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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일보 배철할 국장 |
| ⓒ N군위신문 |
이맘때가 되면 묘목 시장에는 발 디딜 틈 없이 북적댄다. 묘목 장사들은 장날에 사과나무 등 여러 묘목을 트럭에 가득 싣고 나왔다.
한 사람이 사과나무 묘목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사가지고 간다.
팔려 간 묘목은 주인 등에 업혀 밭으로 간다. 운동장 크기만 한 밭에 네댓 살 되어 보이는 사과나무가 빽빽하게 서 있다. 목을 빼 일제히 쳐다본다. 주인은 어린것을 잘 봐 달라고 신신당부한다.
사람은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찰떡같이 약속한 것이라도 하루아침에 깨는 일은 일도 아니다. 그런데 나무는 한 번 약속하면 끝까지 지키는 것을 보면 신기했다.
어린것이 가뭄에 목말라 죽을까, 추워 얼어 죽을까? 자기가 먹던 물을 간간이 주고, 이불을 덮어준다.
무사히 자란 어린나무는 주인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밤잠을 자지 않고 가지가 부러질 정도로 충실한 열매를 주렁주렁 달았다.
주인은 탐스러운 열매를 만져 보면서 만면에 미소가 가득하다. “고래도 칭찬하면 춤춘다”라는 말과 같이 주인의 칭찬에 나무들은 신이 난다. 주인은 빨갛게 잘 익은 열매를 따서 차에 가득 싣고 신나게 공판장으로 달린다. 제일 비싼 가격을 받았다. 주면 주는 대로 은혜를 갚을 줄 아는 나무의 본성을 보면서 신비로움에 빠졌다.
어린것이 보호받으며 잘 컸으리라 보지만, 낯선 땅에서 살기 위해 온갖 어려움과 고통을 받아 왔을 거라고 생각해 본다. 고향보다 더 살기 좋은 곳은 어디에 있으랴. 그럼에도 사람들은 사는 곳보다 더 살기 좋은 곳을 찾아 고향을 떠나는 것을 수없이 볼 수 있다.
며칠 전 때 묻지 않은 한 부부가 우리 동네로 이사 왔다. 부부는 동네 사람들을 모셔놓고 술이랑 고기랑 푸짐한 음식을 차려놓고 극진한 대접을 한다. 자기가 살았던 고향 이야기며 이사 온 사유 등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이야기 끝나자, 한 동민이 부인은 우리 동네 살았던 사람 같은데 반갑습니다. 형씨 이름 부르기가 머쓱한데 택호가 뭡니까 묻는다. “동국”이라합니다. 택호를 말하는 것을 보고 반촌에 살았던 것 같아 약간 당황한 듯 멈칫한다. 우리 동네는 택호 대신 그 집 장남 이름을 따서 부르고 하기 때문이다.
동국 내외가 여기 온 지가 벌써 수십 년 되었다. 그동안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친 형제처럼 지냈다.
동네에 일어난 궂은일 좋은 일 마다하지 않고 자기 일처럼 열심히 하는 것을 보고 동민들은 인간미가 넘쳐흐르는 좋은 사람이라고 입을 모았다.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는 말처럼 어느새 동국이도 세월에 못 이겨 흘러가는 세월 따라가는 듯한 모습이 얼굴에 역력히 드러난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뒷설거지만 남았다. 바쁜 고비를 넘긴 농촌에 여유로운 시간이 찾아든다. 쉼터에서 둘러앉아 막걸리 한잔하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취기가 살짝 오른 사람은 흥얼거리며 나무젓가락으로 박자를 맞춘다. 복닥거리며 사는 도시보다 공기 좋고 물 맑고 인심 좋은 농촌보다 더 살기 좋은 곳 어디 있느냐 하며 한바탕 읊는다. 목이 타는지 막걸리 한 잔 꿀꺽 한다. 막걸리 맛이 꿀맛 같았다.
동국이는 인정도 많고 덩치도 남 못잖고 재담도 잘해 재담꾼이라고 불렀다. 동국이가 이야기하면 언제나 그랬다. 넓은 쉼터에 사방이 쥐 죽은 듯 숨소리만 들린다.
