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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물망초

admin 기자 입력 2024.06.04 16:49 수정 2024.06.04 04:49

↑↑ 황성창 수필가
ⓒ N군위신문
“금성천 갈대밭에 노을이 짙어지니/짝 잃은 외기러기 서천으로 날아가고/
자주고름 무늬 속에 임의 모습 아련하니/애닯다 녹슨 철모 가슴 먹먹 한숨짓네//
백암산 별빛 속에 풀벌레 울어 예고/유성우 밤하늘에 낙화되어 이우는데/
무슨 사연 못내 잊어 산새마저 잠 못드니/참호 속 백골들은 고향 그려 탄식일세.”

위 시는 한명희의 ‘벽암산 별곡’ 전문이다. 전쟁의 비극을 담은 애절한 시다.
강원도 화천 전투에서 초연이 휩쓸고 간 백암산 계곡 양지 녘 돌무덤에 쌓인 무명용사는 누구일까. 어느 엄마의 아들일까, 남편일까. 병사의 고향은 어딜까. 적막한 갈대밭에 산새마저 잠 못 드니 달빛만 처량한 휴전선을 가로지르는 바람 소리가 서럽게 운다.

‘전몰자를 위하여’라는 시를 쓴 영국의 시인 로런스 비니언은 ‘그의 눈에 비친 살아남은 자는 모두 늙고 병든 존재’다. 그러나 ‘전몰자는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 심지어 ‘웃으면서 대화할 수도, 단단한 식탁에 앉을 수도 없다.

그들은 영원히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둠 속에 반짝이는 별처럼 산 자의 기억 속에 영원히 살아있다.’라고 말했다.

산화한 호국 영령들을 추모하는 데 추모 시만큼 영혼을 위로할 더 좋은 감정표현이 있을까. 한명희의 ‘비목’, ‘외로운 사슴’을 비롯해서 모윤숙의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공중인의 ‘진혼鎭魂의 노래’ 유치환의 ‘포연砲煙을 넘어’ 박봉우의 ‘휴전선’ 등이 대표적인 전쟁 추모 시로 꼽힌다.

전쟁이라는 비극적 상황에 대한 인간 내면의 절절한 표현들이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곧 현충일이다. 포성이 멎은 지 71년, 6·25전쟁 중에 우리 국군 16만여 명이 전사했지만, 아직 유해를 찾지 못한 국군 전사자가 12만1879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름 모를 능선 바위틈에 슬프게 누운 병사의 유해를 어느 세월에 다 찾아 충혼탑에 모실지, 생각만 해도 아득하고 송연하다. 현충일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의 충성을 기념하는 날이다.

국립현충원이나 지역 충혼탑은 호국 영령들의 혼을 모신 곳이다. 현충일 오전 10시 사이렌울림으로 시작한 1분간의 묵념은, 산 자들이 호국 영령들의 뜻을 잊지 않고 받들겠다는 다짐과 약속의 시간이다.

6월은 호국 보훈의 달이다.
예전에는 6월 한 달 동안에는 초·중·고 학생들의 가슴팍에 으레 ‘보훈의 달’ 리본을 달았다. 현충일에는 음주가무飮酒歌舞를 삼가고, 요정에선 아예 영업마저 하지 않았다. 지금은 어떤가. 현충일이 휴일로 둔갑해 해외로 여행 떠날 사람으로 공항은 장사진을 이룬다.

반면에 필자처럼 나라와 국민을 위한 전쟁에서 혈육을 잃은 수많은 보훈 가족들은 ‘나를 잊지 마세요’라는 한이 서린 ‘물망초’배지를 가슴에 품고 현충일에 또 한 번 피눈물을 쏟는다.

지난날 아픈 기억 속의 세월, 온 가족이 당한 처연한 슬픔과 고통, 깊게 멍든 상처를 어디서 누구에게 위로받을 수 있으랴. 온전히 혜택받은 사람들이 현충일에 숙연한 척이라도 해준다면 외로운 사람끼리 모른 척하고 한 줌의 위안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나.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알링턴 국립묘지의 무명용사 묘역을 참배 헌화한 뒤 이렇게 말했다. “살아남은 우리는 전몰자들의 침묵을 행동 없는 말이 아니라, 사랑과 지지 감사로 채워야 할 의무가 있다”라고 말했다. “전쟁에서 목숨까지 바친 이들에게 진 빚을 완전히 되갚을 순 없다. 되갚을 수 없는 것이기에 현충일에라도 그 영령들의 넋을 기억하고 진심 어린 감사의 말로 보답해야 마땅하다.”라고 했다.

올해가 6·25전쟁 정전협정 71주년이다. 71년 전 정전협정에 조인한 미 마크 웨인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은 “나는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정전에 조인한 첫 미 장군이 되었다”고 탄식했다.

38선에서 시작된 전쟁이 38선 부근에서 끝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10년 전 정전 60주년 행사에서 오바마 미 대통령은 “한국전쟁은 승리한 전쟁이다. 한국인 5천만 명이 활력 있는 민주제도와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 대국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실 우리들의 삶이란 늘 형식에 치우치기 쉽다. 바쁘게 살다 보니 일상에 매몰되어 자기 앞 닦을 겨를도 없다.

그러나 이제는 세계 10위권 국력을 갖춘 글로벌 국가라는 걸 직시하면 세끼 밥 먹을 걱정은 없지 않은가. 대한민국은 상전벽해라고 할 정도로 변했다.

꽃다운 청춘들이 아침 이슬처럼 목숨을 바쳐 지켜 준 나라, 초연 속에 젊음을 불사른 한 많은 호국 영령들의 넋을 기리는 현충일을 어떻게 맞이해야 옳은 건지 한번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황성창 시인 수필가
재부의흥면향우회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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