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more
인물 독자마당

버킷 리스트

admin 기자 입력 2024.01.04 22:42 수정 2024.01.04 10:42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꿈과 희망이 많았던 시절에는 무엇을 했던지 이제 와 허둥대며 못다 한 일들을 이루어 보겠다고 리스트를 작성해 보지만, 잘 안될 것이란 걸 알면서도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계획을 세워본다.

모름지기 사람은 각자의 타고난 재능과 소질을 가지고 있다.
그림 잘 그리는 사람, 노래 잘 부르는 사람, 운동 잘하는 사람 등 자기의 취미와 소질을 가지고 삶을 살아간다.

남들이 잘하는 걸 보면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은 사람이 지니고 있는 인간의 본능이다. 산수(傘壽)가 지났음에도 젊은이들이 기타를 둘러매고 산에 올라 멋있게 치는 것을 보며 마음이 우쭐해 따라 하고 싶다.

할 일 없이 우두커니 앉아 세월을 낚는 것보다 달빛 아래 기타를 퉁퉁 치면서 생을 보내는 것이 훨씬 더 멋있어 보인다. 마음뿐이다. 지나간 세월에 위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용기를 내어 기타 가르치는 곳을 찾아 헤맸다.

“시작이 반이다.” 2년이 훌쩍 지났다. 처음엔 한 곡만 칠 줄 알면 된다고 시작했는데 한두 곡 더 칠 수 있게 되었다. 절로 욕심이 생긴다. 좀 더 잘 쳐서 테이프에 저장해 두었다가 내가 먼 길을 떠날 때 장례식장에서 틀어 달라고 자식들에게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방 한가운데 거치대를 세워놓고 시간 나는 대로 기타를 잡는다.

생각보다 잘 치지는 못해도 하는 만큼 솜씨가 느는 것 같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오늘은 ‘섬마을 선생님’을 쳐 본다. 살아생전 내 모습을 기타 6줄에 실어 놓고 떠나가고 싶은 심정으로 기타에 매달려 시간을 보낸다.

욕심은 욕심을 낳는다고 한다. 이 세상 떠나기 전에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붙들고 있는 것이 죄라면 죄일 수도 있다. 빈손으로 왔기에 빈손으로 가야 한다.

그럼에도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아등바등 버티고 있는 것을 보면 안타깝고 불쌍하게 보인다.
그러하지만 모르는 것을 배우고 싶어 하는 욕심은 욕심이 아닐 거다. 하며 고집스럽게 이유를 갖다 대며 버리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노인 복지가 잘 되어있다. 문화원에는 전통 성악곡의 한 갈래로 시조시를 노랫말로 사용하여 부르는 시조창(時調唱) 동아리 반이 있다.

옥색 도포에 정자관을 반듯하게 쓰고 양반다리로 앉아 시조창 부르는 선비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고요한 달 밝은 밤에 창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오는 달빛 님을 반가이 모셔 놓고 멋있게 아름다운 시조창 한 곡조 뽑는 모습을 그려 본다.

시조창 선생님의 말씀에, 누구나 나이가 들면 호흡곤란으로 애를 먹는데 폐활량을 높이는 데는 시조창보다 더 좋은 거 없다고 한다.

폐렴을 한 번 앓았던 나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없다.
거기다 노래할 줄도 몰라 늘 신경을 써온 나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시조창을 배워보고 싶은 생각에 2023년 계묘년 9월 시조창 반에 들어갔다.

남들이 하지 않은 것을 배우고 있다는 것에 마음이 뿌듯하고 의젓했다. 옹졸한 생각에 으스대고 싶기도 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접어든다. 선생님께서 경산, 영천 등지에서 전국 시조창대회가 있다고 한다. 걷지도 못하면서 날고 싶다.

배운 지 5개월이 지날 무렵 처녀 출전해 보았다. 단체전과 개인전에 각각 장려상을 받았다. 생각지도 못할 상을 받고 의아해했다.

모르는 것이 용감하다고 했다. 용감해서 출전한 건 아니다.
우리 반 회원 모두가 하고자 하는 정열에 비지땀 흘리며 열심히 강의를 듣고 따라 했기 때문에 전국을 제패할 수 있는 실력이 되어 출전한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다가오는 2024년 갑진년에는 전주대사습 시조창 경창대회에 출전하기로 결의하였다. 느지막이 이보다 더 기쁘고 값진 계획은 앞으로도 없고 뒤로도 없을 것이다.

예전에, 사람을 가리는데 신언서판(身言書判) 네 가지가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 나 역시 남들이 인정하는 만큼 삶을 살고 있다고 평하고 싶다.

그럼에도 문장과 필치(筆致)가 마음에 들지 않아 언뜻 남 앞에 내놓기가 망설여진다.
글은 붓 가는 대로 쓰면 된다고 하지만 써놓고 보면 늘 찝찝한 데 있어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언제쯤 마음에 드는 글을 써 볼 수 있을까? 리스트 첫머리에 써놓고 깊은 고민에 빠진다.
시는 시인의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낌을 운율에 있는 말로 압축해서 표현한 글이라고 한다.

시에서 느껴지는 말의 가락과 시를 읽을 때 떠오르는 감각적인 느낌으로 이루어진 시에 관심이 끌려 시화전에 들려 본 적이 있다.

간단명료하고 풍부한 내용이 들어있는 함축된 글을 보고 시 쓰기를 배우고 싶어 시 쓰기 반에 들어갔다.

새로운 문학 세계를 접할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야릇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한 줄 두 줄 써 내려갈 때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뭉클해진다.

인간의 욕심은 한도 끝도 없는 것 같다. 가을은 문화 예술 서예 등 각종 전시회가 쏟아진다.
대한민국 서예대전 전시장에 들려보았다. 기다랗게 늘어진 하얀 화선지 위에 까만 보석을 새겨놓은 작품들이 전시장 안을 꽉 메웠다. 화선지에서 나오는 은은한 묵향에 숨이 멈춰진다. 나도 저렇게 잘 써봤으면 하는 생각이 샘 솟 듯한다.

예전에는 붓글씨를 대충 보고 지났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글씨 속을 들여다본다. 그 속에는 영혼이 살아 숨 쉬고 있는 매력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묵향 천 리 라는 말이 헛말이 아닌 거 같았다. 붓글씨의 매력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한다.

붓글씨 공부방에 다녀온다. 이 모든 것이 내 인생의 마지막 꿈이요 희망이며 소망이다. 마음속으로 꼭 이루어지기를 빌며 버킷 리스트(bucket list)에 올려놓아 본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저작권자 N군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