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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욕심쟁이 늙은이, 희망찬 도전

admin 기자 입력 2025.06.05 09:56 수정 2025.06.05 09:56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내 직업을 천직으로 알고 앞만 보고 달려온 나를 잠에서 깨운다. 따뜻한 어느 봄날 축구장을 찾았다. 젊음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넓은 축구장은 발 디딜 틈 없이 빽빽하다.

넘실대는 파도 물결을 타고 마음껏 즐기는 젊은이들의 활기찬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흥이 절로 난다.

선수들이 상대편 골문을 두드릴 때마다 우레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온다. 축구장은 한순간 흥분의 도가니로 빠진다.

이럴 때 나와 같이 해 줄 수 있는 사람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몸은 망가져도 마음은 젊은이 못지않다. 축 처져있던 몸과 마음이 한결 가볍고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여진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봄비가 촉촉이 내리는 어느 날 전국 서예대전 수상작 전시회가 군위문화원 갤러리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선 듯 가보고 싶었지만, 서예에 전무한 나는 마음이 움츠려진다.

해설사가 열심히 설명해도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평소 글솜씨가 없어 글을 써도 마음에 들지 않아 짧은 생각에 서예를 잘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미련을 갖고 전시장을 찾았다.

전시장 안은 묵향으로 가득했다. 처음 맡아본 묵향에 나는 어리둥절했다. 교실만 한 넓은 전시장 벽에는 유명한 서예가들의 작품이 빼곡히 걸려있다.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다.

한자로 쓴 작품은 하나도 읽을 수 없었다. 그나마 벽 한가운데 한글로 쓴 작품이 서너 개가 걸려있어서 다행이었다. 글체에는 행서, 해서, 전서, 예서, 초서 등 오체가 있다는 걸 들어서 알았지만, 어떤 글체가 예서체인지 초서체인지 알 수 없어 멋쩍게 전시장 밖을 빠져나왔다. 전시장을 뒤돌아보면서 남이 써 놓은 글을 흉이라도 낼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창창한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혜안으로 세상을 들여다본다.

끝없이 펼쳐진 넓은 세상에 보물이 이렇게 많이 있는 줄 꿈에도 몰랐다. 여기저기 즐비하게 있어도 찾지 못해 고만고만하게 사는 것이 안타까웠다.

신신애의 ‘세상은 요지경’ 세상은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눈만 밝으면 즐겁게 사는 이 세상에 수두룩한 보물 하나 찾지 못하고 허덕이며 살고 있는 자신이 너무나 초라해 보였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성경에 있다. 세상이 몰라보게 변한 문을 마음껏 두드려 본다. 노인을 위한 복지가 장막을 뚫고 안개 속에서 서서히 나타난다.

내 세상만 훌륭한 줄 알았지 남의 세상이 이렇게 넓고 살기 좋은 줄 몰랐다. 우물 안 개구리 신세가 되었다. 한숨을 내쉬면서 홀쭉한 얼굴로, 세상 밖으로 엉금엉금 기어 나온다.

광활한 대지 위에 빨강 노랑 파랑 주머니 3개가 눈앞에 불쑥 나타난다.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풀어보고 싶었다. 맨 먼저 빨강 주머니를 풀어보았다.

군위 문화원 생활문화센터에서 한국화, 사군자, 시조창, 한문 서예, 고전 한문 등 다섯 개 강좌가 있다는 것을 상세히 적어 놓은 쪽지가 들어있었다.

모두가 낯설지만 다 배우고 싶었다. 왜냐하면 시조창과 사군자는 늙어도 부를 수 있고 또 사군자는 책상에 앉아 여가 생활로 그림 그리며 여생을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노랑 주머니를 풀어 보았다. 그 속에는 군위 삼국유사 도서관이라고 쓰인 웅장한 건물 사진이 들어있었다.

