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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賢地 탐방

admin 기자 입력 2024.05.19 22:48 수정 2024.05.19 10:48

↑↑ 권춘수 자문위원
ⓒ N군위신문
가을걷이가 끝나고 겨울로 접어든다.
유학이념을 계승하고 도덕과 윤리 사상을 고취하고 인재 육성과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전승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담수회(회장 이종준) 군위지회에서 2023년 11월 선현지를 탐방한다는 연락이 왔다.

편지를 받아 들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무슨 소식일까? 친구들이 하나둘 산으로 떠나고 외로이 남은 갓 산수 넘은 나에게는 두려움이 찾아든다.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쓴 편지를 침침한 눈을 찌푸리며 더듬더듬 읽어 내린다. 「도동서원」 등 선현들의 유적지를 답사한다는 내용이다.

뜻밖의 좋은 소식에 한참 동안 마음이 붕 했다.
도동서원에 대한 역사와 내력에 관한 약간의 정보를 얻기 위해 지식의 보물단지 뚜껑을 열어본다.

도동서원은 조선 초기 유학자 김굉필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1568년(선조 1) 비슬산 동쪽 기슭에 쌍계서원(雙溪書院) 이름으로 창건되었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1604년(선조 37)에 지금의 위치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재창건하였다.

1605년 사림들이 지금의 자리에 사우를 중건하여 ‘보로동 서원(甫老洞書院)이라고 하였다가 1607년 선조로부터 친필로 쓴 도동서원(道東書院)이라는 편액을 하사받아 지금의 도동서원으로 사액했다.

‘道東’의 의미는 “성리학의 도가 동쪽으로 왔다”는 의미라고 한다.
고종 때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보존된 47개 서원 가운데 하나로 병산서원·옥산서원·소수서원·도산서원과 함께 우리나라 5대 서원 중 하나이다. 201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습관이란 게 참 무서운 가 보다. 나는 학술, 관광, 산행 등 어디에든 다녀오면 뚜렷한 이유도 없이 거기에 대한 이야깃거리를 기록해 두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지금도 그때그때 일어난 크고 작은 화젯거리들을 빼놓지 않고 틈나는 대로 삐뚤삐뚤하게 낙서처럼 써두고 한다.

11월 아침은 초겨울 날씨처럼 매섭고 차갑다. 입가에서 하얀 뭉게구름이 쉴 사이 없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80여 명 임원들이 늦가을 옷차림으로 시각에 맞게 도착한다. 알록달록한 모자에 금테 안경 받치고 어슬렁어슬렁 걸음으로 걸어오는 모습은 어디에도 손색이 없다.

회원들은 시각에 맞춰 한 사람 두 사람 모이기 시작한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 반갑게 안부 물으며 만면에 웃음꽃이 가득하다.

멀리 떨어져 있던 시간이 무색하듯 어색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힘들고 찌든 삶에서 벗어나 잠시라도 잊어버린 평화로운 모습이 너무나 행복해 보인다.

80여 명을 태운 버스는 밤새 내린 하얀 서리에 미끄럼 타고 서서히 미끄러지기 시작한다. 사무국장이 마이크 잡고 사회를 한다.
담수회 군위지회장(회장 이종준)의 간단한 인사 말씀에 이어 사무국장이 하루의 일정을 소개한다.

대구 달성군에 있는 「도동서원」과 홍의 장군 망우당 「곽재우 묘소」와 「남평 문 씨 인흥세거지」를 둘러본다고 하고선 준비해 온 간식거리를 나눠준다.
여행은 보는 것도 아름답고 좋지만, 먹는 것보다 더 좋은 거 없다. 조용하던 버스 안은 갑자기 시끌시끌해진다.

이제 막 가을걷이 끝난 시골 풍경은 쓸쓸하고 삭막해 보인다. 알알이 맺힌 곡식들을 거둔 들녘은 황량한 벌판 같고, 논바닥에 듬성듬성 설치해 놓은 비닐하우스가 눈에 들어온다.

하늘을 찌를 듯 높다란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르는 것을 볼 때면 약간의 불안감이 든다. 공장이 들어서면 농토가 줄어들까 괜스레 불안해진다.

이 생각 저 생각하는 동안 빠른 걸음으로 달리던 버스가 슬금슬금 기어가는 듯 느릿느릿 걸음마 걸음으로 달린다.

버스가 노란 잎을 휘감고 있는 웅장한 은행나무 밑에서 걸음을 멈춘다. 굳게 닫힌 문이 살며시 열린다. 해설사가 우리를 반기며 마중해 준다. 서원 경내는 400년 된 은행나무에서 떨어진 노란 잎으로 융단을 깔아놓았다.

그 위를 걸으며 해설사 따라 서원 안으로 들어간다. 넓적한 마당이 텅 비어 있다. 해설사가 서원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한다.

우리가 서원으로 들어갈 때 허리를 굽히고 들어가야 할 정도로 작은 문이 있었다.
이 문은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라는 뜻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경내를 돌아보고 창녕 망우당 곽재우 유허비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홍의장군 망우당 곽재우 묘소를 찾았다.
곽재우는 남명 조식의 문인으로 임진왜란 당시 의령에서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창녕 함안 영산 등지의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선조 32년(1599) 경상좌도 병마절도사로 임명되었을 때 군을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상소를 올렸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갔으나 탄핵을 받아 전라도 영암으로 귀양을 갔다.

선조 35년(1602) 귀양에서 풀려난 후 비슬산에 머물다가 영산의 낙동강 변에 정자를 짓고 죽을 때까지 살았는데 이 정자가 바로 망우정이다.

망우당 곽재우 유허비는 곽재우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고을의 유림인 조언성 이기성 신영복 신계동 4명이 정조 13년(1789)에 세웠다고 한다.

해가 빠르게 서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우리는 곽재우 유허비를 보고 「남평 문씨 본리세거지」가 있는 곳으로 달린다.

이곳은 고려 말 충신이며 원나라로부터 목화씨를 가져온 충선공(忠宣公) 문익점의 18세 손인 인산재 문경호가 1804년경 터를 잡은 「남평 문씨 인흥세거지」이다.

현재 아홉 대소가 와 재실 두 채 그리고 인수 문고와 부속 건물이 한울 속에 자리 잡고 있으며 풍치 있는 토담으로 둘러싸인 부지 안에 총 70여 채의 전통 와가가 있는 것을 보고 우리들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늦가을 해가 서서히 저물기 시작하고 땅거미가 내려앉는다. 분주했던 하루가 물러가고 고즈넉함이 찾아든다.

회원님들은 이번 선현들의 유적지 답사는 훌륭했다며 2024년에 더욱더 알차고 유익한 유적지 답사를 하면 좋겠다고 입을 모은다.

이종준 회장님은 유적지 답사를 성황리에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신 회원님들께 감사드린다는 말씀과 인의예지仁義禮智인 유교 정신으로 건강한 지역사회 만들기에 앞장설 것을 약속하며 파이팅을 외친다.

우레와 같은 박수 속에 회원님들은 2024년 건강히 다시 만나기를 약속하며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눴다.

2024년 4월 19일
담수회 자문위원 권춘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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