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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전 대통령기념관건립 모금 운동에 동참하면서

admin 기자 입력 2023.11.02 23:42 수정 2023.11.02 11:42

↑↑ 황성창 시인
ⓒ N군위신문
이승만 전 대통령은 1875년(고종 12년)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났고, 1965년 7월 19일 향년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수립될 때까지 이 땅엔 태조 이성계와 그 후손 일족인 26명의 왕이 518년 동안 조선을 통치하는 왕족만 존재했다.

이 대통령은 대한제국 시절 왕정을 폐지하고 백성이 주인인 민주공화국 수립을 도모했다는 어이없는 반역죄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비록 감형은 됐지만, 5년 7개월간 한성감옥에 갇혀 있었다. 대한제국 말기 특사로 풀려난 뒤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 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위대한 엘리트 정치가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이자 마지막 주석을 역임하는 등 일생을 독립운동에 바치고 제헌국회 의장으로 헌법 제정을 이끌었다. 대한민국 제1, 2, 3대 대통령으로 재임하면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의 국가 정체성을 확립했다.

1949년에는 농지개혁법을 제정하고 ‘유상매수, 유상분배’를 골간으로 하는 농지개혁을 단행하고, 지금의 의무교육제도의 틀도 잡았다.

공산주의자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 등 셋 원흉들이 작당한 6·25 남침에서 나라를 지키고, 1953년에는 한미동맹을 맺어 대한민국 수호와 번영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아시아 변방의 최빈국에서 세계 경제 10위권의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 전 대통령에겐 역사에 깊이 새길 공도 많지만, 반면에 과도 있다. 1960년 제4대 대통령 선거는 조병옥 후보의 급사로 어부지리로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제5대 부통령 후보로 나온 이기붕 후보 측에서 3·15 부정선거를 저질렀다. 마산에서 시작된 부정선거 규탄 시위는 부산, 대구를 거쳐 서울로 불꽃처럼 번졌다.

시위 기간에 데모로 인한 학생들의 사상자도 많이 발생했다. 이 소식을 들은 이승만 대통령은 4월 26일 부상자들이 입원해 있는 병원을 찾아가 다친 학생들을 보며 “부정을 보고 일어서지 않는 백성은 죽은 백성이지, 이 학생들은 참으로 장하다”라고 말했다.

부상 학생들을 격려한 이승만 대통령의 어투를 보아 데모 사태의 원인과 핵심을 각료들로부터 정확하게 보고 받지 못한 것 같다.

그날 이승만 대통령의 즉각 하야를 주장하는 시민 대표에게 이 대통령은 “국민이 원한다면 하야하겠다”라고 머뭇거림 없이 명료하게 답했다. 4월 26일 오후 라디오를 통해 하야하겠다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4·19 혁명에 의해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이 대통령과 프란체스카 여사는 1960년 5월 29일 하와이 망명길을 떠났다. 요즘 좀생이 같은 정치인들에 비하면 구차스러운 변명 없이 얼마나 담대한 정치적 결단인가.

그로부터 5년의 망명 생활 끝에 1965년 7월 19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90세를 일기로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쳤다. 남긴 유언은 “잃었던 나라의 독립을 다시 찾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었든지 우리 국민은 알아야 하며 불행했던 과거사를 거울삼아 다시는 어떤 종류의 것이든 노예의 멍에를 메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우리 민족에게 주는 마지막 유언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 대통령이 서거한 지 올해 58주년이다.
선진국들은 건국 대통령을 기념하는 기념관을 설치하여 국가 정체성을 재확인하고 건국이념을 보존 계승한다.

그러나 우리는 대한민국 건국 75년이 넘도록 초대 대통령 기념관 하나 세우지 못하고 있다. 얼마나 큰 죄를 지었기에 기념관 하나 없을까 하는 자괴감마저 든다.

어느 지도자에게나 공과가 있고, 진영 따라 평가는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건국 대통령 기념관 하나 번득하게 짓지 못한 건 불행한 일이다.

만시지탄의 감이 없지 않으나 지난 6월 ‘이승만 대통령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가 발족, 민관이 힘을 합쳐 대통령 기념관을 짓는다고 발표했다.

이제라도 하겠다니 천만다행이다. 추진위 측은 “이 대통령 기념관은 국가 정체성과 건국이념은 무엇이며, 우리가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고 오늘과 같이 자유롭고 번영된 자유민주국가로 키워왔는지를 기록으로 알리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했다.

덧붙여 기념관건립비 재원은 전체 건립비의 70%를 국민 모금으로 하고 나머지 30%는 정부 지원금으로 충당한다고 밝혔다.

추진위 측은 범국민 모금을 개시한 지 3주 만에 1만9000여 명이 35여억 원 가까운 돈을 모았다고 한다. 평범한 시민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이승만 대통령기념관건립에 성금을 보태고 있다.

나도 지난 9월 부산 문학인협회 시화전에 출품한 작품이 당선되어 작품상을 받았다.
그때 부상으로 받은 상금을 대통령기념관건립에 밀알이 되고자 기부하고 나니 마음이 그리 좋을 수가 없다.

박정희·노태우·김영삼·김대중 등 전직 대통령 아들들도 기부에 동참한다니 기념관건립기금 모금 과정 자체가 역사적 화해와 국민 통합의 계기가 됐었으면 좋겠다.

신영균 원로 배우는 이승만 전 대통령기념관건립에 한강 변 사유지 4000평의 땅을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배우 이영애도 5000만 원을 기부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30년 이상 장기체류했던 제2의 고향, 하와이 한인회에서도 3만 달러를 기부하고 추가로 5만 달러를 더 낼 것이라 했다. 육사 총동창회도 1억여 원을 기부했고, 공군·해군사관학교 총동창회, 해병대동창회 등 다른 군 단체도 기부에 참여한다고 한다.

최근 4·19 혁명의 주역들도 “이승만 대통령의 공과를 다시 봐야 한다”며 일부 인사는 ‘기념관건립추진위’에도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이승만 대통령의 위대한 공적을 기릴 대통령기념관건립 모금 운동에 국민의 호응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그간 이승만 대통령기념관건립은 민주당을 포함한 좌파 단체들의 반대로 번번이 좌절됐다. 윤석열 정부가 기념관건립을 다시 추진하자 민주당은 ‘독재 정치의 부활, 헌법 정신 훼손’이라며 즉각 중단하라고 한다.

그간 야당은 선거철만 다가오면 이승만 대통령 묘를 참배하며 업적을 평가하는 듯한 이중적 모습을 보이곤 했다.

이재명 대표는 성남시장 때는 이 전 대통령을 “쓰레기”라며 참배를 거부하다가 대통령 후보가 되자 묘소를 참배했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언행을 우리 국민은 어떻게 보고 느낄까?

이승만 대통령은 평생 독립운동에 헌신했고 대한민국을 건국했다. 이 대통령은 건국한 공만으로도 추앙받아 마땅하다. 대한민국 현대사는 국민의 피와 땀과 함께 이승만 대통령의 빛나는 업적 없이는 이야기할 수 없다.

이승만 대통령기념관건립이 기일 내 완공될 수 있도록 많은 국민이 십시일반으로 모금 운동에 동참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기대를 걸어본다.

황성창 시인
재부 군위군향우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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