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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의심 했던 4월의 봄

admin 기자 입력 2025.05.19 16:17 수정 2025.05.19 04:17

↑↑ 대구가축병원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봄은 나에게 트라우마가 있다. 환절기에 감기바이러스가 맹위를 떨치고 있던 어느 봄, 폐렴으로 심각한 위험까지 빠질 뻔했던 일 있었다.

올 감기는 다른 감기보다 더 지독하다고 사람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폐렴을 한 번 앓았던 적 있는 나는 긴장 초조하고 불안했다. 폐렴이 재발하면 고칠 수 없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알고 있기 때문.

그 후 폐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혹시나 감기에 걸려 폐렴이 도질까, 걸리면 어떡하지? 하는 트라우마가 지워지지 않는다. 살얼음 걷듯 지푸라기도 하나 붙잡고 싶은 심정이다.
유익한 정보를 얻기 위해 신문에 나오는 의학 소식 인터넷 등을 꼼꼼히 들여다보면서 폐렴 예방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익혀왔다.

폐 건강에 좋다는 음식 소개가 눈에 쏙 들어온다. 양파, 마늘, 토마토, 배, 사과, 도라지, 더덕, 오미자, 호두, 아스파라거스, 블루베리 등 10가지를 소개하였다.

이를 골고루 챙겨 먹고 적당한 운동 하면서 폐에 대한 건강관리를 부지런히 해 왔다.
어느 날 기침이 나오면서 머리가 약간 뜨끈뜨끈하였다. 괜찮겠지, 며칠 지나면 금방 낫겠지, 하고 미련을 댔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아 신경이 곤두 쓰였다. 몇 해 전에도 이맘 4월에 감기로 인하여 폐렴으로 앓아 고생했던 적 있었기 때문에 병약한 몸으로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은 나이가 많아지면 세포도 죽고 항체도 떨어지고 피가 뻑뻑해 잘 돌아가지 않아 뇌졸중도 생기고 숨도 가빠지고 밥맛도 없고 그러다 죽는 거야.

의사 선생님 뺨칠 정도로, 이구동성으로 숨도 쉬지 않고 거침없이 내뱉는다.
할 일 없어 끌어모여 앉으면 죽는 이야기뿐이다.

그 말이 맞은 건지 항체가 떨어지는 것 같았다. 하찮은 감기에도 이겨내지 못하고 쩔쩔매고 하는 것을 보면 그렇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화창한 4월의 봄날, 뜻하지 않는 불청객이 침통한 얼굴로 찾아왔다.
폐렴에 불안해하며 벌벌 떨고 있는 나를 어떻게 알았던지 지독한 감기 바이러스가 귀신같이 찾아와서 의기양양하게 쳐들어와 내 온몸을 벌집 쑤셔놓듯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보름째 사투를 벌인 끝에 기침 가래가 조금씩 덜하고 쐐 쐐 거리 던 숨찬 소리도 약간 덜한 것 같아 호흡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2, 3일쯤 지나면 거의 회복할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긴장되고 초조하고 불안했던 마음도 조금씩 가라앉는 것 같았다.

믿을 건 아니지만, 지난밤 빨간 진주 목걸이를 목에 건 꿈을 꾸었다. 꿈이 너무 선명해 무슨 좋은 일이라도 생길 것 같아 괜히 기분이 좋았다. 들뜬 기분으로 하루를 맞는다.
오후 2시경 2살짜리 삽살개 수컷 페니스가 빠져 이틀이 지나도 들어가지 않는다고 전화가 걸려 온다. 꿈이 맞은 것 같았다.

과유불급? 감기 몸살로 보름째 밥도 제대로 못 먹여 사경을 헤매다 이제 겨우 회복할 것 같은 기미가 보이는 나에게 약간의 부담이 되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선뜻 말이 나오지 않는다. 생각 끝에 내 사정 이야기를 다 하고 다른 병원에 가 보시라고 했다.

