에 밤이 깊어져 가는 줄 모른다.
이튿날 아침 박경리 소설 《토지》의 최참판댁을 찾아갈 준비에 분주하다.

최참판댁은 고택인 줄 알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하동군이‘토지’에 나오는 최참판댁을 근거로 26년 전 1997년에 지은 가상공간이었다. 많은 감명을 받았다.
하나는 ‘문학의 힘’이 그만큼 크고 소중하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하동군이 깊은 안목을 가지고 ‘토지’ 배경을 근거로 최참판댁을 지어 관광지로 만들어 군민의 행복과 지역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하동군의 야심 찬 모습에 놀랐다.

지역마다 고향 작가를 기리는 문학관이 많다. 하동 박경리 문학관, 충북 옥천 정지용 문학관, 경북 청송 객주 문학관, 김천 백수 문학관 등 수 없다.

우리 군위에도 빼놓을 수 없는 이윤기 소설가가 있어도 이윤기 문학관이 없다. 애타는 심정으로 바라본다.

박경리(본명 박금이 1926~2008) 소설가는 경남 통영시 출생으로 1945년 진주 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0년 가정 보육사범학교(현 세종대학교)를 졸업했다.

박경리 필명은 김동리 선생이 지어준 것이라고 한다. 박경리는 남매가 있었는데 8살 된 아들을 잃은 참척의 아픔을 겪었다.

시인 김지하는 그녀의 사위다. 김지하 시인은 전남 목포 출신인데 15살 때 부모가 원주로 이주했다.
시인이 민청사건으로 투옥되어 박경리는 딸과 손자를 돌보기 위해 원주에 터를 잡았다.

이곳에서 1969년부터 1994년까지 25년간 소설 《토지》 4, 5부를 집필하고 탈고했다. 당시 살던 원구동 집이 택지 개발지에 들어가고 1998년 흥업면 매지리의 회촌마을로 이사를 하였다. 보상금과 토지공사의 기부금으로 토지문화관을 세웠다.

그때 살던 단구동 집은 박경리 문학공원이 되었다. 경남 하동과 통영에 박경리기념관이 있는데 이 두 곳은 《토지》를 기반으로 원주에 있는 문학관은 자식으로부터 파생된 것이다.

이 소설은 동학농민혁명에서 광복까지의 한국 근대사를 다룬 작품으로 전체 5부 16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전통적 지주인 최참판댁과 그 마을 소작인들을 중심인물로 하여 최참판댁의 비밀(최치수 살해사건)과 조준구의 계략 등으로 최참판댁의 몰락과 조준구의 재산 탈취 등을 주요한 사건으로 그렸다.

평산과 치수 이야기 중에……. 초당草堂이 보인다. 평산은 초당 층계를 더듬고 발소리 죽여가며 치수방 앞을 향해간다.

그림자도 없이 안성맞춤인 밤이다. 방 앞에서 귀를 기울인다. 고른 숨소리가 들려온다. 곤히 잠든 모양이다. 방문을 당겨본다. 문고리가 걸려있다.

손바닥에 침을 흠씬 뱉어서 장치를 뚫은 손이 문고리를 벗긴다. 방문이 열려지고 닫혀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오랜 시간이 흘렀다. 우우욱 낮은 목소리. 발버둥치는 소리. 낮은 숨이찬 신음 발버둥치는 소리. 꿈틀거리는 소리 소리 소리가 멎었다. 다시 시간이 흘렀다.

헉헉 흐느끼는 것 같고 쥐어짜는 것 같은 숨소리가 들려온다. 한 층 크게 들려온다. 이를 악물면서 새어나는 거칠은 숨소리. 방문이 열리고 허둥지둥 뛰어나오는 모습. 모습이 땅바닥에 나둥그라 졌다. 시꺼먼 무엇이 눈 앞에 서 있었다. 그것이 킬킬거리며 웃었다. 제1부 3편 349P에 역사에 대하여 쓴 문장 중에……. “만세! 우리나라 만세! 아아 독립 만세! 사람들아! 만세다!” 외치고 외치며, 춤을 추고 두 팔을 번쩍번쩍 쳐들며, 눈물을 흘리다가는 소리 내어 웃고, 푸른 하늘에는 실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토지』5부 ‘빛 속으로’

생명에 대하여 쓴 문장 중에……. 살아있다는 것은 아름답다.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인식 이상의 권실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고통까지 껴안으며 살아가는 것이다.『생명의 아픔』중에…….
2부는 만주 용성에서 최서희의 치부와 조준구에 대한 복수 그리고 최서희와 두 아들을 비롯한 평사리 사람들의 귀향을 그렸다.