한날은 여럿이 모인 쉼터에서 말을 꺼낸다. 겨울이 오기 전에 우리 동네와 맞붙어 있는 이웃 동네로 이사 갈 생각입니다. 느닷없는 이야기에 사람들은 의아했다.
이사 갈 날짜를 잡아 놓았다며 그동안 따뜻하게 보살펴 주심에 감사하다며 허리 굽혀 절한다. 이사 간 후에도 옛정을 못 잊어 매일 같이 오가곤 했다.
이웃 동네라도 그 동네 사람들을 한 번씩 찾아뵙고 인사드리는 것이 예의다. 푸짐한 음식 차려놓고 동네 사람들 청하여 푸짐한 대접을 하였다. 동국이 본심은 어디에 가도 변함이 없다. 하루도 쉼 없이 동네일을 내 일처럼 열심히 한다. 보는 사람마다 잘 한다고 인사가 자자했다.
처음 볼 적에는 약간 무뚝뚝하게 보여도 재담꾼으로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데 탁월한 소질이 있었다. 성실하고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동네 사람들의 칭찬은 끝이 없었다.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는 어느 늦가을 노인회관에 둘러앉아 신변 잡담하며 시간을 보낸다. 한 사람이 동국이 보고 노인회장 한번 해보라며 말을 꺼낸다. 당치도 않은 회장 말에 화들짝 놀라 손사래를 마구 친다. 끊임없는 권유에 어쩔 수 없어 강제로 회장을 떠맡게 되었다.
동네 통장을 들여다보고 생각 이외로 많은 돈을 저축해 놓고 있는 것을 보고 가슴이 벅차올랐다. “농부의 마음이 곧 하늘의 뜻이다.” 풍요롭고 인심 좋은 동네로 만들어 보겠다는 굳은 신념으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회장은 어떻게 하면 동네 화합과 친목을 도모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더욱더 살기 좋은 동네로 만들 수 있을까? 밤낮으로 깊은 고민에 빠졌다. 고민 끝에 기분을 쇄신하기 위하여 여행이라도 한 번 다녀오면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불현 듯 난다.
울산 현대중공업에 근무하고 있는 아들에게 우리 동네 노인 회원들을 모시고 방문하고 싶은데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잘은 못 하지만 욕하지 마십시오.
동네 어른들을 잘 모시고 오십시오. 승낙받고 방문 날짜와 인원을 파악해서 알렸다.
회장 부부는 비지땀 흘러가면서 오가는 도중 먹을 음식 준비에 코가 석 자이다.
아들은 고향에 계신 아버지와 노인회원님들이 오신다는데 어떻게 해야 잘하는 건지 정신이 없다. 생각건대, 이 행사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누구를 위하여 하는 것인지, 누구에 의하여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아마도 동네 분위기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하여 화합과 단결, 친목을 도모하여인정이 넘치고 살기 좋은 노인회를 만들어 보고자 야망이 가득 찬 회장의 간절한 소망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륙십 명 회원들이 정각에 나왔다. 버스 두 대에 나누어 타고 목적지를 향하여 출발한다. 버스는 정확한 시각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들이 마중하러 나왔다. 공손히 인사하고 미리 마련해 둔 식당으로 안내한다. 회원들은 따뜻한 대접을 받고 말로만 듣던 현대 중공업을 두루 살펴보고 하루를 마음껏 즐기고 돌아왔다.
행사를 하다보면 잘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다. 하루 종일 뒷바라지 하느라 고생이 이만저만 아닐 텐데, 심통 맞게 말 잘하는 한 사람이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거 누가 말려.
찬 바람이 쌩쌩 부는 말을 거침없이 한다. 그럼에도 행사를 마치고 돌아가면서 따뜻한 인사 한마디 없다는 것은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 아닐까 싶다. 비정한 동네라고 소문날까 봐 부끄럽고 두렵기도 했다.
좋은 일을 하자고 했는데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은 제각각이다. 인사받으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고생을 죽도록 하고도 인사 한마디 받지 못한 회장의 마음은 어땠을까? 고래도 춤추게 하는 따뜻한 칭찬 한마디로 얼어붙은 분위기가 쇄신되기를 소망해 본다.
대구가축병원 권춘수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