건물 안을 조심스레 들여다보았다. 통기타, 어반스케치, 서예 교실, 생활 풍수 등 아름다운 보석이 12개 있었다. 기타에 대한 기초 지식이라곤 전무하면서도 배우고 싶은 생각이 꿀떡 같았다.

기타에 대한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또 생각해 보았다. 미래의 세상을 그려보면서 기타를 치면서 친구들과 어울려 즐겁게 멋스럽게 살고 싶은 젊음의 동경이 마음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

마지막 세 번째 파랑 주머니를 열어 보았다. 노인 복지관이란 이름이 선명하게 쓰인 우람한 건물이 안갯속을 헤치며 서서히 나타난다.

건물 밖에는 차를 편안하게 주차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건물 안에는 희망의 등불인 서예 한글반, 서예 한자 반, 컴퓨터반, 가요 교실, 아코디언, 하모니카 등 14개의 취미 여가와 평생교육을 받을 수 있는 도표를 만들어 놓았다. 노인을 위한 복지관이라지만, 과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3개의 주머니 속에서 진주를 찾아내야 한다. 모든 것이 진주 같아 보였다. 그중에 제일인 진주를 찾는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 하기보다 더 어려웠다.

노후에 하고 싶은 것만 골랐다.
사군자, 시조창, 통기타, 서예 한글 등을 어렵사리 찾았다. 사군자(四君子)는 한자 문화권에서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등은 곧은 절개와 굳은 의지를 의미하며 한자를 따라 매란국죽이라고 부른다.

빼어난 난초에 현혹되어 그려보고 싶었다. 기초적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뽐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그리고 시조창(時調唱)은 우리나라 고유의 정형시인 시조시(時調詩)를 가사로 하여 부르는 노래다.

그래서 시조창은 혼자면 심심풀이요, 둘이면 화답 놀이라.
셋이면 돌림 놀이요, 봄이면 꽃놀이요, 밤이면 달 놀이라. 그리우면 임 타령이요, 술 취하면 흥타령이라 혼자 흥얼거리며 부르기도 했다.

시조창은 남들이 듣기 좋으라고 하는 음악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수양하는 음악이라는데 큰 의미를 둘 수 있다는 점에 마음이 끌렸다. 그뿐만 아니라 늙어지면 외로움을 느낄 때마다 시조창을 읊조리면서 세월을 낚으면 더욱 좋을 듯했다.

꿈도 많았던 젊은 시절. 기타를 둘러매고 친구들과 같이 산에 올라 불타는 단풍나무 그늘에 앉아 신나게 기타를 치며 젊음을 불태우고 싶었다.
이제 와서 체력과 지식의 한계를 느끼면서 끝까지 완주하지 못했던 것이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럼에도 피라미 한두 마리 잡았던 것에 희망을 잃지 않았다. 클라맨타인, 과수원 길, 오빠 생각 등 주옥같은 노래를 잊을 수 없어 매일 같이 코드를 더듬거리며 6개 줄을 퉁기고 한다.
때로는 글을 써도 마음에 들지 않아 늘 고민해 왔다. 글은 마음의 거울이라 한다. 한글 서예를 하게 되면 글씨를 좀 더 잘 쓸 수 있을지 하는 생각으로 마음을 결정하였다.

문학이란 쉬운 게 없지만 한글 서예도 만만찮았다. 처음부터 신경이 곤두세워졌다. 옆에 있는 도반들은 5, 6여 년 넘도록 글을 써왔다고 한다. 붓을 처음 잡아 본 나는 기가 죽어 어찌해야 할지 망설였다. 5, 6년 되면 나도 도반들처럼 잘 쓸 수 있을 거라 무작정 생각하고 마음을 추슬렀다.

다섯 개 진주 중 한 개만 빛을 보지 못했지만, 나머지 4개는 하늘나라까지 데리고 갈 작정이다. 모든 것이 미완성이지만 욕심쟁이 늙은이의 희망찬 도전은 여기에서 끝났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세월을 낚을 수 있을 때까지 도전은 계속 진행형이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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