다른 병원에 알아보니 그냥 놔두면 들어간다고 하기에 그대로 놔두었다. 하루가 지나도 들어가지 않고 더 많이 빠진 것 같다며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걸려 온다. 하는 수 없어 회복이 덜 된 상태로 한 고향에 산다는 이유로 어려운 고통도 함께 나누며 좋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한번 찾아봐 달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얼마 후 얼핏 보기에 30대 후반 같아 보이는 자매 두 분이 약 20kg 삽살개를 안고 병원으로 들어온다. 동생으로 보이는 자매님이 개 주인인 것으로 보였다.

사는 곳도 언니는 시내, 동생은 고향에서 사는 것으로 보였다.
수술대 위에 개를 눕혀 놓고 개 상태를 관찰하고 있는데 언니가 제 보고 일회용 장갑을 껴야 하겠다고 친절히 말한다. 고맙긴 한데 도시나 농촌 어디에서나 수술하려면 당연히 수술용 장갑을 끼고 할 텐데 말의 뉘앙스에 약간의 자괴감을 느꼈다. 당장 장갑을 벗어버리고 싶었지만, 마음을 추스르고 어정쩡한 표정 지으며 수술을 준비한다.

하기야 반려견을 많이 취급하고 있는 시내 동물병원과 소 돼지 등 주로 산업 동물을 많이 취급하고 있는 동물병원과의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말을 가려서 하면 더 좋을 듯싶었다.

남에게 신경 쓰일 만한 말은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하다. 마음을 넓게 먹으면서 언니가 노파심으로 그런 말을 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마음에 새겨둔 자괴감을 잊어버리려고 마음먹었다.
마취 후 페니스를 깨끗이 소독하고 상태를 살펴본다. 페니스가 외부로 빠져나온 지 이틀이 지났다.

먹는 음식에 비하는 게 좀 께름칙하지만, 알기 쉽게 ‘오뎅’이란 이름을 따 붙였다.
오뎅(어묵) 만큼 퉁퉁 부었다. 밖으로 빠져나온 페니스가 흙에 묻어 괴사가 덕지덕지 눌어붙었다. 방금 빠져나왔으면 복원하기가 쉬울 것 같은데 퉁퉁 부은 이 상태로 정상으로 되돌리기는 꽤 힘이 들어 보였다.

굵기가 정상으로 돌아올 때까지 삼투압으로 조절하면서 긴 시간을 끌었다. 힘이 서서히 빠지고 서 있기가 매우 힘들어진다.

겨우 정상으로 돌리고 들어간 페니스가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한 바늘 정도 꿰맸다.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버텨가며 비 오는 듯 땀을 뻘뻘 흘리면서 수술을 무사히 마쳤다.

피로에 지쳐 쓰러졌다. 회복기에 접어든 병세가 다시 도지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끙끙 앓으며 정신없이 쓰러져있는 나를 보고 부아의 톤이 높은 아내의 목소리가 내 귀를 의심케 하였다.

빗발치는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내 말은 콧방귀 뀌듯 듣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더니 이게 무슨 꼴이고 하며 눈물 서린 말로 마구 화살을 날린다. 할 말 없어 꼼짝없이 듣고만 있어야 했다.

밤새도록 끙끙 앓으며 밤을 지새운다. 간간이 덜 아플 때마다 생각이 난다. 아무리 남편이 잘 못 했더라도 사경을 헤매고 있는 남편을 가만히 두고 볼 아내가 어디 있겠느냐?
뒷바라지하며 고생도 많았지만, 하루빨리 낫기를 바라지 않은 아내가 또 어디 있겠느냐? 이런저런 생각이 날 때마다 아내에게 고마운 눈물이 쏟아진다.

그럼에도 개가 수술을 받지 못하고 죽었을지도 모를 개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을 생각하니 수의사로서의 책무를 다했던 것 같아 가슴 뿌듯했다.

삶을 위해 밤낮 뛰어다니면서 동물을 보살피며 한평생 살아온 날들, 힘들어하며 억척스럽게 수술했던 외과 수술도 오늘이 마지막이다.라고 생각하니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를 수 없다.
의심했던 4월의 봄 트라우마도 오늘로 깨끗이 없어지고 우리 가정에도 신의 가호가 충만하기를 빌어본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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