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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성창 시인 |
ⓒ N군위신문 |
5월이다. 온 산하가 초록으로, 연두색으로 물들고 있다. 회야강 넘어 보이는 천성산 산빛이 티 하나 없이 맑고 푸르다.
완두콩 빛깔이다. 이름 모를 풀꽃들도 산빛에 푸르름을 덧칠하며 샛바람에 꽃향기를 멀리멀리 날려 보낸다.
5월의 산빛은 샘물이 솟아 나오는 것처럼 가까운 산은 가까운 산대로, 먼 산은 먼 산대로 새뜻한 기운을 흠뻑 뿜어내고 있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딸과 사위, 서울 사는 아들 내외가 선물꾸러미와 꽃바구니를 들고 찾아 왔다.
오겠다는 연락은 며칠 전에 받았으나 막상 현관을 들어서는 자식들을 보는 순간, 마치 수년 만에 이산가족 상봉하듯 콧등이 시큰했다.
심지어 눈시울마저 뜨끈뜨끈하고 목도 잠겨 ’멀리 오느라 고생들 많았지‘라는 말을 더듬거리듯 겨우 얼버무렸다.
근년에 와서 반가운 사람 만나면 민망하게도 눈물빛을 자주 보인다. 나이 드니 남몰래 쌓이는 외로움이란 이런 건가?
심리학자 카를 융은 아이가 태어날 때 우는 고고(呱呱)의 함성은 이 “험악한 세상을 나 혼자 외로워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불안에서 우는 소리다”라고 했다.
인간은 혼자가 됐을 때 외로운 것이다. 이 외로움을 달래는 길은 누군가와 더불어 사는 것이다.
옛날 말에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이 어린이’가 된다는 말이 있다. 어쩌다 존재하지 않은 사람처럼 외딴섬에 갇혀 있다는 환각에 빠진 불안감으로 인기척에도, 사람 그림자에도 그리워하게 되는 것 같다.
이렇듯 언제나 만남을 기뻐하는 이유는 시간적 공간적 헤어짐이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산다지만, 부모 형제가 언제까지나 한 지붕 밑에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생자필멸 회자정리(生者必滅) 會者定離)란 고사처럼 태어나면 반드시 죽음의 이별이 있기 마련이고, 만나면 헤어진다는 이치가 있지 않든가.
그래서 가족의 만남은 더욱 기쁜 것이고 잠시의 이별도 영원히 못 볼 듯 슬퍼하는 것이다.
만남과 헤어짐의 사이에 오도카니 남는 건 하얀 외로움과 까만 그리움뿐이다. 외로움과 그리움이 길고 멀수록 허수아비처럼 기다림이 흐느적거릴 수밖에 없다.
5월은 만남의 달이다. 든든한 자식들, 신통방통한 손주들과의 골육지정이 넘치는 가족은 항상 살갗을 비비며 한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않길 원한다.
이런 다정한 만남을 통해 피붙이의 따스함과 가족 간의 소중한 유대감을 더욱 다지는 계기가 된다. 혈육으로 맺어진 듬직한 가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인가.
가족이란 선택할 수도 없는, 거부할 수도 없는 천륜으로 맺어진 운명의 굴레로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영원한 동반자다.
5월이 들면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등 챙길 일 챙길 날도 많겠지만, 그중에서도 내 마음을 애틋하게 하는 날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다.
어린이날, 금쪽같은 내 새끼들이 좋아하는 자장면 한 그릇 제대로 사 맥이지 못한 슬픈 기억들, 어버이날엔 남들처럼 붉은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드리지 못한 자괴심 때문이다.
경영하던 사업체가 어이없이 파산되고, 그 후유증의 파편은 늙으신 부모님과 여린 자식들에게 차마 견디기 힘든 고통의 상처만 한 아름 안겼다. 졸지에 백수로 추락한 내 몰골은 선물·용돈은커녕 끼니까지 걱정하게 했으니 그 황망함, 어찌 말을 다 하랴. 지옥 같은 흑역사, 어휴! 유구무언이다.
온갖 꽃이 피는 5월이 되면 문득 아득해진다. 어버이 여의고 맞이했던 수많은 어버이날, 그 찬란한 5월에 황야의 깃발처럼 가슴에 잉잉 차오르는 가슴앓이로 서러운 5월을 맞는다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처지 않고, 자식은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 주시지 않네. 한번 흘러가면 쫓아갈 수 없는 것이 세월이요, 가시면 다시 뵐 수 없는 것이 부모님이시네”라며 탄식했던 시조 한 수다.
효도를 다 하지 못한 채 부모를 잃은 주나라 고어(皐魚)의 슬픈 이야기가 동병상련에 혼연히 빠진다.
엄마는 하루 24시간, 1년 365일, 수호신처럼 자식들을 지켜주는 유일한 사람이다.
세상에서 엄마보다 나를 더 알아줄 사람 있을까? 세상에서 엄마보다 나를 더 맘 편하게 해 줄 사람 있을까? 없다. 엄마밖에. 누가 나에게 어버이가 어떤 분이셨나 묻는다면, ‘하늘만큼’ ‘ 백두산 천지만큼’이나 높고 속 깊은 분이었다고 대답할 것이다.
새삼스럽지만 저절로 자란 게 아니다. 아버님, 어머님! 음덕으로 오늘도 무탈하게 살고 있다. 숱한 세월이 가고 또 찾아온 어버이날, 북창을 열고 하늘을 향해 어머니! 라고 부르며 오매불망 참았던 눈물을 삼켰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유대인 금언처럼 어머니는 세상의 일반적 관념으로 생각할 문제가 아닌 듯하다.
자식 사랑이야 세상 여느 어머니와 별 다를 바 없지만, 우리 어머니는 나에겐 위대한 스승이었다.
돌이켜보니 일상에서나 밥상머리에서 지나가는 말처럼 언뜻언뜻 일러주셨던 어머님 말씀 하나하나가 어느 날에 산산조각으로 파산된 사업체의 원상회복을 위한 디딤돌이 되었고 이정표가 되어 절반의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금쪽같은 가르침이었다.
“사람 사는 거 별거 아니다. 살다 보면 사는 길 가는 길 저절로 보이고 알게 되느니라. 괜한 일엔 끼어들지 마라. 왠 만하면 양보하고, 좀 손해 보더라도 따지지 말고 그냥 넘겨주고 말아라. 구두쇠 소리 들으면서 억척같이 살지 말고 베풀면서 마음 편케 살라”고 하셨다.
말씀 중에 특히 “네 아비 욕하거나 무어라고 탓하지 마라. 평생 집시처럼 유랑하며 사는 것도 네 아비의 운명이고 팔자가 아니겠나”고 말씀하실 땐 몹시 쓸쓸해 보였다. 어릴 때라 이해가 쉽지 않았지만, 어머니 말씀이라 늘 새기며 그렇게 살려 애쓴 게 내 삶에 큰 원동력이 되었다.
어버이 돌아가신 지도 사 오십여 성상 흘렀지만, 지금도 어버이에 못다 한 가슴 아픈 사연들, 어버이의 한량없는 그늘을 잊지 못해 거실에 걸어둔 사진에 매일 아침 경배하며 그리워한다.
쉬지 않고 땅을 두드리는 밤비처럼 어버이에 대한 그리움은 늘 내 마음을 두드린다. 다음 해, 또 다음 해, 어버이날에는 푸른 청산에 잠드신 어버이 영전에 추모의 꽃, 흰 카네이션 한 다발을 고이고이 바치고 또 바치오리라.
황성창 시인/수필가
재부의흥향우회 상임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