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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빨간 가을

admin 기자 입력 2025.09.29 11:08 수정 2025.09.29 11:08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귀뚜라미 가을을 재촉한다.
잠자고 있는 오만 때만 풀벌레들을 불러일으켜 고요한 밤중에 소프라노 등 화음으로 새벽을 밝힌다. 합창이 끝나자, 여명이 불그스레 하늘을 물들인다.

역시나 가을은 분주하다. 푸른 들녘은 황금빛으로 익어가고 알알이 맺힌 오곡들은 극한 혹서에도 꿋꿋하게 살아온 한 해의 결실을 마무리하려고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내 삶의 흔적도 남겨보려고 거친 호흡을 몰아쉰다.

욕망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인지, 무엇이든 배우고 싶은 욕망은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다. 노래는 음치요 필체는 악필이요 그림은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졸작 중 졸작이라 답답한 마음 달랠 길 없어 스승 찾아 끝없는 길을 나선다.

맺혔던 응어리가 하나둘 풀리기 시작한다. 음악에 대한 기초 지식 하나도 없으면서 하고 싶다는 욕망 하나만 가지고 스승을 찾아다녔지.

소가 웃을 일이다. 그런데도 젊은이들이 기타를 어깨에 둘러메고 위풍당당하게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타 한 번 쳐 보고 싶었다.

삼국유사 도서관에서 기타반을 개설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았다. 정해 놓은 날짜에 등록하라는 설명을 들었으나 그날따라 할 일이 많아 한두 시간 늦게 도착했다.

관계자가 늦게 오셔서 등록이 마감되었다고 한다. 오매불망 찾아왔는데 억지를 부렸다. 관계자가 혹시 등록해 놓고 출석하지 않은 사람 있으면 연락하겠다는 말을 듣고 돌아왔다. 며칠 뒤 등록하라는 연락이 왔다.

첫 강의가 시작되던 날. 아무런 준비도 없이 참석한 나는 기타 치는 수강생들 면면을 살펴본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잘 칠까? 나중에 나도 저렇게 잘 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속으로 부러웠다. 강의 시간이 마칠 때가 다 되었다. 강사가 다음 주 기타 등 갖추어야 할 자료들을 갖추어 가져오기로 하고 강의가 끝났다.

기타를 만져보면서 가슴이 뿌듯했다. 나도 기타를 걸머메고 걸어가면 남들도 내가 잘 칠 수 있는 걸로 알고 있겠지, 입꼬리가 절로 올랐다. 한편으로 어려운 과정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앞이 캄캄했다.

겨우겨우 일 년 과정을 마치면서 작은 발표회를 가졌다. 쿵덕거리는 가슴을 가라앉히고 한 곡을 무사히 마쳤다. 당황한 나머지 무슨 곡을 불렀으며 기타를 어떻게 쳤든지 생각나지 않는다.

한 해가 지나고 두 해 접어들면서 겨우 걸음마를 뛰기 시작하였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진도 과정이 빨라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능력의 한계를 느끼며 강사님께 그동안 고마움을 전하며 잠시 휴식하겠다고 했다.

강의실은 떠났지만, 미련은 남아있었다. 기타를 방 한구석에 세워놓고 배웠던 클라멘타인 등 익혔던 곡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한 번씩 치고 한다.

처음 시작할 때는 한 곡만 할 줄 알아도 만족하다고 했는데 몇 곡 더칠 수 있게 되어 마음이 뿌듯했다. 실력이 쌓이면 언젠가 다시 도전할 것이라고 마음먹었다.

야망과 도전은 숨 쉬는 날까지 하고 싶다. 마음 두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늘그막이 할 일 없이 우두커니 앉아 있는 것보다 무엇이라도 배우면서 늙어가는 것이 보기가 좋을 것 같다. 시골이지만 노래 교실, 시조창 교실 등 있을 거 다 있다.

노래가 음치라서 흘러간 옛 노래라도 배워 보려고 노래 교실에 얼굴을 삐쭉 내밀어 보았다. 중년 넘어 보이는 수십 명 수강생들이 노래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반년 넘도록 다니다가 건강이 뒤따르지 않아 아쉬움을 뒤로하고 빠져나왔다.

친구는 하나보다 둘, 둘보다 셋 있으면 더욱 좋다고 한다. 하루에 악수를 백 번 이상 하면 더욱더 좋다고 한다.

옛날에는 서로가 무기를 가지지 않았다는 약속의 의미로 악수를 했다고 하지만, 지금은 건강히 잘 지내고 있는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서로가 안부를 물으면서 악수를 하고 한다.

옛 과 지금이 다르다고 하지만 모르는 것 있으면 마음 놓고 물어볼 수 있는 진정한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왔다. 지쳐 힘들어할 때 일으켜주는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는 정말 옳은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우연찮게 한 절친을 만났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자기는 한 달 전 시조창을 배우고 있다고 하면서 같이 하자며 권유한다. 배워 가면서 늙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 없다.

시조창 반에 들어가기로 했다. 어디 가나 늦게 시작한 것이 웬수덩어리였다. 기타 반에서도 그랬지만, 여기에도 마찬가지다.

먼저 시작한 수강생 대여섯 분이 시조창을 읊조리고 있었다. 선비답게 창하는 모습에 호기심이 발동한다. 한 곡만 완벽하게 부를 줄 알아도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흥얼거리며 따라 불러 보았다. 움츠렸던 마음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다.

강사님은 시조창이란 혼자면 심심풀이요, 둘이면 화답 놀이라. 셋이면 돌림 놀이요, 봄이면 꽃놀이요, 밤이면 달 놀이라.

그리우면 임 타령이요, 술 취하면 흥타령이라. 이것이 시조창이라 하시며 회원들의 마음을 녹여준다. 재치 있고 익살스러운 말솜씨에 강사께 다가가기가 훨씬 더 편해졌다.

시조창을 배운 지 5~6개월 될 무렵 2024년 10월 27일(일요일) 영천에서 전국 시조 경연 대회
가 있다고 하면서 출전해 보라며 넌지시 운을 띄운다. 창도 창이지만 가사도 겨우 외울 정도인데 괜히 설레고 마음이 두근두근 거렸다.

그때만 해도 용기가 넘쳤다. 다 같이 가서 실력을 한번 겨뤄보자며 이야기를 꺼냈다. 회원들은 정자관 옥색 도포에, 종아리에 걸칠 흰 토시 등을 바쁘게 샀다. 10여 명이 탈 수 있는 작은 버스를 타고 대회장으로 달렸다. 처음으로 들어선 대회장에는 먼저 온 회원들이 자리하고 있다. 처녀 출전으로 개인과 단체 장려상을 받는 쾌거를 이뤘다.

2025년 9월 21일(일) 대구 북구 전국 시조경창대회가 있다는 공지문이 날아왔다. 익어가는 가을 햇살 아래 알알이 맺힌 오곡들이 탐스럽게 오동통하다. 우리도 지난해 보다 더 좋은 성적으로 입상해 보자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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