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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병동 811호

admin 기자 입력 2025.08.20 11:15 수정 2025.08.20 11:15

↑↑ 황성창 작가
ⓒ N군위신문
오늘 온종일 진흙탕에 빠져 허우적거린 느낌이다. 한두 달 전부터 몸이 찌뿌드드하고 오른쪽 옆구리가 뜨끔거렸다.

80 넘도록 하루 같이 부려먹었으니 오장육부인들 어디 성한 곳 있겠나. 대장간에서 담금질로 만든 단단한 쇠鐵도 아닌데.

오장육부가 휴식을 빌미로 순간이라도 멈추었다간 사람 목숨을 경각에 저승길 보낼 판이니 어찌 쉴 수가 있겠나.

바다의 파도가 한 번인 들 멈춘 걸 보았던가. 사람도 마찬가지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으뜸의 생명을 위해 끊임없이 물레방아 돌 듯이 도는 게 오장육부의 고단한 운명이다.

근래에 내 몸이 오래된 툇마루처럼 뒤틀리며, 벌어져 여기저기를 당겨도 보고 맞춰도 봤지만, 딱히 집히는 데가 없었다. 대수롭잖게 여기다 병을 코끼리만큼이나 덩치를 키울까 덜컥 겁이 나서 동네 병원을 찾았다. 원장에게 근래 전반적인 컨디션을 말했더니 몇 가지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잠시 후 복부 시티 촬영 등 몇 가지 검사 결과가 나왔다. 원장 표정이 심상찮았다.
담즙에 의한 복막염? 불명 불상의 염증으로 인한 복통? 등을 들면서 아무래도 종합병원의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특히 오늘이 토요일이라 한밤중에 무슨 변고라도 생기면 곤란하니 즉시 119를 불러 가길 등 떠밀 듯이 엄포성으로 당부했다.

서둘러 발급해준 진료의뢰서를 건네받고 떨떠름한 생각으로 병원 문을 나섰다. 119를 불러야 하나 마나 망설이는 사이 아내가 나보다 더 불안했던지 의논 없이 119에 도움을 요청했다.

난생처음 119를 불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건장한 119 구급대원 3명이 집에 도착했다. 이렇게 신속하게 긴급출동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재난 발생 신고도 아닌데 말이다. 매스컴을 통해 119 대원들의 목숨 건 활약상에 박수를 보낸 적은 간혹 있었으나 오늘 필자가 실체적으로 체험하고 보니 119 소방구급대의 민첩한 민원처리에 감동했다.

발급받은 진료의뢰서를 구급대원에게 제시했다. 진료의뢰서를 본 대원은 응급실 의사 못잖게 혈압, 호홉, 맥박, 발열 여부를 재빠르게 채크를 했다.

한편 다른 한 대원은 응급환자를 수용할 병원을 여기저기 찾으랴 40∼50분이나 족히 걸렸다.
만약 경각을 다투는 응급환자였다면, 골던 타임을 놓칠 만큼의 긴 시간이 소요됐다.
응급환자를 수용할 병원의 권역별 적색 코드 버튼만 누르면 즉각 응답하는 AI 로봇의 설치가 시급하다는 걸 느꼈다.

근근이 부산 수영구에 있는 센텀종합병원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3시를 조금 지나서다.
병원 이동구급대로 옮겨진 나는 의료진이 어디에서 무슨 검사를 받든 하는 대로 몸을 맡겨 버렸다. 마음대로 하시라는 무언의 동의였다. 얼마 후 배정받은 병실까지 이동구급대에 누운 채 실려 왔다.

811호 병실에 들어선 후 내가 입었던 옷에서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배우처럼 진짜 환자로 탈바꿈했다. 극과 극의 모습이다. 병의 위급성을 떠나 전신에 힘이 빠지고 맥이 확 풀렸다.
오늘 이름 모를 병마의 갈퀴에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목덜미가 잡혀 자유는 결박당했다.

