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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친구의 죽음을 추모하며

admin 기자 입력 2026.05.22 17:06 수정 2026.05.22 05:06

↑↑ 대구가축병원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우리 세 사람은 대학 입학 때부터 만나 끈끈한 우정으로 지금까지 지내온 절친이다. 그동안 우리는 석 달에 한 번씩 정해놓은 날짜에 만나서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안부 묻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꽃을 피웠다.

한 날은 평소처럼 만나고 헤어졌다. 상주 낙동강 한우촌 식당에서 만남이 마지막인 줄 꿈에도 몰랐다. 갑자기 그날 이후로는 소식이 끊겼다. 누구에게 물어 볼 수도 없어 답답한 나날을 보냈다.

몇 해가 지났을 때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반갑게 전화받았다. 전립선암으로 영남대학 병원에 입원했다는 뜬금없는 전화였다.

그러고는 전화받을 수 없으니 전화하지 말라고 하면서 전화를 끊어 버렸다. 여태까지 말 한마디 없이 혼자만 알고 아무도 몰랐다.

가슴이 두근거리며 어떻게 해야 하나, 혹시나 하는 나쁜 생각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그리고 한두 달이 지났다. 들릴락 말락 나직한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병원에서 요양병원으로 가라고 한다며 요양원에 와 있다고 한다. 말을 더듬으면서 걸음을 걸을 수 없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남겨놓고 우리 곁을 쓸쓸히 떠났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숨이 막힐 듯했다. 그동안 함께 지내왔던 추억들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대학 시절 교복에 자전거 타고 등교하던 모습이랑 제주도 여행, 목포 유달산에서 교수님과 어깨동무하며 춤추다 한데 뒹굴었던 모습, 철쭉 축제, 화양계곡에서 캠핑하며 전국을 누렸던 모습, 시골 고향에서 모친께서 술상 차려 준 것을 밤새도록 마시며 놀았던 모습 등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아름다웠던 추억을 남겨 놓자며 느지막이 우리 세 가족은 유럽 여행을 가려고 몇 해 동안 기금을 모았다. 친구는 출발에 앞서 갑자기 일이 생겨 같이 갈 수 없어, 너희들끼리 잘 다녀오게 하고선 쫓기듯 황급히 모습을 감춰버렸다.

뜬금없는 이야기에 모두 어안이 벙벙했다. 생각할수록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오냐, 잘 다녀오마. 산천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고함쳤다. 말 못 할 사연도 있었겠지만, 그때의 친구 심정은 어떠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오죽했으면 못 갔을까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그 후 친구 얼굴에는 밝은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까지도 왜 같이 갈 수 없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치매 뒷바라지로 고생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일색일 것이다. 팔순 바라보는 나이에 어머니 치매로 긴 고통의 시간을 보냈던 일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모친의 치매는 특이성 치매로 다루기가 매우 힘들었다. 친구는 조부모님, 부모님 초상을 치르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다.

이제 여생을 즐기며 편안하게 살아야 할 시간이 왔음에도 아직도 긴장을 놓지 않고 지내온 것을 보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여유롭게 한 번도 살지 못하고 고생만 하다 우리 곁을 떠났다.
아들, 딸 결혼시켜 손주들 무릎에 앉혀 놓고 재롱떠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살아갈 행복 날이 천만리인데, 무엇이 그리도 급한지 사랑하는 가족 형제 버리고 차디찬 낮선 고국산천으로 떠나가는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안타깝고 애석한 마음 비길 때 없었다.

이왕지사 갈려거든 남은 가족들이 걱정 없이 잘 살도록 보듬어주고 가렴. 목멘 소리로 마지막 불러본다.

함 박사! 잘 가거라. 여태껏 사느라 허리 한 번 제대로 펴보지 못하고 고생만 하다 떠나는구나.
하늘나라에 가서 이 세상에서 못다 한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게.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이 세상 이야기 전해 주면서 편안하게 잘 지내시기를 바라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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