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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우리의 만남, 우리의 인연

admin 기자 입력 2025.06.05 09:58 수정 2025.06.05 09:58

↑↑ 황성창 시인
ⓒ N군위신문
“아내는 76이고/나는 80입니다//지금은/아침저녁으로/어깨를 나란히 하고/걸어가지만/속으로 다투기도/많이 다툰 사이입니다” 이 문장은 나의 독백이 아니다. 이생진 시인의 시 ‘아내와 나 사이’에서 따온 앞부분이다.

지난 5월 가정의 달, 부부의 날을 맞이하여 우리 부부가 살아온 지난날과 오늘 노년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돌이켜 보는 시간에 문득 ‘아내와 나 사이’의 시가 떠올랐다.

이 시는 흡사 우리 노부부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기억을 잠깐씩 흘리고 사는 우리네 자화상을 보는 듯해 가슴을 아렸다.

가끔 아내에게 “당신 일생에 꼭 하고 싶었던 ‘이상’을 결혼함으로써 이루지 못한‘이상’이 있다면 그게 어떤 건지” 묻고 싶었지만, 아내가 쏟아낼 대답의 공포에 감히 입도 뻥끗하지 못하고 보낸 세월이 50년이다.

그 세월 속에서 아내는 감당키 어려운 삶에 치명적 실수들이 매설된 지뢰밭을 걷는 듯한 일상의 연속이라 이상 같은 건 언감생심이지 않았을까?

그것도 모자라 만년에 이르기까지 부부라는 인연을 핑계로 일방통행만 고집한 쪼잔한 늙은이가 지금에 뭐 할 말 있겠냐. 죽은 듯 엎드려 있을 판이다.

후박하던 아내도 나이 탓인지 가끔 차가운 눈총을 쏘아대며 한 마디씩 뼈아프게 쥐어박는다. 그래도 어쩌겠나. 삼식이 주제에 대꾸도 참아야지.

그럴지언정 지나온 우리들의 삶은 때론 말없이 행복할 때도 있었다.
삶이란 일장춘몽에 불과하다지만 그러함에도 살아서 좋았다.

새벽의 상큼한 공기, 흔들리는 꽃에서 이는 향긋한 바람, 해질녘 우러나는 오늘 하루의 냄새, 어느 하루도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내일의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그런대로 살 가치가 충분하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한 미래 때문에 오늘을 망치지 말자. 한세상 백 년도 수유가 아니던가. 로댕처럼 골똘하게 생각하는 것보다 단순하게 살고 싶다.

우리 부부가 갈등을 피하고 사랑을 키워가며 살아가는 방법이 그리 거창하지도, 어렵지 않은 것을 옛적엔 왜 몰랐을까? 서로가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 서로의 욕구와 원하는 게 뭔지 들어주는 마음가짐. 나아가 저마다 살아온 발자취까지 듣고 들어주는 완벽한 소통이 있었다면 좋았지 않았을까.

서로의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역지사지로 살았으면, 비록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많다손 치더라도 정신적으론 부자처럼 한평생을 금실 좋은 부부의 연으로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먹먹함이 가슴에 치솟는다.

인생은 참 길다. 장편소설보다도 훨씬 더 길다. 긴 인생이라 2막이 아니라 3막, 4막일 수도 있다. 괴테가 유명한 희곡 ‘파우스트’를 완성한 것은 나이 80이 넘어서였고,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성당의 조각 ‘천장화’를 70세가 넘어 완성했다. 모세도 80세에 조국의 민족을 위해 장정 60만을 이끌고 애급을 탈출 가나안 복지를 향해 유대 민족을 구출하는 대역사를 창조했다.

헤밍웨이는 어떤가. 노벨문학상 수상작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은 혼자 바다에 나가 거대한 청새치를 낚아, 온 정력을 다해 뭍에까지 끌어오는 데는 성공하나 상어 떼로부터 지키는 데는 실패한다. 여기에서 실패는 중요하지 않다.

노인에 있어 문제는 인생의 무기력을 거부하고 체력과 용기와 인내라는 남성적 가치를 유지하는 것이다. 인생에 최선을 다하는 위인들의 프로정신을 나는 배웠던가. 이 나이 되도록 부끄럽지만, 번득한 것 하나 건사하지 못했다.

부부는 노년에 이를수록 의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인생 파트너다. 그런 만큼 적당한 밀당을 유지하면서 서로 불편 끼치지 않고 자기 스케줄에 맞춰 생활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일본의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남이 안 보면 갖다버리고 싶은 게 가족”이라고 했다.

부부나 가족은 너무 가깝기에 칭얼대고 무리하게 거는 기대가 크다. 그게 도리어 상처를 준다는 것이다. ‘당신 없이 못 살아’라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상대를 지지고 볶고 후비면 되겠나.

우리 부부는 각자 인생 추구하며 산 지 오래다.
나의 중요한 나날의 일과는 문학의 글 밭에서 이삭줍기하듯 글감을 찾는 일이다. 쭉정이라도 하나 챙기지 못한 공친 날도, 허탕 짚은 날에도 그 시간이 무의미하진 않다.

그런대로 사색의 여유가 있어 살만하다. 마나님 역시 1주일 3, 4일은 안팎 일로 바쁘다. 동네 모임에 참석하랴, 국가고시 자격증 따랴 세월 가는 줄 모른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냐고 물어봤다.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전혀 아니올시다’라는 대답이다. 오히려 바쁘게 시간을 보내니 에너지가 팡팡 쏟아진다니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누구나 빈손으로 와 소설 같은 한 편의 얘기들을 세상에 뿌리며 살지. 자신에게 실망하지 마. 모든 걸 잘할 순 없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면 돼. 인생은 지금이야 아모르 파티∼”이 노랫말은 ’아모르 파티‘의 1절 가사다. 노랫말이 우째 내 운명과 비슷해 짝이다.

죽어서 돈을 싸 들고 가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인생은 공수래공수거 아니던가. 이제 무얼 바꾸겠나 이만큼 산 것도 다행스러워 우리는 지금처럼 이대로 쭈욱~ 살기로 했다.

황성창 시인/수필가
재부의흥면향우회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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