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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일보 배철한 국장 |
| ⓒ N군위신문 |
말은 입으로 쏘는 총과 같다.
한마디 말해서 말이 사람을 죽인다. 총도 칼도 들지 않았지만, 결과는 같다. 대신 우리는 손쉽게 ‘공유’ 버튼을 누르고, 가볍게 ‘좋아요’를 누른다. 그리고 누군가의 인생은 무너진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요즘 사람들은 유언비어에 물든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꾸며낸 거짓말’이 넘쳐난다. 그런데 더 무서운 건, 사람들이 그걸 진실보다 더 잘 믿는다는 것이다. 팩트는 지루하다. 유언비어는 자극적이다.
결국 승자는 늘 후자다.
“누가 그러더라.” “봤대.” “카톡에 떴대.” 한 문장에 책임지는 이는 없다. 그저 흘러넘치는 말들. 정확한 출처도, 맥락도, 근거도 없다. 하지만 그 말은 또다른 말로 부풀려지고, 그 부풀려진 말이 또 다른 혐오와 오해를 낳는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말을 소비하는 데 너무 익숙해졌다. 말은 정보가 아니라 콘텐츠가 됐다. 남의 고통도, 상처도, 루머도 ‘재밌는 이야기’로 가공된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건 단 하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느냐다 즉 조회수다.
누구도 멈추지 않는다. 멈추면 뒤처지기 때문이다.
지방선거가 다가온다. 군위 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누가 안 나온다더라.” “누가 지지율 꼴찌라더라.” “지지자들이 다 돌아섰대.” 확인할 길도 없고, 확인 하려는 사람도 없다. 그저 떠돈다. 그리고 퍼진다.
정치는 요동치고, 사람들은 흔들린다. 말이 만든 풍경이다.말은 본데 색이 없다. 그 말을 쓰는 사람이 색을 입힌다. 지금 우리가 쓰는 말의 색은 회색에 가깝다. 밝지도, 어둡지도 않다. 그저 무책임하고 건조하다.
말에도 색이 있다면, 오늘 우리가 쓰는 말들은 아마 회색에 가까울 것이다. 밝지도 않고, 그렇다고 어둡지도 않다. 무책임하고, 건조하며, 때로는 잔인하다.
우리는 참 쉽게 말한다. 누가 이혼했대, 누가 잘렸대, 누가 어디서 뭐 했대. 사실이라 해도, 그 말을 꼭 해야 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남의 말을 좋게 하자.” 지극히 단순한 말. 하지만 지금 시대에는 거의 혁명적인 선언이다.
과거엔 말이 곧 신용이었다. “저 사람 말은 믿을 만하다”는 평가가 중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말의 무게보다, 말의 속도가 중요해졌다. 빠르게 던진 말은 이미 퍼졌고, 늦게 나오는 해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말이 씨가 된다.” 어른들이 자주 하던 말이다. 들어도 그저 흘려보냈다. 하지만 지금, 그 말이 다시 생각난다. 유언비어가 씨앗이 돼 혐오가 되고, 그 혐오가 결국 누군가의 삶을 뒤흔든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말을 씨로 심어야 할까. 상처를 덮는 말, 상대를 이해하려는 말, 함께 살아가려는 말. 그런 말들을 심고, 키워야 하지 않을까. 좋은 말은 좀 느리다. 확산력도 약하다. 사람들의 관심도 적다. 하지만 오래 간다. 한 사람의 마음에 닿아, 오래 남는다.
‘말’이라는 도구는 인간에게만 주어진 선물이다. 하지만 그 선물은 이제 독이 되기도 한다. 말은 칭찬이 될 수도, 비수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남의 실수를 비꼬기 전에, 남의 상처를 전시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그리고 만약 그 말을 꼭 해야 한다면, 최소한 좋게 하자.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작고, 가장 인간적인 저항이다. 혹자들은 말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고 말한다. 우리가 하는 말, 우리가 믿는 말, 우리가 퍼뜨리는 말이 곧 지금 이 사회의 얼굴이다.
좋은 말을 선택하는 사람. 그 사람이야말로 이 혼탁한 시대의 가장 조용한 용기일 것이다.
대구일보 배철한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