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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만추의 결실

admin 기자 입력 2024.10.21 16:44 수정 2024.10.21 04:44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시조창이 무럭무럭 익어간다. 달력으로 추분이 지나고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 상강이 다가온다.

후덥지근한 여름이 사람을 끈질기게 괴롭혀 놓고 염치도 없이 완연한 가을이 찾아왔어도 물러가지 않으려고 완강히 버티고 있다.

보다 못한 가을이 선선한 바람을 몰고 와 쫓아내듯 밀어낸다. 이내 여름이 가고 가을이 성큼 다가온 것 같다.

기온이 뚝 떨어지고 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하며 기분이 한결 상쾌하고 쳐져 있던 어깨가 으쓱해지며 힘이 절로 솟아난다.

가을은 정말 넉넉하고 풍요로운 계절임이 틀림없다. 들녘은 청포도 익어가듯 오곡들이 알알이 영글게 익어간다.

산야는 은빛 억새며 울긋불긋 단풍으로 가을의 아름다운 풍경을 한껏 자랑하고 있다.
가을의 풍요로움에 찌든 삶에 불안했던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일상 생활하면서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아 때로는 자괴심을 느끼기도 했다. 모르는 것이 많아 배우고 싶은 마음이 요동친다. 여기저기 힐끔힐끔 들여다보면서 찾아다녔다. 고향에는 노인 복지가 잘 되어 있는 것이 자랑거리다.

한문·한글 글쓰기, 사군자, 노래 교실, 시조창 등 여러 동아리 회가 있다. 시조창에 관심이 있어 한 학기가 시작한 지 1개월이 지났을 무렵 시조창 동아리 회에 등록했다.

시조창을 한 달 전에 시작한 회원들은 멋지게 잘해 보인다. 애가 타들어 간다. 언제쯤 되면 나도 저렇게 잘할까, 생각할수록 마음이 무거워진다. 꿈을 가진 자는 꼭 이룬다는 말만 믿고, 마음을 다독였다. 한두 달 지내는 동안 내 실력도 가을에 익어가는 열매처럼 조금씩 익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계절이 지나고 가을이 성큼 다가올 무렵 지정 강사님께서 2024년 9월 28일~29일 양일간 경주 향교에서 제10회 신라 국학 유학 경연대회가 있다며 한번 나가서 경험을 쌓아 보라며 권유한다. 내 실력으로는 턱도 없다.

어림도 없을뿐더러 꿈에도 생각할 수 없다.
그럼에도 대회를 어떻게 하는지 시조창 하는 사람들의 의상이며 실력은 어느 정도 되는지 보고 싶었다. 실력 부족으로 대회에 나갈 처지는 안 되어도 보고 싶은 마음이 연기처럼 솔솔 피어오른다.

경연 분야는 국학부, 예악부(시조창), 서예부, 의례부 등 4개 분야로 되어 있어 예악부에 신청하면 될 것 같았다.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어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내 실력이 얼마나 되는지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참가해 보자며 회원들에게 제의해 보았다.
4명 이상은 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는 규정에 따라 신청하기로 뜻을 모았다.

행사 당일 개인 차량으로 출발하기보다 봉고 버스 한 대로 같이 가면 좋겠다는 의견으로 버스를 대절해서 가기로 했다. 차량 준비는 내가 책임을 지기로 했다.

회원 모두 정각에 모이는 장소에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 전에 몇 시각에 출발한다는 연락을 하지 않고 당일 아침에 연락했다고 서운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앞장서서 일을 처리하고 나면 언제나 섭섭한 이야기 들리기 마련이다. 못 들은 척 여유롭게 출발한다.

봉고 버스 안은 한참 동안 시끌시끌했다. 경주까지 가려면 아직 반을 더 가야 한다. 뒷좌석에서 누군가 오늘 부를 퇴계 이황 선생님 지으신 시조 ‘만고상청’을 한번 불러 보자고 한다. 목청을 돋궈 힘차게 마음껏 불러본다.

강의실에서 할 때보다 훨씬 더 훌륭해 보였다. 내 생각으로 이 정도면 좋은 성적이 나올 것 같아 약간의 마음이 놓였다. 시각에 맞게 도착하였다. 고도의 도시 신라 천 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것 같았다.

장거리 이동으로 정신이 약간 흐릿했다. 경연 대회 장소에 들어서니 백여 명이 북적거린다.
사람이며 건물이며 경연 대회 규모가 대단했다. 경연 분야가 예악부(시조창) 등 4개 분야가 동시에 실시하고 있어서 그런지 대회를 진행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어 보였다.

우리는 대회 장소에, 정각에 도착했음에도 예악부 장소를 빨리 찾지 못해 한참 동안 헤맸다.
다행히 입실해야 할 시각에 도착했다. 대회 진행부에서 창을 할 우리 앞 팀이 도착하지 않아서 우리에게 먼저 하면 가산점을 준다기에 먼저 하기로 했다.

연습이 조금 부족했지만, 노력의 결과를 보러 왔기에 생각 없이 그렇게 하기로 했다.
시험장 안은 매우 조용하고 엄숙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면을 바라본다. 심사위원이 양쪽 테이블에 앉아 있고 시조창 하는 자리 왼편에 장구 반주자, 오른편에 대금 반주자가 앉아 있다. 마이크 하나가 우리 앞에 놓여 있어 분위기 매우 낯설었다.

진행자가 묻는다. 군위 향교팀입니까? 예, 시작하십시오, 장구 반주자가 장구를 치면서 시작을 알린다. 선창하는 회원이 청아한 목소리로 창을 읊기 시작한다.

선창에 뒤이어 다 함께 굵직한 음성으로 시조창을 읊는다.
내 바로 앞에 우리 팀을 가르친 강사가 심사위원석 제일 앞에 앉아 있다. 창을 하면서 강사 표정을 힐끔힐끔 쳐다본다.

창이 중장에 왔을 때 진행자가 그만하고 마침을 알린다. 공손히 인사하고 뒷걸음으로 조용조용 걸어 나온다.

밖에 나와서 잘했다, 못했다 한마디씩 한다. 그러면서도 나뿐만 아니라 다른 회원도 창을 하면서 강사님의 표정을 읽었던 것 같았다.
이구동성으로 강사님의 표정이 일그러진 것으로 보이더라. 하며 심퉁한 표정을 짓고 쩝쩝거리며 입맛을 다신다.

입상하리라고는 꿈도 꿀 수 없었지만, 우리 나름대로 열심히 해왔기 때문에 약간의 희망은 걸고 있었다. 주최 측에서 마련한 점심 뷔페를 먹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오늘 일어났던 여러 가지 이야기에 꽃을 피웠다.

뜻밖의 기쁜 소식에 환호가 터진다. 입상하지 못할 거로 생각하고 돌아오는데 강사님이 흥분된 어조로 우리 팀이 장려상을 받았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준다.

버스 안은 갑자기 열기가 후끈후끈 달아오른다. 만추의 결실 마지막 날 장려상 받은 것은 노력의 대가라 할지라도 처녀 출전으로 큰 성과를 거두어드렸다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다.

시조창이 무럭무럭 익어가는 것을 보고 힘이 난 우리들은 앞으로 더욱더 열심히 하여 다음 경연 때 입상하자며 다 같이 손을 꼭 잡았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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