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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긴 줄 서서 기다리는 행복 식당

admin 기자 입력 2024.09.04 22:00 수정 2024.09.04 10:00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고향에는 노인들의 복지를 위하여 노래교실 서예 컴퓨터 등 다양한 편의 시설을 갖춘 노인 복지관이 있다.

복지관 건물 바로 옆에 100여 명이 편하게 앉아 먹을 수 있는 아늑한 식당이 딸려 있다.
식당 이름은 누가 지었는지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

『행복 식당』

2020년 1월 1일 문을 연 이 식당은 노인뿐만 아니라 시민 모두에게 인기가 대단하다.
시민의 건강을 위하여 반찬이 식단표에 따라 매일 같이 다르게 나오기 때문에 시민들의 입맛을 한층 더 돋운다.

그리고 영업은 일주일에 월요일~금요일 5일간 한다. 영업시간은 12:00~13:00이다.
복지관 운영 방침은 엄격하다. 복지관에 가입한 사람은 1,000원으로 점심 한 끼를 맛나게 먹을 수 있는 식권을 구입할 수 있다. 지난 3월 초부터 2,000원으로 올랐다고 한다.

처음은 긴가민가했지만, 차츰차츰 음식 맛이 있다는 소문이 날개를 달고 전국을 퍼 나르자, 식당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날이 갈수록 많아졌다.

한 번은 대도시에서 노인들에게 드리는 무료 급식소로 오해를 받았던 적도 있었다. 뜻하지 않은 엉뚱한 소문에 어찌할 봐 몰라 한 참 동안 골머리를 앓았다. 가까스로 시민들에게 이해를 시키고 정상 영업에 들어갈 무렵, 엎친 데 덮친 꼴 난데없는 코로나 발생으로 전국이 떠들썩했다.

또 한 번의 시련을 맞게 되었다. 길거리는 바람만 쌩쌩 사람 한 사람 찾아볼 수 없다. 음산한 안갯속에서 무서움이 스멀스멀 가슴을 짓누른다.

문을 막 연 식당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한참 동안 쩔쩔매고 있었다.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간다. 전국이 조용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어려움이 닥쳐도 결코, 쓰려 저서는 안된다. 꿋꿋이 버텨나가야 한다.

코로나가 조금씩 수그러진다는 기쁜 소식이 들린다. 식당들도 하나둘씩 문을 열고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행복 식당도 죽음과 같은 긴 긴장 속에서 깨어 영업 준비에 들어간다. 짜임새 있는 식단표로 꾸준히 영업해 온 결과 3년이 지난 지금 줄 서 기다리는 식당으로 인기를 회복하였다. 복지관의 그간의 노고에 아낌없는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숨만 쉰다고 사는 게 아니다. 사람이면 사람값을 해야 한다. 사느라 옆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복지관을 둘러보고 제2 인생이 펼쳐지는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하다.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다. 뒤돌아보니 나를 너무나 슬프게 했다. 모르는 것이 한둘 아니었다.

‘시작이 반이다.’ 눈에 보이는 대로 노래교실, 한글 서예 교실에 등록하였다. 노래교실을 마치고 나니 점심때가 되었다. 2,000원으로 식권을 구입했다.

처음 어떻게 하는지 몰라 약간 서툴고 낯설었다. 남들이 하는 거 보고 따라 한다. 쑥스러워 주위를 살펴본다.

식권을 받아쥐고 식당으로 간다. 식당 입구에는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들이 긴 줄 서서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줄 따라 멍하니 선다. 왠지 이상한 기분이 자꾸 나를 짓누른다.

2,000원이란 돈의 가치 때문인지 스스로 기가 죽는다. 자장면 한 그릇에 8~9천 원을 하는데 2천 원 가지고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사람들은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면서 의아해하는 모습이 역력히 보인다. 왜 쳐다보는지 알 수 없으나 생각이 깊어진다.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여기 말고도 더 좋은 식당이 많이 있을 텐데 왜 하필이면 이 식당에서 먹을까? 이 생각 저 생각에 자존심마저 상한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와 같은 사람으로 보인다. 돈의 가치를 두고 살아온 우리들의 삶의 습관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일까? 오만가지 생각이 가슴을 촉촉이 적셔준다.

