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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대통령, 이승만에 대한 오해와 진실

admin 기자 입력 2024.03.04 10:51 수정 2024.03.04 10:51

↑↑ 황성창 시인
ⓒ N군위신문
세상을 살다 보면 우리가 모르는 사실이 너무 많다. 모르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르고 상대에게 엄청난 상처와 고통을 주기도 한다. 모르는 것은 죄가 되지 않지만,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은 더 큰 잘못이다.

1948년 건국 이후 친북좌파가 70여 년 세월 동안 이승만 전 대통령을 어떻게 모함하고 얼마나 집요하게 그리고 악랄하게 거짓말을 퍼트려 왔는지---
최근 상영되고 있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정치적 업적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이 화제다.

지난 2월 4일 관객 80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흥행 열기에서 나타나듯 우리가 이승만 대통령의 진정한 명암을 너무 모르고 살았다는 공감대가 영화 관람으로 이어진 것 같다.

또 반가운 소식으론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 사업 기금을 지난달 19일 기준 103억 원을 모았다는 것이다. 국민 6만2000여 명이 기부에 동참했다고 한다. 작년 9월 범국민운동을 추진한 지 5개월 만에 100억을 돌파했다.

만시지탄이나 국가보훈부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2024년 1월 ‘이달의 독립운동가’에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이 전 대통령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지휘한 최고 정치지도자였다. 국가보훈부는 이번 이 전 대통령을 독립운동가에 선정한 이유로 “대한민국 독립을 세계에 호소하며 헌신했다”고 했다. 1919년 임정 초대 대통령을 지냈고 주미 외교위원회 위원장으로서 한미협회 설립 등의 활동을 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앞으로도 조명해야 할 업적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미국 프린스턴대 박사였던 이 전 대통령이 1941년 영문으로 출간한 ‘일본 내막기’는 일본이 머잖아 미국을 침공할 것이라고 예견,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였다고 한다.

박민식 전 보훈부 장관은 ”현재 우리가 누리는 번영의 근간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이라고 했다. 미국은 6·25전쟁 휴전 협상 중 ’한미동맹‘을 원하지 않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한미동맹‘을 끝내 관철시켰다”라고 말했다.

박 전 장관은 “이승만은 미국의 조지 워싱턴, 토마스 제퍼슨과 같은 건국의 아버지로 평가받아야 한다”며 진영의 잣대로 공적을 폄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 등 해외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했고, 이후 정부 수립, 6·25전쟁을 이끌면서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경제 번영의 기틀을 닦았다.

그러나 이런 공적은 1960년 3·15 부정선거로 4·19 혁명을 초래했다는 이유로 철저히 외면받았다.

공산주의를 반대해 대한민국을 건국한 이 전 대통령에 대한 대한민국의 좌파 세력들에겐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한미동맹 결성에 공을 세운 이승만은 눈엣가시 같은 인물이다.
그래서 이 전 대통령을 ‘친일파의 거두’라니 독재자로 몰아가며 기념관도 짓지 못하게 해왔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좌파진영에서는 “대한민국은 태어나서는 안 되는 나라”라는 입장을 취해 온 것도 사실이다.

2019년 문재인 정부의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회는 서울 도심에 10명의 독립운동가 초상화를 내걸면서 유독 이승만은 제외했다.

역대 보수 정부도 비굴하게 이런 공적을 평가하기를 주저한 측면이 있다.
특히 전교조 같은 좌파 단체는 정부 수립을 이끈 이승만 대통령과 한강의 기적을 일군 박정희 대통령을 친일파와 미국의 꼭두각시로 조롱하고 매도하기를 일삼았다.

세계가 부러워하고 감탄하는 대한민국 기적의 역사를 무슨 억하심정으로 깡그리 지으려 하였는지---이승만 대통령 기념관도 현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에야 겨우 건립하기 시작한 것이 단적인 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사실적 공로는 여러 가지로 명확하다.
이 대통령은 1952년 1월 18일 일방적으로 ‘평화선‘을 선언했다. 바다 60해리까지 우리 영토라는 발표였다.

독도를 우리 영토로 포함하기 위한 특별 조치였다. 당시 국제법상 영해 기준은 3해리다.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는 ’이승만 라인‘에 일본은 물론 미국 등 국제사회도 반대했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 대통령은 평화선을 넘는 일본 배들에 총격을 가하고 나포했다.
1965년 한일어업협정으로 평화선이 없어질 때까지 300척이 넘는 일본 선박이 나포됐다.
무려 4000명 가까운 일본인이 한국 형무소에 구금되기도 했다.

독도에 대한 한국의 실효적 지배는 바로 이 평화선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 힘도 없던 나라가 힘에 의한 외교로 영토를 지킨 드라마틱한 사례다. 그런데도 좌파세력들이 이승만을 ‘친일’이라 매도하는 것을 보면 기가 막힐 일 아닌가.

공산주의자 조봉암을 기용해 유례없는 농지개혁을 성공적으로 끝냈다. 무상의무교육제도를 혁명적으로 이뤄내 많은 국민이 문맹에서 탈출했다.

왕정 시대 신분제였던 전 국민에게 한반도 역사 최초로 자유와 사유재산을 부여 인정함으로써 경제 기적을 가능하게 했다.

이념대립과 정치 혼란 속에서의 일부 정치적 과실은 지적되나 위대한 공적엔 비견할 수 없는 일이다.

이승만 없이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이승만 없이 우리가 자유민주주의 진영에 함께 서고, 이승만 없이 6·25전쟁에서 나라를 지키고, 이승만 없이도 한미동맹의 전략이 과연 가능하였겠냐는 질문에 누가 선뜩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을까? 원자력발전조차 그에 의해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망국에 접어든 구한 말에 태어났으나 그렇게 무지함 속에 살지를 않았다.

이승만은 한반도 최초의 근대 대한민국을 건국한 대통령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도입한 선구자다. 그는 백 년 후 미래를 내다본 예언자이기도 하다.

그가 만든 대한민국은 오늘날 세계 10위권의 선진국이 되었다. 대한민국은 2차 대전 후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유와 번영을 당대에 이룩한 자랑스러운 나라다. 그 선두에 위대한 이승만 전 대통령이 우뚝 서 있다.

황성창 시인
재부 군위군향우회 지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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