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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한잔 술에 담긴 낭만과 풍류

admin 기자 입력 2023.08.18 11:18 수정 2023.08.18 11:18

↑↑ 황성창 시인
ⓒ N군위신문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가까운 친구처럼 여기는 것 중 하나가 술이다.
좋은 일이 생겨도 찾고, 나쁜 일이 생겨도 친구처럼 찾는다.

반가운 친구를 만나면 술잔을 기울이고, 술자리를 통해 그저 아는 정도의 사람을 십년지기(十年知己)나 된 듯이 파안대소하며 술을 마신다.

이처럼 열이면 열이 다 저마다 까닭이 있고 사연이 있어 마시는 게 술이다. 그렇지만 술은 구태여 다른 사람과 함께 마실 필요가 있을까 싶다.

밝은 달을 벗하며 혼자 마셔도 좋고, 내 그림자 마주 보며 브라보 외쳐도 술맛은 좋을 성싶다. 시성(詩聖) 이백은 “석 잔을 마시면 도에 통달하고, 한 말을 마시면 자연과 하나가 된다.”라고 말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이백처럼 술을 사랑하고 예찬하지 않은 시인 묵객이 어디 있겠나.
그러나 술을 꽤 마신다는 사람 중에 새해 들면 한 번이라도 금주를 다짐해 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다짐하지 않았더라도 가족으로부터 그러한 압박을 받아보지 않은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음주 운전으로 패가망신한 사람, 내 목숨뿐 아니라 남의 귀한 목숨까지 앗아간 몹쓸 사람, 평생 쌓아 왔던 부와 명예를 하루아침에 날려 버린 사람 등 열거한 사람들을 굳이 애써 찾아볼 것도 없다.

주위를 조금만 돌아보거나 TV 뉴스를 보면 흔히 등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도 20여 년 전 음주 운전으로 면허는 취소되고 벌금까지 내야 하는 망신에다 체통이 엉망진창으로 망가져서야 제정신이 들어 유주무량(有酒無量)이던 술도 절제하기에 이르렀다.

태종실록에 ‘적중이지(適中而止)’라는 말이 나온다. 태종 임금이 셋째 아들 충녕대군을 후계자로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술을 마실 줄 안다’는 것이었다. “중국 사신을 맞을 때 주인으로서 한 잔도 마시지 못하면 어떻게 손님에게 술을 권해 즐거운 자리를 만들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양녕대군은 지나치게 마시고, 효령대군은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다고 한다. 충녕대군은 적절히 마시고 중간에 그칠 줄 알았다.

바로 ‘적중이지’가 눈에 띄어 세자로 책봉된 것이다. 술을 좋아해 주량이 끝이 없다는 공자는 제자 자공에게 말하기를 “백날을 수고하고 하루를 즐기는 것이다. 긴장만 하고 풀어지지 않는 것은 성군(聖君)인 문왕도 무왕도 할 수 없었고, 풀어지기만 하고 긴장하지 않는 것은 문왕도 무왕도 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술을 마시되 절제할 줄 아는 단호함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추사 김정희의 인생삼락(三樂), 즉 추사의 삶에 세 가지 낙을 말한다.
첫째가 책 읽고 글을 쓰며 늘 배우는 즐거움이며, 둘째 낙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변함없는 애정이고, 셋째가 벗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풍류를 낙으로 삼았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은 91세로 타계할 때까지 위스키를 하루에 한 병씩 마시면서 2차대전의 회고록을 쓰고 1953년에는 노벨문학상도 받았으며, 늘 시가를 씹으며 그림을 그렸던 노 정치가의 풍류가 왜 그리 멋있어 보였는지 무척 부러워했다.

처칠은 애주가답게 “나는 알코올이 나에게 가져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코올로부터 받았다”라고 말했다. 프랑스의 샤를 보들레르는 “술이든, 시든, 덕이든, 그 어느 것이든 그대 마음대로 취하라”는 술을 찬미하는 시를 남겼다. 보들레르와 더불어 20세기 초 위대한 시인으로 평가받은 예이츠의 시 “술은 입으로 들어오고 사랑은 눈으로 들어오네”라는 절창은 도취(陶醉)에 관한 한 애주가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술 노래’의 일부다.

