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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문화 탐방기

admin 기자 입력 2024.06.04 16:52 수정 2024.06.04 04:52

↑↑ 권춘수 이사
ⓒ N군위신문
군위 문화원(원장 박승근)은 우리의 전통문화와 예술을 발굴 보존하고 전승시키기 위하여 일 년에 한 번씩 문화유적지를 탐방하면서 견문을 넓혀 왔다.
올해도 경북 상주에 있는 『경상감영』과 충북 청주에 있는 『청남대』 두 곳을 탐방하기로 하였다.

나는 습관처럼 늘 그렇게 해 왔다. 어디에 가든 출발하기 전 탐방할 그곳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책장을 넘겨보는 습관이 있다.

오늘도 경상감영과 청남대에 대한 약간의 지식을 얻기 위해 빛바랜 고서에 하얗게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느긋하게 뒤적여본다.

2024년 5월 2일(목요일) 200여 명의 회원들이 버스 다섯 대에 나눠 타고 낯선 곳을 찾아 먼 길을 떠난다. 새벽에 출발하여 10시경에 경상감영공원을 찾았다.

이곳은 과거 경상감영이 있었던 곳으로, 대구 달구벌에 있는 경상감영을 복원하여 공원으로 꾸민 것이다. 조선시대 관찰사가 근무하던 상신관, 진남루, 청유당, 제금당, 태평루, 내아 등 18개의 동의 전통 한옥 시설과 쉼터 마당, 감영 이야기 길 등이 조성되어 경상감영의 옛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조선시대 영남지방의 중심지였던 상주의 문화유산과 옛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어 깊은 감명을 받았다.

경상감영(監營:도청)에 대한 내력은 조선시대 지방 행정의 8도 제하에 경상도를 관할하던 관청이다. 지금의 『경북도청』과 같은 역할을 했다. 조선 초기 경주에 자리 잡고 있던 것을 선조 34년((1601년)에 대구로 이전되어 그곳에 정착하였다.

그 후 대구는 고종 33년(1896년) 갑오개혁으로 8 도제가 폐지되고 전국을 23부로 나누는 지방 행정 개편이 이루어질 때까지 경상북도의 중심지였다. 『1910년 경상감영을 경상북도청으로 개칭하였다.』 1966년 경북도청을 포정동에서 산격동으로, 2016년 안동시로 이전하여 현재에 이른다.

『경상감영은 2017년 4월 26일 대한민국 사적 제538호 대구 경상감영지로 지정되었다.』 대구 경상감영은 관찰사가 거처하는 조선 후기 경상도를 다스리던 지방 관청이다.

원래 경상도 지역을 관할하는 감영은 조선 초기에는 경주부에 있었고, 경주를 다스리는 부윤(府尹)이 경상도관찰사 즉 경상감사를 겸했다.

태종 7년(1407년)에 경상도가 다른 도에 비해 땅이 넓고 인구가 많다는 이유로, 조선 조정은 낙동강을 경계로 서쪽을 우도(右道), 동쪽을 좌도(左道)로 나누어 좌도는 종전대로 경주부윤이 맡고 우도는 상주목사가 맡아 해당 도의 관찰사를 겸하게 하였다.

경상도의 좌·우 분도(分道)가 당시 조세 체계의 혼란 등의 부작용을 일으키자, 이듬해 원래대로 환원하고 경주에 있던 감영을 상주로 옮겨 상주목사가 경상감사를 겸하게 했다.

경상도의 분도가 되풀이됨에 따라 이곳저곳을 떠돌던 경상감영은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선조 29년(1596년) 처음으로 대구부(大邱府 1910~1914)에 세워졌다.

좌·우로 나뉜 경상도를 다시 합치는 과정에서 경상도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어 당시 경상도를 점령하다시피 한 왜군이 전라도로 진격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러나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으로 대구는 왜군의 손에 파괴되고 달성에 있던 감영도 불타버린 뒤, 감영은 다시 내륙으로서 대도호부(大都護府)가 설치되어 있었던 안동으로 옮겼다.

왜란이 끝난 선조 34년(1601년), 안동대도호부가 교통이 불편한 내륙에 있어 위치상 감영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다시 대구로 옮기자는 조선 시대 문신 이덕형((1561~1613)의 건의가 받아들여져 감영은 대구부로 옮겨지고 대구부사가 경상감사를 겸하게 되었다.

감영이 대구부로 옮겨지면서 감영 운영을 경제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경산 하양 화원이 대구부에 합속되었다. 이때 대구에 새롭게 지어진 경상감영의 부지가 바로 대구 중구 포정동에 소재한 현재 경상감영공원으로 조성된 선화당 일대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경상감영의 내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는 다시 충북 청주에 있는 청남대를 찾아 길을 떠난다.