오직 담당 의사의 치료 스케줄에 따라야 하는 멀뚱멀뚱한 환자로 전락해 버렸다.
단 몇 시간 사이에 어두컴컴한 긴 터널 속으로 빠져 들어온 느낌이다. 입원 절차를 마친 아내와 딸 내외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든 멍청한 나를 두고 병원을 떠났다. 하기야 아내나 있고 자식들이 많고 또 효자·효녀인들 이 아비의 아픔을 대신 앓아줄 순 없지 않은가.

오도카니 떨어진 마음에 외로움이란 감정이 쓰나미처럼 들이닥쳤다. 순간에 헤어진 가족의 정이 뭐기에 그리움이란 게 폭포수처럼 이토록 울컥 치밀어오르는지.

처음 대면한 간호사가 ‘어르신 이 시간 이후 금식입니다’라며 빨간 금식 스티커를 병상 머리맡에 붙였다. 이어 의료 폴대에 병마와 싸울 약물통을 주렁주렁 매단 후 내 팔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톡톡 치다 주사기를 쉽게 꽂았다.

죽기 살기 참고 버티라는 비장의 약물까지 투입했다. 이 나이에 버티기 힘든 또 한 번의 투병이 시작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약물 주입과 함께 전신을 돌았다.

이슥한 밤 하현달 빛에 쌓인 적막함이 감도는 병동의 첫 밤을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어 밤새 뒤척거렸다.

필자는 오래전 90년대에 말기 간암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요즘처럼 의술이 발달하지 못해 말기 암 환자의 경우 수술 후 예후도 나빴고 생존율이 극히 저조할 때다. 말기 암 환자가 느끼는 감정은 혼자 흐느끼고 눈물을 감추어야 하는 고독한 절망이다.

그런 절망적인 삶과 죽음의 문턱에서 어딜 가야 하나 동서남북을 헤매었다. 그때 기적이란 신에 의해 이승으로 되돌아올 수 있는 행운의 티켓을 얻었다.

북망산 가는 길이 그리도 멀고 험준해 혼자 가게 내버려 둘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인명은 재천’이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인간의 힘으로 어찌해 볼 수 없고 하늘의 뜻에 따라야 한다는 말인 듯하다.

그래서 ‘운명은 요지경’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처럼 병상의 쓰린 고통을 겪고 회생한 필자는 지금의 삶을 인생 2막이라 여겨 초연하게 살려고 한다. 그런 의미로 필자는 2019년에 6월에 “임종 과정에 있다는 의학적 판단을 받은 경우라면,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것에 동의합니다”라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보건 당국에 제출했다.

연명의료 중단에 서명하면 임종 과정에 놓였을 때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홉기 착용 등 존엄한 죽음을 위해 중단할 수 있다. 2018년 2월 4일 처음 시행된 이후 2024년 9월을 기준 253만5천258명이 서명했다.

우리나라 인구 약 5%의 사람들이 서약한 셈이다.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아등바등 살지 않겠다는 깊은 뜻일 성싶다.

다만, 사는 날까지 노년을 초라하게 보내지 않도록 여유를 가지는 자세와 남을 포용하고 사랑할 수 있는 모습을 유지하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우리가 기억에 남는 작품에서 어느 부분이 가장 중요할까? 작품에 따라 읽는 이에 따라 중요하게 느끼는 문장은 각기 다르다.

그러나 한 작품의 마지막 문장은 그 작품이 독자와 이별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끝 문장은 독자의 향후 기억을 좌우할 것이다. 그뿐이랴, 마지막 문장은 작품의 맥락을 바꿀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생도 그렇지 않던가. 인생이 이렇듯 어려운 것은, 나이가 들면 총기가 흐려진 끝에 고집 불통 늙은이로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마지막을 잘 마무리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작품의 마지막 멋진 문장처럼 병상에 누워 생각하니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옷소매를 스쳐 지나간 인연들의 기억에 남는 사람으로, 정신을 가다듬고 살아야겠다는 걸 새삼 다짐했다.

황성창 시인/수필가
재부의흥향우회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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