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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조총련의 실체

admin 기자 입력 2024.05.02 23:08 수정 2024.05.02 11:08

↑↑ 황성창 시인
ⓒ N군위신문
조총련이란 북한을 조국으로 섬기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의 약칭이다. 1955년 5월 26일 북한 김일성의 지령을 받아 설립했다.

조총련 강령 제1조 ‘우리는 전체 재일동포들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위에 총집결시키며 주체사상의 계승 완성을 위하여 헌신한다’라고 되어 있다.

강령대로 북한 정권의 선전·공작기관 기능과 한반도 적화통일을 위한 북한의 대남 우회 침투 거점 구실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대한민국을 부인하고 북괴를 지지·찬양하는 조총련을 우리 대법원은 1970년 11. 24 ‘반국가단체’로 확정판결했다.

일본 내 오사카부大阪府, 도교도東京都, 효고현兵庫縣, 아이치현愛知縣, 교토부京都府, 등은 재일교포들이 다수 거주하는 지역으로 조총련 활동이 아주 왕성한 곳이다.

조총련은 북한의 해외 공인단체로 결성된 이후 일본에서 북한 방문자들의 비자 발급 등 북한 대표부 역할을 대행하며 동시에 대남공작기관의 기능까지 수행하고 있다.

1970년대 초반까지는 재일교포의 절반 이상이 조총련에 포섭되기도 했으나 70년대 종반부터는 한국의 발전상을 직접 보고 조총련에서 이탈하는 교포들이 늘어났다.

이후에 ‘겨울연가’ 등 K드라마, K영화, K팝 등 한국의 눈부신 발전과 국제적 지위가 굳건해짐에 따라 조총련의 기세가 꺾이고 많이 쪼그라들었다.

조총련은 일본에서 태어난 조총련 교포 2세대들을 조총련이 세운 조선학교에 입학시켰다.
초중고 및 대학으로 이어지는 교육기관이 북한의 교과과정을 따르는 편향된 의식과 역사교육을 주입 시켰다.

조선인학교들은 민족교육이라는 명분으로 매년 학생들을 이끌고 평양 망경대를 방문하여 김씨 일가의 주체사상을 뿌리 깊게 심기도 한다.

한편 조총련이 직영하는 은행이나 신용조합에서 사업자금 대출을 미끼로 북한 지지 세력으로 끌어드려 확장해 나갔다.

이렇듯 조총련 기세가 등등하던 1973년 8월 일본에 망명 중이던 야당 지도자 김대중을 일본에서 납치해 한국으로 압송한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일본은 물론 전 세계의 톱뉴스로 보도했다. 국내에도 정치적으로 매우 어수선하던 10월에 개인적 용무로 일본을 방문 약 5개월 머물게 됐다.

일본에 거주하시던 아버님의 병원 퇴원과 동시에 영주귀국을 위한 출국이었다.
그런 와중에 어느 날 아버님 이웃 재일동포 몇 분이 미국 영화배우 율 브리너를 꼭 빼닮은 젊은 손님 한 분 데려왔다. 조총련계 간부가 나와의 만남을 간곡히 요청해 부득이 데려왔다고 했다.

뜻밖에 온 손님이 자기 신분을 밝혔다. 자기 부모의 고향은 경남 진해다. 자기는 일본에서 태어나 조선대학을 졸업하고 아이치현 지역 조총련 선전부장직에 있는 아무개라 했다.

첫 말이 ‘병원에 입원 중인 아버님의 영주귀국을 서두르신다는데 사실’이냐고 물었다.
그렇다. 기왕 고국으로 가신다면 굳이 못사는 남한으로 갈 게 아니라, 지상낙원인 북한으로 가면 좋지 않겠냐.

그러면 복송 절차에 따른 모든 일은 조총련이 무상 제공할 것이라는 내용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이런 말이 오가는 자리에 긴장된 대여섯 명의 이웃집 민단 교포들도 함께 있었다.
나는 일본에 가기 전부터 조총련이 어떤 단체인지 대강 알고 있었다. 재일동포북송사업이 무엇 때문에 이루어졌는지도 조금은 안다.

북한은 6·25전쟁 때 입은 인력 손실의 보충을 위해 재일동포들의 북송이 절실했다. 일본 또한 껄끄러운 조선인들을 일본으로부터 내보내기를 원했다.

이런 서로의 속셈이 맞아떨어져 체결한 ‘재일교포북송에 관한 협정’에 따라 1959년부터 1984년까지 약 9만3000명을 북한으로 보냈다.

