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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화마가 휩쓸고 간 자리

admin 기자 입력 2025.04.21 10:38 수정 2025.04.21 10:38

↑↑ 대구가축병원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봄은 일 년 중 화재 발생률이 가장 높은 계절이다. 그럼에도 새 생명 한 아름 안고 화려하게 찾아오는 봄, 어디쯤 오고 있을까? 귀 기울여 들어본다. 봄 오는 소리가 예전만 같지 않아 기분이 착잡하다.

아직 이른 봄인데 조상님 산소를 찾아가는 가족들의 사진이 신문에 커다랗게 실렸다. 요즘같이 뒤숭숭한 세상에 가족과 함께 산소를 찾아가는 모습 보기가 좋았다.

봄이 오면, 사람들은 환영하며 입춘에 크게 좋은 일이 생기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기를 바란다며 입춘대길 건양다경 같은 좋은 글귀를 기둥과 대문에 써 붙인다. 들녘에도 봄맞이 대청소를 한다며 지난가을에 수확하고 난 뒤 깨끗하게 정리하지 못한 잔업을 하느라 분주하다.

요즘은 농기계 발달로 농사짓기가 한결 수월하다. 하지만 농사를 지으면서 제일 골칫거리가 있다.

고춧대와 비닐 처리 문제다.
논바닥에 있는 비닐은 걷어 한곳에 모아 두면 환경 기관에서 수거해서 가져가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다. 그러나 고춧대는 처리할 곳이 마땅치 않아 불에 태운다.

태울 때마다 산불 낼까 봐 신경을 곤두세운다. 산불 방지를 위해 공무원이 경계하고 있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갈 때쯤 되면 공무원들이 퇴근하고 없을 때 태우고 한다. 어둠이 짙게 내리면 들녘은 여기저기서 고춧대 타는 불꽃이 봄의 무대를 장식해 놓은 듯 휘황찬란하다.

산기슭 밭에 있는 비닐은 처리하기가 매우 곤란하다. 하는 수 없어 불에 태우는 수밖에 없다.
그것도 녹록하지 않다. 농촌에는 80세 넘은 노인이 대부분이다.

시력, 판단력, 민첩성 등이 바닥이다. 비닐을 태우다 불똥이 산으로 날아가도 산불이 날까, 걱정하지 않는다. 날아가는 불똥을 멍청이 지켜보고 보고 있으니 할 말이 없어진다. 조심스럽게 밭에 나오지 말라고 하면 화를 벌컥 내시면서 동네가 떠나가도록 고성을 지르신다.

노인과 불은 찹쌀 궁합인지 알 수 없는 생각이 든다. 겁에 질려 봄에 비닐을 걷을 때는 아버지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실정이다.

봄이 시작되면 동네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산불을 조심하십시오 하는 방송을 확성기 타고 온 동네를 퍼 나른다.

산에 올라갈 때는 담배, 라이터, 인화물질 등을 소지하지 말라고 한다. 지자체에서는 산불 감시원을 선발하여 산불을 감시한다.

산불 감시원은 자동차에 확성기를 매달아 동네 구석구석 돌아다니면서 산불을 조심하라는 방송을 끊임없이 하며 산불 예방에 최선을 다한다.

산불 진화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 임도(林道)까지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도 등산객, 성묘객들의 작은 실수로 산불 내는 것을 보고 가슴이 답답했다.

지난 3월 22일 의성 안평면 야산에서 성묘객의 실화로 산불이 일어난 것을 보았다. 소문에 산소를 정리하다 작은 실수로 산불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산에 갈 때는 담배 라이터 등 인화물질을 가져가지 말라고 입이 닳도록 했음에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발생한 산불은 강한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안동 청송 영양 영덕 등지로 번져 가면서 푸른 산을 새까맣게 탄 숯덩이로 초토화해 버렸다.

활활 타오르는 검붉은 화염의 불길이 수십 미터 높이로 치솟았다. 말로만 듣던 수관화(樹冠火) 현상을 보았다.

건조한 더운 날씨에 부족한 강수량, 최대 풍속 등으로 산불 진화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거기에 절벽과 계곡이 험준한 지형에 강한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날아다니는 ‘도깨비불’이 급속도로 확산시켰던 것으로 전해진다.
산불이 며칠째 계속되었다.

산불 진화 대원들과 소방원들은 기력을 다해 지칠 대로 지쳤다.
3월 27일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진다. “와! 비다” 무기력했던 대원들과 소방원들의 간절한 환호 소리가 불길에 휩싸인 산천에 울려 퍼진다. 맹렬히 타오르던 불길이 잠시 멈칫했다.

단비에도 불구하고 불길은 수그러들지 않은 채 국가유산을 집어삼켰다. 의성에 있는 비지정 문화재 운람사가 전소되고, 신라 문무왕 원년(681년) 해동 화엄종 시조인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 고찰 고운사가 소실되었다.

불상이 있어야 할 그 자리에는 기왓장 조각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 고운사 주지 스님께서는 제가 잘 모시지 못한 탓이라며 애달파하셨다.

고운사는 조계종 16교구의 본사로 의성 안동 영주 봉화 영양에 산재한 60여 곳의 사찰을 관장하는 사찰로 가 근방에서 제일 큰 고찰로 전국에 이름 있는 고찰로 유명하다.

험준한 산세에 산불은 여전히 맹위를 떨친다. 귀중한 문화유산 소실과 인명 피해가 속출하였다.

고운사가 전소되고 안동 하회마을, 병산 서원과 청송 주왕산 국립공원까지 화마가 들이닥친다는 소식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러다 산불이 전국을 덮치면 어떡하지? 엉뚱한 생각에 잠시 아찔했다. 축사가 무너지고 가축이 불에 타 죽고 집과 재산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이재민들은 시커멓게 그을린 집을 어루만지며 앞으로 어떻게 살까? 대성통곡한다.

논바닥 비닐하우스 속에 내일이면 출하할 주렁주렁 달린 딸기도 화염에 싸여 시커멓게 변해버렸다. 봄을 맞은 과수원은 나뭇가지마다 싹 모양이 뱀 개구리 잡아먹은 듯 울룩불룩했다.

성질 급한 녀석은 잎을 뾰족이 내밀어내는 녀석도 있다. 농부는 겨우내 열심히 가꾼 나무들이 제대로 보상을 해 주는 것으로 여기고 한껏 기대가 부풀었다. 그러던 것이 하루아침에 시커먼 숯덩이로 변해 버렸다. 살길이 막막한 농부는 기가 차고 엉기나서 닭똥 같은 눈물 흘리며 말을 잇지 못한다.

의성 산불은 발화한 지 149시간여 만에 완전히 진화되면서 축구장 6만 3천245개 면적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산불은 바람을 타고 빠르게 번지면서 과수원 등을 태우면서 수백 채의 집을 흔적도 없이 삼켜버렸다.

주민·헬기 기장 등 31명의 생명을 잃었고 주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버렸다. 유명을 달리한 진화 대원들, 헬기 기장의 죽음은 너무나 안타깝고 슬프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극한의 재난 앞에 무기력했던 2025년 봄, 의성에서 발생한 ‘괴불 산불’을 보면서 인간은 속수무책임을 실감했다. 산불은 대형화되어 가고 강한 바람, 기후, 고지대, 밀림 등 악조건 속에서 옛 진화 방법으로 대처한다는 것은 한계점을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장비와 기술 등을 도입하여 효율적이고 안전한 대책이 하루빨리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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