12:00 정각에 식당 문이 스르륵 열린다. 사람들은 질서 정연하게 들어간다. 도우미가 식권을 받고 비닐장갑 하나씩 건네준다.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젓가락 숟가락을 한꺼번에 잡는다. 가만히 서 있어도 저절로 떠밀려 들어간다. 도우미가 반찬 4가지를 담은 식판을 건네준다.

식판을 받아쥐고 주걱으로 밥을 먹을 만큼 떠서 식판에 담는다. 국이 담긴 그릇을 받아서 빈자리가 있는 곳을 찾아간다. 입맛이 까다로운 나는 맛이 어떤지 제일 궁금했다.

첫 숟갈 떠서 맛을 보았다. 내 입에 맛이 있었다. 정해진 시간 내에 밥을 다 먹고 식판을 모으는 곳에 갖다 놓는다.

허겁지겁 점심을 다 먹고 밖으로 나온다. 2백 원짜리 커피가 기다리고 있다. 한잔 뽑아 먹는다. 다방 커피보다 순하고 맛이 있다.

뜨끈뜨끈한 물 한 잔으로 입가심하고 식당 밖으로 나온다. 여태 입맛이 없어 점심을 먹지 않았는데 오늘 배불리 맛있게 먹었다.

집에 돌아와서 식구와 같이 일어났던 이야기를 하면서 내일부터 점심은 이 식당에서 먹기로 했다.

식구는 좋은 데로 하라며 반색한다. 나 역시 집에서 먹는 것보다 더 좋았다.
점심을 먹을 때마다 반찬이 매일 같이 다르게 나와 입맛을 돋운다. 여기에서 점심을 먹은 지 두어 달 지났을까? 체중이 500그램 늘어났다.

체중이 빠져 걱정했는데 한두 달 더 먹으면 체중이 정상으로 돌아올 것 같아 기대가 크다.
요리사가 정성스레 짜놓은 식단표, 봉사활동 하여 주신 주부님들 너무 친절하고 고마웠다. 한날은 점심을 너무 잘 먹었다. 뻑뻑한 소고깃국과 밀가루에 묻혀 만든 명태 전은 정말로 맛있었다.

무더운 여름 어느 날 음료수 한 박스 사 들고 식당으로 들어 갔다.
지난날 점심을 너무 잘 먹었다고 인사한 다음 들고간 음료수를 내 밀었다. 직원이 누구라고 전할까 하기에 이것을 그냥 전하기만 해 달라고 했다.

2,000원이라는 음식값에 늘 기가 죽었다. 세상이 그렇다. 속은 텅 비어도 겉은 희멀거러야 한다. 2,000원이라는 음식값이 단순히 보이지만 그 속에 든 비밀은 아무도 모른다. 밖에서는 이런 음식을 볼 수도 먹을 수도 없다.

그래서 돈으로 보기에는 약하게 보일지 몰라도 음식값으로 환산하면 적어도 일만 원은 훨씬 넘을 것으로 생각된다. 겉보다 속이 더 알차다는 것을 시민들은 알고 있다. 행복 식당 앞에 손님들이 늘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오늘이 있기까지는 정성스레 만든 영양사의 식단표, 늘 웃는 얼굴로 사람을 맞아 주는 봉사 요원들의 끊임없는 노력의 대가가 아닐까 한다.

가진 자 못 가진 자, 낮은 사람 높은 사람 가리지 않고 모두 똑같은 마음으로 대해 준 복지관의 모습이 참으로 보기가 좋았다.

『줄 서 기다리는 행복식당』 세상 끝날 때까지 세세 대대로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한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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