청남대는 매주 월요일은 정기 휴무일이라서 5월 2일(목요일) 날짜를 잡았던 것으로 생각한다. 창밖에 비친 농촌의 풍광을 바라보면서 어쩌면 저렇게 하나 같이 똑같아 보일까? 들녘이랑 집 모양 색상이랑 생활사 모두. 얼마쯤 달려왔을까?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점심때를 알린다.
버스는 아는지 모르는지 알고도 모르는 체하는지 땀을 뻘뻘 흘리며 앞만 보고 달린다.

버스가 지쳤던지 숨을 헐떡이며 우리를 어느 조용한 곳으로 데리고 가더니 거기에서 피시~하며 소리를 낸다.

그러고는 얼어붙은 목석이 되어 버렸다. 버스 문이 소리 없이 스르륵 열린다.
우리는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일렬종대로 소 떼가 느린 걸음으로 언덕 위를 올라가듯 꼬리에 꼬리를 물고 우리 콩으로 만든 두부찌개로 유명한 한 식당으로 들어간다.

기다란 식탁 위에 먹음직스러운 두부찌개로 요리한 음식이 푸짐하게 놓여있다. 옆 돌아 볼 새 없이 숟가락을 정신없이 오르락내리락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한다.’ 푹 들어갔던 눈이 금방 쑥 불거지게 튀어나온다.

모두 술을 한잔 걸치고 싶어 보이는데 참는 모습이 어쩜 애처롭게 보인다. 그럼에도 밥을 먹고 나니 힘이 솟고 기분이 한결 가뿐해지는 것 같다.

버스는 뒤돌아보지 않고 청남대를 향해 힘껏 질주한다. 가라앉은 버스 안 분위기가 서서히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다. 정신없이 달리는 버스는 고향길을 찾아가는 듯 신나게 달린다.

그립던 고향에 다 왔는지 서서히 발걸음을 멈춘다. 창밖을 내다보니 오늘의 목적지, 보고 싶던 『청남대』가 아닌가. 피곤한 기색도 없이 모두 버스에 내린다.

사무장이 몇 시까지 버스 있는 곳으로 모여달라는 소리를 듣고 청남대를 몇 번이나 다녀간 사람처럼 회원들은 어색함 없이 뿔뿔이 헤어진다. 모두 담소하며 어슬렁거리며 유유자적한 시간을 갖는 것을 보고 놀랐다. 생전 처음 와 봤기 때문이다.

대청호반에 자리하고 있는 『청남대』는 “따뜻한 남쪽의 청와대”로 1983년부터 20년간 대한민국 대통령 공식 별장으로 제2 집무실로 이용됐던 곳이다. 1980년 5공화국 시절 대청댐 준공식에 참석한 전두환 대통령의 제의로 1983년 청남대를 완공했다.

처음 『영춘제』라고 불렀으나 1986년 『청남대』로 개칭하였다. 처음 청남대는 일반에는 공개되지 않았는데 2003년 4월 18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남대 관리권을 충청북도에 이양하면서부터 일반인에게 개방했다.

골프장, 그늘집, 헬기장, 양어장, 오각정, 초가정 등의 시설이 있다. 모든 시설이 대통령 전용 별장으로 사용하던 당시 만든 것이 아니다. 관리권을 충청북도에 이양한 후 대통령 역사문화관, 하늘 정원 호반 산책로 등의 시설이 추가되었다.

청남대는 해마다 두 번의 큰 축제가 열린다. 봄에는 봄꽃 축제인 『영춘제』를 지내고 가을에는 『국화축제』를 개최한다고 한다.

아마도 그 기간에 방문하면 더욱 멋진 풍광을 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물 맑고 공기 좋고 풍광이 좋은 자리가 있으면 거기에 앉아 술 한잔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은 생각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청남대 입구로 들어가는 길목에 넓적한 바위가 있다.

그 위에서 탁주 한 잔 나누면서 환담을 즐기고 있는데 여성 한 분이 다가와서 술을 못 마시게 한다. 들은 척하지 않고 마신다. 조금 있으니 남성 한 분이 와서 술을 못 마시게 한다. 따지고 묻는다.

정숙한 곳이라며 자리를 떠나게 한다. 하는 수 없어 청남대 본관에 들어가는 입구 아늑한 대나무 숲에 앉아 술 한 잔 나누며 아쉽지만 약간의 즐거운 한때를 가졌다.

200여 명의 회원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문화인답게 시각에 맞춰 버스에 오른다. 버스는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를 뒤로 두고 슬금슬금 느린 걸음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차창 가에 기대어 하루를 돌아본다. 뜻깊은 대축제일을 청남대에서 성대하게 보내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그리고 바쁜 농사철임에도 참석하신 회원님들의 건행한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반가웠다.
앞으로도 더더욱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 문화원이 전국에서 으뜸가는 문화원으로 발돋움하자고 말씀드리고 싶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욱더 좋은 날 되시길 바라며 회원님들의 가정에 늘 평화와 축복이 가득하시길 소망합니다.


2024년 5월 3일
군위문화원 이사 권춘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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