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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사람들

동양 고전, 논어에 대한 소회(所懷)

admin 기자 입력 2025.05.07 06:21 수정 2025.05.07 06:21

↑↑ 황성창 시인
ⓒ N군위신문
논어란, 공자와 그 제자들이 세상 사는 이치를 문답식 토론한 내용을 모은 책이다.

유교의 사상, 철학, 윤리가 담긴 경서로, 북송시대 정이(程頤)가 대학, 논어, 맹자, 중용을 총칭하여 사서라 불렀다. 논어에는 공자의 솔선수범, 배려, 겸손함, 언행일치 등의 삶의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논어는 공자와 그 제자들이 삶에 대한 경험과 지식, 사회와 국가의 나아갈 길에 대한 집단지성의 총합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논어를 읽음으로써 정치, 도덕, 인간관계, 교육 등에 관한 지식과 지혜를 얻을 수 있어 너도나도 논어를 열중하고 있는 것 같다.

송나라의 재상이었던 조보는 “논어의 절반만 읽어도 천하를 다룰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 한 다산 정약용은 평생에 걸쳐 논어를 공부하며 강진 유배 시절에 논어를 해석한 ’논어고금주(論語古今註)‘를 저술했다.

현 21세기 첨단시대에도 기업 총수들을 비롯해 사회단체 각계 지도층 인사들이 ’논어‘를 우리 삶의 최고의 지침서로 꼽으며 지인에게도 이름난 이 경전을 머뭇거림 없이 추천하는 책이다.

그렇다면 ’논어‘는 2500여 년이 지나도록 수많은 사람에게 큰 울림을 주고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공자는 평생에 걸쳐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문제의 답을 얻기 위해 몸으로 부딪치며 경험하고 온 힘을 쏟아 연구했다.

또 주나라의 예악(禮樂)이 무너지고 각 제후국이 패권을 다투는 약육강식의 대혼란기 춘추전국시대에 공자와 그 제자들은 이 사회가 어디로 나아가야 옳은 방향인지 문제의 답을 얻기 위해 문답식으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토론한 흔적들이 역력하다.

공자는 근면하고 박학다식하며 상대의 눈높이에 맞추어 가르침을 베푸는 학자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갖은 고생을 하며 생계를 꾸려가면서도 15세에 학문에 뜻을 세우고 배우며 노력해 30세에는 학자로서 이름을 얻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에게 배운 제자가 무려 3000여 명에 이르렀다. 공자 자신은 스승에겐 배운 적은 없었지만, ”열 가구 정도의 아주 작은 마을에서 나처럼 충실하고 신실한 사람은 있었지만, 나만큼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라고 스스로 말할 정도로 배움에 정진해 자신의 학문의 체계를 거대한 만리장성처럼 세웠다.

공자는 역사의 기록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정명론(正名論)을 체계화했다. 정명론의 핵심은 군자는 군자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며,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란 말로 요약된다. 수많은 지식을 통합해 유학의 기틀을 마련하고 교육론을 펼쳐 큰 명성을 얻었다.

그런데도 공자는 ”나는 스스로 창작하지 않고 옛것을 정리하고 전하는 것이다“ 라고 말하며 항상 겸손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

공자는 당시의 복잡다단한 각종 사회적 문제의 해결책으로 인(仁)과 예(禮), 즉 타인에 대한 사랑과 예의를 으뜸으로 제시했다.

이익 추구와 살벌한 경쟁이 만연한 지금 우리의 현실적 사회 현상이 공자 시대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논어의 가르침은 우리의 삶과 사회 저변에서 일어나는 난해한 문제를 쉽게 풀어나갈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논어의 학문적 사상과 그 철학적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논어는 한 번은 꼭 읽어야 할 책인데도 읽기가 쉽지 않다. 같은 주제를 담고 있는 문장들이 마치 파편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또 공자와 제자들의 문답식 대화의 배경을 쉽게 가늠할 수 없어 문장만으로는 의미 파악이 어려워 필자처럼 논어에 문외한인 초짜들은 더더욱 읽기가 어려워 쉽게 근접할 수 없는 ‘뜨거운 감자’ 같은 책이다.

공자는 아는 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고 실천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그런 만큼 필자도 논어의 주옥같은 어록을 더듬어 읽다가 중요한 대목엔 밑줄도 긋고, 필사로 노트에 옮겨 쓰며 마음에 다지고 새겼지만, 막상 인용하려면 긴가민가해서 매번 헷갈린다. 언제든 삶의 언저리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논어의 문장 문장을 부단히 익혀 풍진에 삭은 내 마음 다스림에 빛과 소금이 되도록 갈구할 생각이다.

공자는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즉 옛것을 익혀서 새로운 것을 만들자“는 의미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은 선대의 업적을 여러 각도로 생각하고 깊게 새겨 자신의 것으로 만든 다음 새로운 이론이나 논리로 자신만의 업적을 만들어 낸 사람들이다.

뉴턴도 “내가 멀리 보았다면 그것은 옛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듯이 이런 게 온고지신의 참뜻이 아닐까 싶다.

근래 필자와 후배들이 추진하는 사업은 고향 고경수(高慶壽) 어른의 업적을 새롭게 조명할 필요성과 그 목적을 위해 ‘추모 기림비’ 건립과 조경사업 구상이다.

사업 추진과 동시에 ‘고경수길’로 명명(命名) 받고자 당국이나 지역 협의체에 협력을 구하고 추진하는 일, 또한 온고지신의 방책이라 여긴다. 그분의 고귀한 정신적 유산을 승계 보존함으로써 그 예를 다 갖추면, 우리 고장의 발전이나 새로운 희망의 찬란한 지평이 열릴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공자는 춘추전국시대의 대혼란 시기에 14년 동안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여러 나라의 제후들을 찾아 인의(仁義)와 왕도(王道)정치를 설교했으나 받아 드려지지 않자 자기 고국인 노나라로 돌아와 74세에 세상을 뜰 때까지 제자들과 학문의 연구와 토론, 자기 수양에만 전념했다.

하지만 공자의 유가(儒家)는 약 2000년 동안 중국을 지배하는 이념적 철학이 되었다. 공자 사망 100년 후에 맹자가 공자를 성인(聖人)이라 불렀다. 한나라에 이르러선 유교가 국교로 지정되었다. 이후 2000년 동안 논어를 주축으로 중국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

책이라면 고전이든 뭐든 많이 읽을수록 좋은 것이다. 인생에서 독서경험은 ‘망루’ 높이와 같다는 말이 있다. 망루가 높을수록 멀리 볼 수 있고 또 먼 장래에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오늘도 인생의 망루를 높이기 위해 ‘논어 집주’ 한 권 가방에 넣고 시민 강좌 시간에 맞춰 가고 있다.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더라도 할 수 있는 그 날까지.

황성창 시인/수필가
재부의흥향우회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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