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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어이 없는 죽음

admin 기자 입력 2023.07.04 10:28 수정 2023.07.04 10:28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초점 잃은 눈으로 세월을 센다.
오늘은 어떤 소식이 들릴까 두렵고 떨린다. 자고 나면 어제까지 멀쩡하던 사람들이 하나씩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궁금해하지도 않고 단숨에 병원에 갔을 것이다라고 한다. 한두 달 보이지 않으면 “죽을 줄 모르고 일만 하더니 이제 겨우 먹고살 만하니 죽었구나.” 아쉬운 듯 미운 듯 혀를 찬다.

고향에는 선후 배가 뚜렷하고 동기 동창생이 많다. 마음 맞는 친구끼리 모임을 만들어 자기들만의 재밌는 시간을 보낸다.

오일마다 찾아오는 장날이면 약속도 없이 몇몇 동기끼리 모여 점심 먹고 즐기다 헤어지고 하는 이름 모를 모임이 있다.

나는 자격이 없지만 동창으로 모임 앞을 지날 때면 커피 한 잔 나누고 한다. 선후 배 사이라도 산수가 넘어 죽음을 바라보는 마당에 두루뭉술 넘어간다.

그중에 몸집이 약간 크고 말수가 적은 친구가 있다. 직업상 그 집에 소를 예방 치료하려고 드나들면서 자연스레 친숙하게 되었다.

말수는 적어도 믿음직스럽고 남자다운 멋이 풍겨 친구들한테 인기가 대단하다. 점심을 먹고 나면 으레껏 다방에 전화를 걸어 커피를 시킨다. 마치 습관화된 것처럼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연스레 돌아가며 한다.

커피를 시킬 때는 웃지 못할 광경이 벌어진다. 난 홍 다방이 좋아! 거기보다 길동이 다방이 더 좋아 촌극을 빚는다.

그러면서 커피를 시킬 때는 반드시 자기가 마음에 두는 다방에 전화한다. 커피를 마시면서 개그맨 못지않게 오만가지 이야기 다 쏟아 낸다. 볼거리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썰렁한 농촌에 시끌벅적 한바탕 떠드는 이 시간은 유일한 낙? 이보다 더 행복한 거 없다. 세상 돌아가는 풍경을 그린다.

인기 있고 멋있는 친구가 요 며칠째 보이지 않는다. 친구한테 물어봐도 신통한 대답이 없다. 바빠서 못 나오는가 보다 한다.

일할 철도 아닌데 무엇이 그렇게 바빠 나오지 못할까? 지나가는 소리로 예사로 들었다.
늘 웃음 지으며 재밌게 지내던 친구들이 오늘따라 얼굴에 밝은 기가 없고 수심이 가득해 보인다. 갑작스러운 침통한 분위기에 어리둥절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나 왜 모두 울상을 짓고 있나?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나는 평시와 같이 싱겁을 떤다. 한 친구가 시무룩한 얼굴로 어젯밤에 말수 적은 친구가 죽었다고 한다.

세상에 이런 일도…. 갑작스러운 죽음에 할 말 잃었다. 어떻게 죽었느냐고 조심스레 물어본다. 친구가 밤중에 화장실에 간다고 밖에 나갔는데 한참 되어도 들어오지 않아 부인이 더듬거리며 밖으로 나가 보았다.

마당 한가운데 영감이 엎드려 죽어 있다. 농촌에는 너네 없이 자식들 모두 도시로 나가고 노인들만 살고 있다.

아무도 없는 밤중에 부인은 기겁하고 어찌할 줄 몰라 발만 둥둥 굴렸다고 한다.
밤중 요란한 소리에 잠이 깬 동네 사람들이 모여든다. 부인은 죽은 남편을 붙들고 죽을 고생 다 하고 이제 살려고 하니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 어이없는 죽음에 통곡했다고 한다.

눈만 뜨면 만나든 친구가 횅하니 우리 곁을 떠났다. 그가 떠난 자리에는 웃음과 슬픔, 훈훈한 미담 등 자질구레한 이야깃거리가 수북이 쌓여있다.

무뚝뚝하기로 이름난 친구는 마음이 여려 불쌍한 사람 보고 그냥 지나지 못한다. 국수한 그릇 먹을 때도 힘들어하며 장사하는 그 집을 찾는다.

친구들이 커피 시켜 놓고 짓궂은 농담에 빙긋 웃는 모습, 눈보라 휘몰아치는 겨울 오토바이 뒤에 마누라를 태워 시장 보고 집으로 가는 자상한 모습은 어디에 비할 때 없다. 살 적에는 사느라 아무 생각 없이 산다. 죽고 나면 모든 것이 아쉽고 안타깝다.

친구들은 허전함을 달래며 친구 마지막 가는 길을 보려고 모인다. 점심 먹으려 승용차 타고 목적 없이 달리다 마음 내키는 데로 식당에 들렀던 이야기를 꺼내면서 죽은 친구를 생각한다.

까만 넥타이에 까만 정장 차림을 하고 문상한다. 향을 피우고 술잔 올리고 노자 주며 잘 가라고 인사까지 했는데도 말 한마디 없다. 무뚝뚝하다고 이름났지만, 어찌 이렇게도 무뚝뚝할까.

기쁨 슬픔 괴로움 등 모든 것을 한 자리에 묻어 두고 말없이 떠난다. 이렇게 살다 죽을 걸 뭐 하려고 죽을 줄 모르고 일했던 건가. 지난날 찌든 가난에 시달리며 살았던 기억을 지울 수 없어서 일 게다.

아직 죽을 날 아득한데 하고픈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떠나가는 친구의 어이없는 죽음에 황당하고 비통함 가눌 길 없다. 천국에 가서 편히 쉬게 두 손 모아 빈다.

대구가축병원 권춘수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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