조총련은 북송하면서 북한을 ‘지상낙원’이라고 속이고 교포들을 생지옥으로 보냈다.
조총련은 조선학교와 지역별 조직을 총동원해 무상교육, 무상의료가 보장되고 차별 없는 공화국으로 가자고 집요하게 교민들을 설득하고 다녔다.

이럴 때 아버님 귀국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나를 찾아온 것이다.
조총련 열성분자의 일방적 제안을 듣는 자리에서 나는 당시 코리아·뉴스사 기자증(지금은 존재하지 않음)을 내밀며 단칼에 거절했다.

내 신원을 안 그는 순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잠시 머뭇거리다 말머리를 돌려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와 김대중 납치사건을 들먹거리며 맹비난을 했다.

한편으론 조총련의 선무 공작의 낌새도 피웠다. 북한은 지상낙원인 데 비해 남한은 미국의 앞잡이 노릇으로 원조만 받아먹고 산다는 등 잠꼬대 같은 말만 나불댔다.

한국인의 생활 수준도 모르는 주제에 헛소리해대는 그의 무모한 언행이 가상하다 싶을 정도였다.

생떼 같은 비방을 듣다 어이가 없어 반문했다. 당신은 북한에 한번 가봤냐고 물었다. 가보지 않다고 했다. 가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북한을 지상낙원이라고 단정하나.

그럼, 고향이 경남 진해라 했는데 한국에는 가본 적 있냐고 물었다. 없다고 답했다. 고향에 가보지도 않고 미국의 원조로 겨우 산다는 근거가 머냐고 따졌다. 그의 말이 가관이다.
한국 공항에 도착하면 중앙정보부에서 다 잡아간다고 해서 가지 못한다고 했다. 기가 막혔다. 당신 신분이 고작 조총련 지역 선전부장에 불과한 데 머가 그리 대단한 사람이라고---. 당신 같은 사람들 떼거리로 와도 거들떠보지 않는다고 했다.
명색이 조총련 선전부장직을 가진 사람이 되레 면박을 당했으니 얼마나 민망해했을까. 그날 합석한 교포들이 어쩌나 조마조마했었던지 한숨을 돌리더라.
일본 체류 중 기이한 일도 있었다. 아버님 병고로 대신해서 결혼식 하객으로 갔었다. 아버님 친구인 혼주가 조총련 사람인데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되면 결혼식장에 가보라는 어른의 뜻으로 식장에 참석했다.
교포들의 결혼풍속이 별반 다를 게 있겠나 싶었다. 결혼식이 진행되면서 격식이 벗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주례사 대신 김일성 수령님이 어떻고, 조선 중앙당에서 온 축사라며 소개했다.
식순 마지막엔 신랑 신부가 김일성 수령께 충성 서약과 함께 충성금을 바친다니 자리에서 모두 일어나라고 했다. 주변 하객들이 눈총을 쏴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질 않았다. 남·여 개인끼리 결혼하는 건지 북한 공산당과 혼인하는 건지 별난 결혼식을 봤다, 김일성에게 충성하고 돈 바친다고 대한민국 국민이 벌떡 일어나 설 줄 생각했나. 오산이다.
짧은 기간에 일본에 체류하면서 조총련의 실체를 보게 되었다.
조총련 교포들 집에는 조상 사진은 전연 걸지 않고 김일성 사진은 정중앙에 떡 부착했다.
김일성을 사이비 교주처럼 받들고 신주 모시듯 했다.
조선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교복은 남학생은 상·하의가 흑색으로, 여학생은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 한복을 조선 시대 여성들처럼 입고 있었다. 등·하굣길도 오와 열을 맞춰 정연하게 다닌 걸 보니 처연했다. 전체주의체제의 집단행동을 보듯 안타깝기도 했다.
이렇듯 조총련의 실체를 모를 리 없는 무소속 윤미향 의원이 지난해 조총련이 주최한 ‘관동대지진 100주기 행사’에 참석했다는 보도를 봤다. 그 자리에 김정은에게 영웅 칭호를 받은 지도부 인사도 참석했다.
추도사를 낭독한 조총련 간부는 한국 정부를 ‘남조선 괴뢰 도당’이라 불렀다.
이 행사 직전 한국 정부와 민단이 주최한 ‘제100주년 관동대지진 한국인 순난자殉難者 추념식’에는 불참했다. 정부 공식 추도식은 외면한 채 조총련 행사장에는 갔다.
윤미향 의원이 국민의 세비는 꼬박꼬박 챙기면서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이럴 수 있나. 조총련 강령을 동의한다는 뜻인지 기가 찰 노릇이다. 국회의원이라면 일반인보다 법을 더욱 준수하고 몇 배는 더 실천적 모범을 보여야 하지 않겠나.

황성창 시인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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