3부는 만주, 일본 동경, 서울과 진주를 중심으로 김환(구천이)이 옥사한 이야기를 그렸다.
4부는 김길상의 출옥과 탱화의 완성, 기화(봉순이)의 죽음과 오가다 지로와 유인실의 사랑과 갈등을 그렸다.

5부는 제2차 세계대전 때 한국인의 고난과 삶을 형상화한 작품을 그렸다. 소설 《토지》는 일본의 항복을 알리는 라디오 방송을 들은 이양현이 최서희에게 달려와 그 소식을 전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박경리 문학관, 최참판댁 가옥을 둘러보고 하동 읍내로 이동한다.
하동은 재첩이 유명하다는 말 만 믿고 빨리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그럼에도 빌어먹을 버스는 오늘따라 오리걸음으로 달린다. 나답지 않게 기사한테 빨리 가자고 말할 수 없고 해서 끙끙거리며 참는다.

단 몇 분이면 될 걸 한나절 걸리는 것 같다. 겨우겨우 도착한다. 하동에서 이름난 식당이라면 차를 세운다. 식당에 빨리 들어가면 빨리 주는 줄 알고 제일 먼저 뛰다시피 들어간다. 아니나 다를까 회원이 다 들어오고 앉아 기다려야 했다.

속에 열불이 터진다. 드디어 재첩국과 밥이 나온다. 옆 돌아볼 사이도 없이 재빨리 맛있게 먹고 삼성궁으로 갈려고 버스에 올라탄다.

삼성궁으로 가는 길이 하동 십 리 벚꽃길 같아 아름답다. 깊은 산길 따라 올라갈수록 산 위에 펼쳐진 우거진 숲이 장관이다.

원생들의 입에서 와~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청학동을 지나 한참 더 올라간다.
요즘은 어디 가나 주차장 문제가 제일 크다. 여기도 마찬가지다. 주차장이 하나밖에 없어 어떤 때는 궁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다시 내려가는 불상사도 발생한다고 한다. 용케도 무사히 주차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입장료가 만만찮다.

어른 7천 원 청소년 4천 원 어린이 3천 원이다. 삼성궁이 개인 소유라서 그렇단다. 경남에는 개인 소유 땅이 많다. 외도도 그렇고 삼성궁도 그렇다.

삼성궁은 단군왕검을 섬기는 배달겨레의 성전이며, 수도장이다. 대종교를 믿는 한풀선사라는 분이 1983년부터 10만㎡ 산을 매입해서 해발 850m에 삼한시대 소도蘇塗(무속신앙 성역)를 복원해 마고성과 삼성궁을 만들었다.

탐방객이 궁 입구에 있는 징을 세 번 치면 안에서 수행자가 나와 맞이한다. 탐방객 가운데 한 사람은 고구려식 도복을 갈아입어야 안내를 받을 수 있다.

1년에 한 번 가을 단풍철이 되면 일반인들에게 개방해 개천대제開天大祭하는 행사를 여는데 이때 한풀선사와 수행자들이 닦은 무예를 구경할 수 있다고 한다. 하동 삼성궁 주변에는 이름난 청학동, 하동호, 청암 계곡 등 관광명소가 많아 탐방객들이 줄을 잇는다고 한다.

관광 자원이 풍부한 하동이 부럽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다.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일연스님의 삼국유사, 김수환 추기경, 삼국유사 테마파크, 장편소설가 이윤기 등 남부럽지 않은 소중한 보물이 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없다. 그러면서도 빛을 보지 못하고 그늘에 가려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우리가 풀어야 할 막중한 과제가 아닐까.


대구가축병원 권춘수 원장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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