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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설날

admin 기자 입력 2024.01.16 10:54 수정 2024.01.16 10:54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윤극영 동요 작가
“까치 까치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설날은 새로운 날. 까치설은 설날 바로 전날 설로서 작은 설이라고도 일컫는다. 삼국유사에 전해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신라 소지왕은 왕비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소지왕이 잠자고 있을 때 왕비와 스님 국사가 소지왕을 시해하려 찰나, 소, 돼지, 원숭이, 까치가 왕을 깨워 죽음을 면하게 했다.

소지왕은 고마움의 표시로 소, 돼지, 원숭이를 12간지(干支)에 들어갈 자격을 주었다고 한다.
12간지에 들어가지 못한 까치를 위해서 소지왕이 사람들이 쇠는 설날 전날을 까치설이라고 부르며 까치를 위로하였다는 설화가 있다고 민속 역사학자들이 말한다.

설날이 다가오면 우리 집은 부엌에서 엿 고는 냄새가 진동한다. 어머니는 소매를 둥둥 걷고 긴 주걱으로 엿기름을 쉴 사이 없어 휘휘 젓는다. 엿기름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면서 서서히 굳어져 간다.

입에서 군침이 주르르 흐른다. 새 다리 같은 손가락으로 쿡 찍어 먹어본다. 꿀맛 같다. 또 찍어 먹는다. 이솝의 꿀단지에 빠진 파리가 되었다.

설 쇠려 고향으로 가는 열차표가 매진되었다고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난다. 삶이 힘들어도 고향을 그리워하는 자식들의 마음은 한결같다. 아버지는 먼 데 간 자식이 올까 봐 긴 담뱃대를 물고 삽작문을 내다보신다. 어릴 적 설날 풍경을 떠올린다. 파란 명주 옷고름에 조끼 걸쳐 입고 버선에 댓 닢 메고 엄마 손 잡고 큰집에 가는 길은 신났다.

큰아버지께 세배하고 나면 세뱃돈 한 잎 주셨다. 매운 고춧가루에 생강, 밤 등을 넣어 만든 식혜를 먹고 입술이 퉁퉁 붓고 눈물이 쑥 빠졌던 기억들이 생생하다.

우리 집은 새해 첫날이면 부모님께 세배드리려고 주안상을 차렸다. 큰방에 아버지 어머니 두 분을 모시고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 대청마루에서 세배드렸다.

그러고 나서 아버지 어머니께 약주 한 잔씩 올린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빙 둘러서서 세배하곤 덕담을 나누고 했다. 설 명절 차례는 큰집 작은 집 순으로 시작한다. 우리 집은 점심때가 되어서야 차례를 지내고 했다.

초등 4, 5학년 때부터 난 설 이튿날이면 동네 어른들을 찾아뵙고 인사하러 다녔다. 아버지는 갈고리 같은 손가락으로 한 집 두 집 꼽으면서 철수네 집, 영수네 집 할아버지께 인사드리고 오라 하셨다. 집을 나설 때면 아버지는 내가 옷을 잘 못 입었을 갈까 봐 챙겨 주셨다.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선다. 처음에는 멋쩍고 서먹서먹했다. 차츰차츰 서먹서먹한 것도 없어지고 마음이 편안했다. 또래들이 어디 가느냐고 물으면 영수 할아버지한테 세배하러 간다며 으스대기도 했다.

세배하고 나면 영수 할아버지가 세뱃돈을 주셨다. 그다음 해 또 주신다. 세뱃돈 받으러 가는 거 같아, 가기가 싫어졌다.

그 후부터 영수 할아버지 집에 세배하러 가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영수 할아버지를 만났다. 허리 굽혀 인사를 드렸다. 할아버지가 “올해는 왜 인사하러 오지 않았느냐?” “내가 싫더냐?” 온유한 미소 지으시며 말씀하신다. “아닙니다. 세뱃돈 주시는 것이 마음에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랬구나! “내년에는 다녀가거라.” 하시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그럼에도 설날이 다가오면 세뱃돈을 주시던 영수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할아버지는 마음씨도 좋으시고 인자스러워 보였다. 길거리에서 만나도 나를 반겨 주셨다.

우리 할아버지는 어떻게 생겼을까? 영수 할아버지처럼 마음씨도 착하시고 좋으셨을까?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내가 나기 전에 돌아가셨다고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보고 싶고 그리웠다.

집에서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연세 많으신 처조모님이 계셨다. 자동차로 달리면 금방 갈 것 같아도 구불구불한 길에 시간이 걸린다. 조모님은 연세가 많으셔도 성품이 서글서글하시고 이야기도 잘해 주셔서 마음이 편안했다. 우리 집 할머니처럼 모시고 싶었다. 설 명절이면 세배하고 세뱃돈을 드리고 했다.

봉투를 받아 들고 기뻐하시는 조모님의 얼굴은 어린 아기처럼 청순함이 이를 데 없었다. 한 번은 봉투를 받아 들고서 봉투가 제법 두툼하구나! 농도 하시며 한바탕 웃음을 자아내시기도 하셨다.

조모님의 농 섞인 말씀에 정감이 넘쳐 흘렸다. 나도 모르게 할머니 포근한 사랑에 얼굴이 붉어졌다.

새해 며느리의 인사는 반가우면서도 은근히 부담스럽다. 정해져 있지 않은 세뱃돈 때문이다. 많아도 적어도 아무 말 없이 빙긋 웃으며 받는다. 웃음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다. 아무 생각 없이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하면 된다지만, 쉬운 거 아니다.

내 마음에 섭섭해하지 않을 정도로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 아니든가? 늘 부족한 것 같아 켕기고 편하지 않았다.

애들 앞에서는 찬물도 못 마신다. 식구들 앞에 똥구멍을 하늘로 치켜들고 머리를 방바닥에 처박으며 재롱부리던 녀석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손을 내민다.

세뱃돈을 내놓으라는 거다. 어린것이 뭘 안다고, 돈은 알아서 가지고, 기가 찰 노릇이다. 동전 한 잎만 줘도 입꼬리가 하늘로 치켜 올라갔던 그때의 기억이 새롭다. 웃고 웃으며 주고받던 세뱃돈이 지난 우울했던 한 해를 깨끗이 날려 보내고 희망찬 새 아침 설날을 맞아 평안과 만복이 깃들기를 소망한다.

대구가축병원 권춘수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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