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more
인물 독자마당

떠나보내는 마음

admin 기자 입력 2024.02.19 19:56 수정 2024.02.19 07:56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정(情)이란 무서운 마력(魔力)과 같다. 입춘이 지났어도 날씨는 여전히 매섭고 쌀쌀하다. 휴대폰에서 드르렁드르렁 소리가 쉴 사이 없이 울린다.

무심코 폰을 열어보니 평생소원이었던 기타를 가르쳐 주신 강사님의 글이 내 눈을 의심케 한다.

선생님! 제가 올해부터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수업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뜬금없는 소식에 의아해하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선뜻 말이 나오지 않는다. 개인적인 사정이라 자세히 물어볼 수 없고 냉가슴 앓듯 애꿎은 글자만 뚫어지게 쳐다본다.

티브이에서 미스 트로트 보면서 어떻게 하면 저렇게 노래를 잘 부르는지 신기해 보였다.
한 창 거들먹거리며 놀 때였다. 여행 중에 노래 부를 줄 몰라 벌금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후 기회가 나면 노래를 배울 것이다.라는 생각을 한 번도 잊어본 적 없다. 어느 날 길거리에서 흥겹게 노래 부르고 기타 치는 버스킹 하는 사람들 보고 더욱 배우고 싶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등에 업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기타를 배워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다고 어디에서 누구한테 배워 보겠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막무가내 오직 배우겠다는 불타는 집념 하나만 가지고 일 년 넘도록 속앓이하며 지냈다.

도시에 가면 모든 것이 해결할 수 있겠지만 형평상 어려워 될 수 있으면 가까운 곳에 가르쳐 주는 곳이 있으면 좋을 것 같은 생각으로 이곳저곳 찾아다녔다.

여느 날 친구들과 같이 세상사 이야기에 빠져 정신이 없는데 한 친구가 기타 이야기를 꺼낸다.

귀를 쫑긋해 들어 본다. 삼국유사 군위 도서관에서 기타를 가르쳐 주는 강좌가 있다고 한다.
혹시 내가 잘 못 들은 거 아닐까? 귀를 의심하며 다시 물어보았다. 맞다고 한다.

말이 끝나기 전 한걸음에 달려갔다. 우여곡절 끝에 등록하고 개강 날짜에 강의실에 들어간다.
강의실에는 몇 해 전부터 기타 수업을 받아온 것처럼 보이는 십여 명 넘은 수강생들이 수업을 준비하고 있다.

모두가 낯설어 서먹서먹하다.
늙어 빠진 노인 떡 다리 같은 나를 보고 모두 놀란 표정으로 쳐다본다. 거기다 기타도 책도 아무것도 없이 맨손으로 들어갔으니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빈자리 하나가 덩그러니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두리번거리며 의자에 엉덩이를 슬그머니 밀어붙인다.

기타를 잘 쳐 보이는 사람 옆에 앉아 기타 치는 걸 보고 오만 가지 잡념이 떠오른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잘 칠 수 있을까, 시작했지만, 끝까지 해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순간 나를 엄습한다.

음악이란 역시나 아름답고 향기로웠다. 쉬는 시간에 수강생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눈다.
모두가 친절하고 반가이 맞아 주어 서먹서먹했던 순간들이 한꺼번에 날려 버렸다.

기타와 교재 등을 갖추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났다고 끝난 게 아니었다.
음악에 대한 기초 지식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겁 없이 달려든 것이 가관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혀 다른 사람에 웃음거리가 될 것 같아 가슴이 답답했다.

다행히 한 달 두 달 지나는 동안 낯선 음표도 박자도 눈에 들어오고 수강생들의 얼굴도 차츰 익히고 긴장했던 마음도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강사님이 한 학기 마치면 발표회가 있다며 준비하라고 한다. 가슴이 털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생전 처음으로 발표회를 한다니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서투른 기타 솜씨로 여러 사람 앞에서 친다는 것이 곤욕스럽고 힘들었다. 칠 수 있는 곡은 클레멘타인뿐이다.

발표회가 시작되고 순번 따라 한 사람씩 등단한다. 내 차례가 되었다. 강사님이 도와주겠다며 마음 놓고 줄을 힘껏 튕기시라고 한다.

귀에 들리지 않는다. 음표도 보이지 않고 노래 가사도 잊어버렸다. 떨리는 손으로 기타 줄을 튕긴다.

내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고 기타 튕기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땀이 이마와 등골 따라 줄 줄 흘러내린다. 어디에선가 박수 소리가 요란하다. 강사님이 고생했다며 격려해 주신다.

힘들었던 4학기를 무사히 마쳤다. 힘든 고비를 넘길 때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붕~했다.

그동안 클레멘타인, 과수원길, 오빠 생각, 토요일 밤에, 소양강 처녀 등 몇 곡을 더듬거리며 칠 수 있게 되어 마음속으로 뿌듯했다.

겨울 휴강 때 강사님한테 부탁해서 섬마을 선생님 노래를 배우고 싶었다. 모르는 거 물어보면 귀찮아하지 않으시고 노래하시면서 기타 치는 영상까지 보내주시는 자상함도 보여 주었다.
강사님의 가르침에 손가락 끝이 콩알만 한 굳은살이 붙어 감각을 잃어버렸다. 강사님은 군위 성주 등 다른 지역에도 강좌를 맡으시고 강의한다.

다른 지역수강생들이 나이가 많아서 할 수 없다고 하면 제 이야기를 꺼내면서 군위에는 산수 넘은 연세에 기타를 배우신다면 늘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고 하신다.

이렇게 자질구레한 일들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곁에서 돌봐 주시던 강사님이 어느 날 느닷없이 올해부터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수업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면 문자가 날아왔다. 뜻하지 않은 소식에 어안이 벙벙하여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만남은 헤어짐을 약속한다는 말이 맞은가 싶기도 하다. 그동안 쌓아온 정들이 주마등처럼 떠 오른다. 강사님! 지켜드리지 못하고 쓸쓸하게 떠나보내는 마음 이해해 주십시오.

어디 가시더라도 쌓아온 정 잊지 마시고 건강히 잘 계십시오. 살다 보면 만날 날 있겠지요. 앞날에 무궁한 영광이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정(情)이란 무서운 마력과 같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저작권자 N군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