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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춘수 원장 |
| ⓒ N군위신문 |
인간의 본능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살면 될걸,” 돈 한 푼도 없는 주제에 굳이 있는 것처럼 남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속내를 알 수 없다.
그렇다고 인간의 속성에서 벗어나 속이고, 속고, 속은 척하며 힘든 세상을 버텨가며 살아갈 수 없다.
때로는 속된 말로 개뿔도 없으면서 있는 척하며 살아가는 허풍 세상인가 보다, 에라! 모르겠다.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 베고 누우니 대장부 부러울 게 없다.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즐기며 사는 세상이 훨씬 더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일상에서 몸을 서로 비비대고 지나쳐가도 아무렇지 않은 듯 지나가는 생활하는 습관에 마음이 놓인다.
살다 보면 집에 돈 한 푼 없고 갑자기 돈이 필요할 때 있다.
급해서 빌리려 갈 곳은 이웃집뿐이다. 그래서 이웃사촌이라 하는가 보다. 이웃집은 언제나 여유롭고 생활이 넉넉하게 보여 잘 살아 보였다.
마음 편히 빌리려 갔다. 생각 의외였다. 없어서 빌려드릴 수 없어 미안하다고 하면 이웃집 간 서로의 예의는 다 한 것 같아 보였다. 그럼에도 없다고 하면 될 걸 누가 뭐랬냐 굳이 누구 집에 빌려주고 없다고 한다.
우연 중에 돈을 빌려 간 그 사람을 길거리에서 만났다. 일상 이야기에 돈 이야기 나왔다.
자존심 문제로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대답하기를 그 집에 돈 빌리려 간 적도 없고 돈 빌려 온 적도 없다고 한다.
세상천지에 이런 일이! 없으면 없다고 하면 될 터인데 돈 빌려준 적도 없는 사람에 돈을 빌려주고 없다고 한다.
차라리 미워서 돈 있어도 빌려줄 수 없다고 하면 좋을 텐데. 라고 생각했다. 돈 없어 빌리려 간 내잘 못도 있지만, 기가 막혀 순간 황당하였다. 겉으로 허허 웃으며 넘겼지만, 그의 모습은 내 마음에 깊이 새겨지고 있다.
나이는 같아도 학업과 군에 갔다 오너라 사회에 첫발을 디딘 것이 친구들보다 많이 늦었다.
어느 날 이웃집에 있는 친구가 뒷짐을 하고 우리 집에 놀러 왔다. 그날따라 손님이 없어 조용했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더니 이래서 먹고살겠나? 시건방진 소리 같아 약간 어색하게 들렸다. 듣기 거북한 말 한마디 내뱉고선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같이 어울릴 수 없는 처지임에도 친구라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이웃집 바로 옆에 친구가 경영하는 식당이 있었다.
어느 추운 겨울 여럿이 모여 짬뽕을 시켜 먹었다. 앉으면 돈 이야기뿐인 친구가 벌떡 일어나더니 짬뽕값을 자기가 낸다고 한다.
짬뽕값을 내면서 식당이 분주했다. 불룩한 지갑을 꺼내 들고, 얼마냐고 친구한테 두 번 세 번 묻는다. 눈치 빠른 친구는 덩달아 같이 고성을 지르며 얼마라고 말한다.
주위 사람들이 친구가 꺼내던 불룩한 지갑을 쳐다본다. 집으로 돌아와서 사람은 남 눈을 위해 사는 건지 자신을 위해 사는 건지 왜 사는 건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어느 때보다도 자존심이 강한 시대에 살고 있다. 예부터 남 잘되는 꼴은 못 본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 남에게 지고는 못 산다. 고하는 말들이 수두룩하다. 자신들의 무식함과 부도덕한 탐욕 때문에 의도적으로 위장을 하고 있는 말인 것 같다.
이러한 고리타분한 생각으로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니 한심스럽다. 그런가 하며 지금은 더더욱 두꺼운 가면을 쓰고도 자기주장만을 내세우고 살아가는 꼴을 보면 개탄스러울 짝이 없다.
한국전쟁으로 우리 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피해가 컸다. 하루에 밥 한 끼도 못 먹었을 때 있었다. 다행스럽게 양돈 사업의 발달로 어려운 살림을 윤택한 삶으로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지역은 양돈으로 성공한 지역이다. 양돈을 같이 시작했어도 경제적으로 능력 있는 대표는 그런대로 잘 지내고 있지만, 어렵게 살아가는 대표도 있었다. 한 집에는 다 큰 남매를 두고 있다.
대학에 진학할 형편이 못 되어 진학을 포기하고 아들은 아버지 사업에 딸은 신부 수업을 하며 지냈다. 몇 해가 지나고 사업이 날로 번창하여 생활이 약간 여유로움을 찾게 되었다. 형편이 어려울 때 찾아오는 사람 없었는데 지금은 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한다.
다 큰 딸을 둔 어머니는 생활이 어려워 딸의 혼사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겨우 안정을 찾고 나서야 중매쟁이한테 중매를 부탁했다. 어느 날 중매쟁이가 좋은 혼처가 있다고 하면서 찾아왔다.
신랑감 나이는 몇 살이고 직업은 회사원이며 높은 자리에 있고 키도 훤칠하며 인물도 있다. 좋은 신랑감이라고 생각하니 잘 생각해 보라고 말하고서는 갔다.
중매쟁이는 보통 소개할 때 약간 부풀려서 한다고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혹시나 하고 어머니는 며칠간 골똘히 생각하며 여기저기 알아보고 신랑감을 보기로 했다.
딸에 비하니 과분에 넘치는 신랑감 같았다. 신랑감은 대학교도 나오고 직장도 좋고 높은 자리에 있고 해서 남들이 탐낼 정도로 멋진 신랑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딸은 대학교도 안 나오고 아는 것이라고는 가사일 뿐이었다.
어머니는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 반 우려 반으로 큰 고민에 빠졌다. 어머니는 골똘히 생각한 끝에 결혼을 허락하였다.
시골에서 도시로 시집가면 시집 잘 간다고 야단했을 때였다.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식을 성대히 치렀다. 몇 해가 지나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여름 시집간 딸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괴나리봇짐 하나 들고 친정집으로 돌아온다.
어머니는 힘없이 걸어오는 딸을 왈칵 껴안고 눈물 흘리며 한참 동안 말을 하지 못한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고 했다. 내 잘못이다. 내 잘못이다. 가슴을 치며 통곡한다. 중매쟁이의 거품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남이야 죽든 말든 자기만 살면 된다는 욕심 덩어리가 가득 들어있을지도 모른다.
대구가축병원 권춘수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