금세기에 들어 한국인의 삶이 풍족해져서 그런지 술을 많이 마시고 권하는 사회가 됐다.
자칭 호탕하다는 남자들은 술 단지를 곁에 끼고 살다시피 한다. 심지어 술 못하는 남자를 사내 대접도 하지 않으려 든다. 좌중에 취기가 들면 술 못하는 사람의 존재마저 깡그리 뭉개고 주당끼리 주거니 받거니 희희낙락이다.

흔히 한국은 음주에 관대한 나라라고들 한다. 밤늦도록 영업하는 술집, 24시 편의점은 술을 마시고 싶으면 언제든 마시고 취할 수 있는 곳이다. 술만 마셨다 하면 누구 할 것 없이 기고만장하여 영웅호걸이 되고 위인현사(偉人賢士)도 안중에 없어진다.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는 “술을 마시고 생각해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직 떠들고 지껄이는 것밖에는” 얼씨구 술 많이 먹어도 좋다! 라는 추임새 같다.

지난 10여 년에 한국 사회는 치열하게 남녀평등에 관한 논쟁을 치러왔다.
가장 첨예했던 전선이 성차별 철폐 운동일 성싶다. 모든 분야에서 견고했던 남성 지배체제가 급격하게 무너졌다.

이젠 여성도 술자리의 당당한 주빈으로 등장한다. 남성들 음주 문화에 여성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남녀가 함께한 술자리에서 과거에는 관용으로 눈감아줬던 취중 일탈도 엄정한 심판대에 올랐다. 몇 년 전부터 일어난 미투(MeToo) 운동은 성폭행이나 성희롱을 여론의 힘을 결집하여 사회적으로 고발한 획기적 사건이다.

2018년 1월에 현직 여검사가 TV에 나와서 검사장이었던 상사로부터 당한 성폭력 실상을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미투 운동이 세상에 알려졌다. 연극계뿐 아니라 내가 활동하고 있는 문단에서도 원로 ‘고’모 시인과 ‘최’모 중견 여류시인 간의 법정 다툼은 큰 화제였다.

한국 남성 중심 사회를 뒤흔든 미투 운동은 누구에게도 여차했다간 성희롱 범죄에 휘말릴 수 있다. 상대의 매력을 칭찬하려는 순수한 의도로 건넨 말이라 할지라도 상대가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면 성희롱 행위로 간주한다.

수천 년 동안 남성들의 뇌리에 축적된 일방적 오류의 편견이 이젠 시대에 맞는 언행으로 표출되어야 오해나 뒤탈이 없을 성싶다.

옛날에는 술자리에서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어도 ‘오죽하면 술 먹은 개라니!’하고 용서해주길 서로 권했다. 술 먹고 범한 죄라 할지라도 관습법에 따라 정상참작을 해 줬으나 이젠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

그러니만큼 술 핑계 대고 허튼수작 부리다간 살아남기가 난망할 것 같다.
조선 후기 남파(南坡) 김천택(金天澤)의 시조 “부생(浮生)이 꿈이 어늘 공명(功名)이 아랑곳가, 현우귀천(賢愚貴賤)도 죽은 후면 다 한가지, 아마도 살아 한잔 술이 즐거운가 하노라.”라는 독주가(獨酒歌)를 들으면 시선(詩仙)이 내게 한잔 술을 권하는 운율로 느껴진다.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것도 좋지 않지만, 술을 전연 입에 대지 못하는 것 또한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적당히 마시고 적당히 즐기는 인생, 얼마나 멋있겠나.

그런데 나는 정작 50년은 쉬이 술을 마셔도 독주가 한 소절을 짓지 못했으니 풍류를 모르는 까닭인가. 아니면 아직 술맛을 몰라 그런 걸까. 언젠가는 나도 술을 즐기는 풍류객 틈에 끼어들 허황한 꿈이라도 한번 꾸어볼까나?


황성창 시인
재부군위군향우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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